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내가 니 “시다바리”가 ?


내가 니 “시다바리”가 ? 

 

“시다바리”란 뜻을 정확히 알고 쓰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사람들은 “시다바리”란 말을 즐겨 쓴다. 이 말에 대한 “네이버창”에 비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자. 

질문자 : “영화 <친구>에서 "시다바리" 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그 말의 뜻이 뭐예요? 제가 아는 바로는 일본의 스모선수들 똥 누고 나서 닦아주는 사람을 시다바리라고 하던데…. 그런데 제가 아는 분이 시다바리가 보조라는 뜻이 있다는데 이 말 좀 정확히 알려주세요.” 

답변 : “우리나라는 일제식민지 문화의 잔재를 일상에서 너무 쉽게 끌어안고 사는 것에 대해 먼저 아쉬움을 표합니다. 요리나 음식점 안의 주방에는 일본식 체계를 모방한 어설프게 정착된 계급이 있습니다. 흔히 표현되는 아라이, 시다 같은 표현방식이지요. 이를 검은 세계 일명 암흑가의 은어라 부릅니다. 그중 잘못 결합된 단어가 “시다발이”입니다. 시다발이는 스모 용어도 아니고 경상도 사투리도 아닌 일본어와 전라도 사투리의 합성어 “시다발이”입니다. 다시 말해 이 뜻은 일본어 “꼬봉”이라는 단어와 유사합니다. 속되게 표현하면 밑 닦어주는 역할 자, 그 어떤 일의 구리거나 하기 싫은 부분을 대신해야만 하는 밑의 사람, 불이익을 대신 몸으로 간접대행 해야 하는 부하, 대충 그런 뜻입니다.  

두 사람의 묻고 대답하는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자니 재미난 이야기가 등장한다. 먼저 “시다바리”는 “전라도와 일본말의 합성”이라는 것과 그것은 “시다바리”가 아니라 “시다발이”라는 표현이다. 과연 전라도 말로 “시다발이”라는 말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두 사람의 말의 흐름으로 보아 “남의 일을 대신 해주는 심부름꾼”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말밑(어원)이 분명하지 않은 말들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교통정리를 해주면 좋을 일이지만 일체 침묵하고 있다. 국민은 궁금해서 인터넷에 사뭇 물어보고 난리인데 누구 하나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다. “이 말은 일본어에서 유래한 말로 우리말로는 밑 일꾼 등으로 고쳐 쓰라” 이렇게만 해주어도 좋으련만 일본말 찌꺼기에 대해서는 조사된 바 없는 것인지 아예 사전에는 올라있지 않다. 

다행히도 민간 사전인 <다음>의 전문용어대역 사전에는 “시다바리(したばり), 일본어 : 밑일꾼, 곁꾼으로 순화”라고 되어 있다. 영화 <친구>에서 나온 시다바리는 이 사전 풀이대로라면 “내가 니 밑일꾼이가?” 또는 “내가 니 곁꾼이가?”로 바꿔야 하지만 이렇게 바꿔 쓸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알려주지 않는 게 좋을 게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내가 니 시다바리가?”는 분명히, “내가 니 종이냐? 하인이냐? 하수인이냐? 부하냐? 심복이냐? 밑씻개냐…?” 이런 뜻으로 쓰이는 현실에서 사전적 풀이는 냉소를 자아내게 한다. 그래도 국립국어원의 무대응보다는 가상한 일이지만 이것으로 국민의 올바른 국어사용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다음> 사전에서 말한 시다바리(したばり)를 본 고장 사전인 일본대국어사전 <大辞泉>에서 찾아보니, “したばり 【下張(り)】: 襖(ふすま)・壁などの上張(うわば)りの仕上げをよくするため、下地に張る紙や布。また、それを張ること。”로 나와 있다. 이를 번역하면, 시다바리 : 문이나 벽 등에 종이를 바르기 전에 애벌로 바르는 종이 또는 그런 일로 설명되어 있을 뿐 <다음>사전에서 말하는 <밑일꾼>이나 <종> <아랫사람> 같은 뜻은 없다. 

<다음>국어사전풀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말의 유래를 곰곰 생각해보건대 현대 일본어에서는 찾기가 어렵다. 시다바리라는 말은 현대 일본어에서는 “벽지 붙이는 작업에서 초배지 붙이는 일”의 뜻밖에 없다.  

우리가 말하는 “종. 하인, 아랫것, 심부름꾼, 허드렛일꾼….” 등의 뜻을 혹시 일본어 고어에는 있을까 찾아봐야만 할 듯하다. 《廣辭苑》에 보면 시다바리는 시다+바라로 봐야 할 것 같다. “시다바라”가 “시다바리”로 와전된 것이 아닌가 하는 흔적을 보면, “<輩,原,儕>라는 한자를 쓰고 바라(ばら)라고 읽으며 사람을 나타내는 명사에 붙어서 복수 또는 그 사람의 계급이나 처지 또는 형편을 나타내는 말로 존경하는 뜻이 빠진 표현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정의되어있다.  

그 예문으로는 야츠바라(奴ばら, 종놈) 도노바라( 殿ばら, 여러분) 호우시바라(法師ばら, 남의 초상집에서 염불기도 하고 돈을 받는 중)으로 비하의 뜻이 있다. 여기서 복수를 나타내는 “바라”는 현대어에서는 “바”가 탈락한 “라(ら)” 상태로 쓰이며 예전의 “바라”는 상대를 무시하는 뜻으로 그다지 높고 고귀한 직업군에 쓰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시다(下)’라는 뜻은 말 그대로 아랫자리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봉제공장에 가면 ‘시다’라는 직책이 있는데 실밥 같은 허드렛일 거드는 사람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두말 곧 시다+바라가 변해서 우리가 쓰는 “시다바리”가 된 것으로 짐작된다.  

“바라”의 사전풀이처럼 상대방에 붙이는 말이므로, 만일 영화감독을 따라다니면 영화감독 보조를 하는 사람일 테고, 사장님을 따라다니면 비서이고, 힘 있고 돈 많은 사람을 따라다니면 심부름꾼이나 똘마니의 역할이 될 것이다.  

우리말에서 과거에 양반과 하인이 존재하던 시절에는 뭐든지 하인이나 종을 부려 먹으면 되었지만 이런 신분제도가 사라진 오늘날에는 딱히 부를 말이 없어지고 보니 일본말의 시다바라-시다바리를 마치 종놈 취급이란 말로 끌어다 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종 부리고 말 타던 시대는 사라졌지만 돈 있고 능력 있고 권력 있고 힘 있으면 “종놈” 하나쯤은 차고 다니는 세상이 되었는데 이를 지칭하는 말이 없다. 아니 자기가 그런 “종놈”을 부릴 입장이 아니고 반대로 “종놈”의 입장이 되어 버리면 항변하듯 “내가 니 종놈이냐?”를 한다는 것이 “내가 니 시다바리냐?”로 바꿔치기함으로써 “종놈 신세”를 회피하면서 은근히 “종놈”이냐를 되묻는 듯한 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한다.  

문제는 젊은 사람들이 이 말의 본뜻이 궁금하여 인터넷 사이트에 줄곧 궁금증을 털어놓고 있지만 그 어느 누구의 답변도 시원치가 않다. 전라도 말이라는 사람도 있고 경상도 말이라는 사람,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말, 스모선수의 밑 닦아주는 사람…. 등등 별의별 추측이 난무하다. 단스(서랍장), 무데뽀(막무가내), 노가다(막일꾼), 사바사바(은밀한 뒷거래) 같은 일본말은 올라있는데 ‘시다바리’는 없다. 어떤 것은 올리고 어떤 것은 안 올리는 기준은 무엇일까? 비록 일본말 찌꺼기라도 그 뜻과 유래를 분명히 밝혀 국민 스스로 쓰지 않도록 해주는 국어정책이 나와야 할 것만 같다. 난무하는 “시다바리”의 의문을 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