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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성주풀이 본향 안동 솔씨공원과 제비원 연미사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성주풀이는 집안의 평안과 번영을 기원하는 전통민요로 집을 지을 때나 새집으로 이사를 할 때 축원하며 부르는 한민족 대표민요로 본래는 무당이 부르는 노래였다. 여기서 "성주"는 집안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뜻한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다 보면 성주의 본향이 어디인가를 물으면서 그곳은 안동의 제비원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제비원에는 크나큰 소나무가 있으며 그 소나무의 솔씨를 받아다가 심어서 성주목으로 키워서 집을 지을 때 대들보로 삼는다고 한다. 그러면 집안에 행복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인의 대표적인 민요인 성주풀이가 유래한 안동 제비원의 "이천동마애불"이 있는 "연미사"를 지난 토요일(6일) 찾았다. 연미사가 있는 안동시 이천동은 옛부터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으로, 소백산을 넘기 전에 많은 선비들 상인들이 쉬어가는 길목이었다. 그래서 이곳에는 제비원(요즈음으로 치면 호텔)로 쉬어가는 사람들이 하룻밤 묵으면서 험한 산길 소백산 산짐승 산적들을 만나지 않고 무사히 넘어가고, 또 선비들은 과거에 급제하기를 바라면서 마애불에 소원을 빌었다.

 

그런데 이곳 제비원에는 연(燕=제비)이라는 처녀와 제비가 된 목수 욱바우골 와공과 제비원 미륵불의 목을 벤 명나라 장군 이여송, 제비원 미륵불을 조각한 형제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이런  역사가 숨쉬는 '제비원'과 '연미사'였지만, 세월의 흐름에 본래 제비원도 없어지고, 오래된 절도 사라졌다. 그리고 오래지 않은 근래에 또 다시 작은 절 연미사가 다시 들어서고, 제비원이 있던 넓은 터에는 '솔씨공원'이 들어서 옛날의 전설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곳 주변에는 소나무와 관계 깊은 많은 마을들이 있다. 솔밤, 솔티, 송현, 송천, 솔메 등이 있어 소나무의 본향임을 증명하고 있어, 옛날 소나무의 본향임을 잊지 않도록 2009년 부터 솔씨공원을 조성하였다. 이에따라 많은 지역에서 소나무들을 옮겨심었는데 울진의 금강송 11그루, 옥동 육송 2그루, 예안면 소나무 3그루, 등을 옮겨 심었다.

 

이곳 제비원에 전하는 '연이낭자'와 '김총각'의 이야기를 간략히 줄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이곳 제비원에는 부모를 일찍 여윈 착한 연(燕)이 낭자가 있었는데 늘 길손들에게 정성을 다하여 도움을 주어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러던 차 어느날 주변의 부잣집 '김총각'이 살았는데 갑자기 죽게 되었다. 김총각은 죽어서 저승의 염라대왕 앞에서 이승에서의 행실을 심판 받게 되었다. 그런데 염라대왕은 김총각에게 말하기를 "너는 세상에서 늘 못된짓만 하고 다녀서, 너의 저승창고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었다" 그러니 "이제라도 제비원에서 늘 착한일을 하고 있는 연이낭자가  쌓아놓은 저승창고에서 빌려서 인정을 베풀어라" 하는 것이었다.

 

김총각은 염라대왕의 권유에 따라, 이승에서 연이낭자가 쌓아놓은 재물을 빌려서 저승에서 인정을 베풀고, 그 공덕으로 다시 이승에 환생하게 되었는데, 김총각이 이승으로 돌아와 연이낭자를 만나 자초지종을 말하고 저승에서 빌린 빚을 갑고자 자신의 재물을 내놓았다. 그리하여 연이낭자는 그 재물로 스님을 모셔다 연미사의 큰 법당을지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대목(으뜸목수)이 법당을 짓고 마지막 기와를 덮는 순간 와공(기와 놓는 장인)은 갑자기 제비로 변하여 날아갔다고 한다. 이후 이곳은 제비가 날아갔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연비사(燕飛寺)라고 하고, 숙소는 제비원이라 하였다. 그런데 절을 지은 뒤 연이낭자는 아침저녁 법당에 늘 기도하던 중 38살의 나이로 죽게 되었는데, 연이낭자가 죽자 제비원 뒤편 커다란 바위가 갈라지면서 돌부처가 생겨났다. 이후 사람들은 연이낭자의 혼이 변하여 미륵불이 되었다고 믿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연비사(燕飛寺)는 부르기 편한 연미사(燕尾寺)로 이름이 바뀌었다.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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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