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한꽃 기자]노란 점퍼차림의 하라다쿄코(原田京子, 73살)씨를 다시 만난 것은 서대문형무소역사박물관에서 한일교류회를 마친 다음 날이었다. 방한 이틀째인 하라다 씨 일행의 이날 통역으로 따라나선 기자는 아침 일찍 하라다 씨 일행이 묵고 있는 을지로 써튼호텔로 서둘러 찾아 갔다. 평균 연령이 60살인 이번 일행은 일본 고려박물관 조선여성사연구회 회원들로 이 날 일정은 민족문제연구소 자료관과 대방동에 있는 국립여성사 자료관 등 이었다. ▲ 지하철 안에서 하라다쿄코 씨의 해맑은 모습 모두 호주머니를 털어 방한 한 것이라 단체 이동용 작은 버스도 빌리지 못해 우리는 이동 수단을 지하철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행 가운데는 86살의 세키구치스미코(關口澄子, 86살) 씨도 있어서 지하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지하철 안에서 기자는 하라다 씨와 함께 했다. 사실 전날 하라다 씨는 기자에게 십자가복음이라고 찍힌 38쪽짜리 교회 소식지 같은 소책자를 건네주었는데 집에 가서 읽어 보니 이 소책자에 일제만행 사죄하는 마음으로 한국에서 봉사하는 하라다교코 씨라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강의실에서 항일여성
[그린경제/얼레빗 = 이한꽃 기자] 여성의식 향상과 민중계몽에 앞장 선 박원희 이윤옥 혹한 눈보라 속 펄럭이는 만장으로 슬픔을 감추고 떠난 임 세 살배기 어린 딸 어이 남기고 서둘러 가셨는가! 많이 배우고 잘난 여자들 일제에 빌붙어 동포를 팔아먹고 더러운 입 놀려 호화 호식할 때 배운 여자 일수록 구국의 대열에 앞장서라 외치던 서른 해 짧은 생 마감하며 던진 화두 죽어서도 차마 놓지 못할 광복의 그 찬란한 꿈 고이 간직하고 떠나시라고 가시는 걸음걸음 흩뿌리던 하얀 눈송이 희고 순결하여라. ▲ 여성의 정치적의식을 일깨우는 기사(동아일보.1927.6.1) 박원희(朴元熙 1898.3.10 ~ 1928.1.5) 1928년 1월 11일 동아일보에는 한 여성의 장례행렬 사진이 크게 실렸다.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많은 만장과 추도객이 뒤따르는 이 사진은 일제강점기에 보기 드문 장례행렬 사진이다. 이날 장례를 치른 주인공은 서른 살로 요절한 박원희 애국지사였다. 박원희 애국지사는 서울 사람으로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철원보통학교 교사로 3년간 재직하다 일본에 유학하였다. 귀국 뒤 여성운동에 뛰어들어 남편인 김사국(金思國)이 주도한 서울청년회계의
[그린경제/얼레빗 기자 = 이한꽃 기자] 100년 편지에 대하여..... 100년 편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00년(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입니다. 내가 안중근의사에게 편지를 쓰거나 내가 김구가 되어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1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역사와 상상이 조우하고 회동하는 100년 편지는 편지이자 편지로 쓰는 칼럼입니다. 100년 편지는 2010년 4월 13일에 시작해서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독자 여러분도 100년 편지에 동참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매주 화요일 100년 편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문의: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02-3210-0411 선생님. 10월 10일입니다. 56년 전 오늘입니다. 선생님이 타계하셨지요. 육당 최남선 육당 (六堂), 1907년 한국최초의 잡지 소년지 창간,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 창작, 기미독립선언문 기초... 중학교 국어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 하노라...로 시작되는 기미독립선언문은 시험에 반드시 출제되는 지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한흙(大地)》이란 재일한국문인협회에서 펴내는 잡지로 1992년에 처음 만들었으니 올해로 21년째를 맞이한다. 편집을 맡은 한밝 김리박 선생은 대한민국 한글학회 일본 간사이지회 회장이자 재 일본한국문인협회 회장으로 우리말 토박이말을 살려 시조를 쓰는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흙(大地)》은 한국인들조차 잊고 사는 우리 고유의 토박이말을 일본 땅에서 부여잡고 수십 년간 겨레사랑, 한글사랑 정신을 실천하는 문인들이 토해 내는 한국 혼 그 자체다. 국내에서도 잡지 출간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일본에서 꾸준히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조국의 얼과 혼을 아름다운 씨실과 날실로 엮어내는 《한흙(大地)》사람들의 시와 이야기를 앞으로 소개한다. *김리박 시인 누리편지:ribak@hera.eonet.ne.jp, *손말틀 : (일본) 090-8147-7689 , 국내 문의:02-733-5027 - 편집자 설명 - 강선회씨를 그리워하다 한룡무 세상을 떠나신지 1년 세월의 흐름은 유수와 같으나 오늘은 당신을 연모해서 이렇게 모였습니다 사진기와 붓을 들면 자재 사진을 찍고 찍으며 붓글을 쓴 당신 당신은 세상을 떠났으나 사진과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1941년 조선 경성에서 출간된 일본어판 《대륙신사대관》에 보면 당시 경상북도에는 비교적 규모가 큰 대구신사, 김천신사, 포항신사, 울(릉)도신사, 안동신사, 경주신사가 있었다. 한편 작은 규모로는 청도군 화양면에 있는 신명신사(神明神祠)를 비롯하여 영양군, 영주군, 영덕군, 의성군, 문경군 등 광범위한 지역에 무려 46개의 신사가 있었다. ▲ 옛 안동신사 터에는 원불교 교당이 들어서 있다 ▲ 안동신사가 얼마나 높은 곳에 세워졌는지 알려주는 가파른 계단(현, 원불교 교당) 그 가운데 안동신사(安東神社)는 지금의 안동시 옥정동에 있는 원불교 자리에 1939년 12월 1일(소화 14년)에 일제가 세웠다. 일본땅에 있는 신사는 높은 산꼭대기에 짓기 보다는 평지에 지은 곳이 많은데 견주어 조선땅에 세운 신사는 부산의 용두산공원, 전주 다가동산, 나주 남산공원 팔각정 자리처럼 대부분 지대가 높은 곳에 세워졌다. 현재 원불교 안동교당은 지상으로부터 매우 경사가 심하고 높은 산꼭대기에 세워졌는데 1964년 11월에 세운 것이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이자 항일독립운동가의 산실인 안동지역에서 안동신사 터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다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한흙(大地)》이란 재일한국문인협회에서 펴내는 잡지로 1992년에 처음 만들었으니 올해로 21년째를 맞이한다. 편집을 맡은 한밝 김리박 선생은 대한민국 한글학회 일본 간사이지회 회장이자 재 일본한국문인협회 회장으로 우리말 토박이말을 살려 시조를 쓰는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흙(大地)》은 한국인들조차 잊고 사는 우리 고유의 토박이말을 일본 땅에서 부여잡고 수십 년간 겨레사랑, 한글사랑 정신을 실천하는 문인들이 토해 내는 한국 혼 그 자체다. 국내에서도 잡지 출간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일본에서 꾸준히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조국의 얼과 혼을 아름다운 씨실과 날실로 엮어내는 《한흙(大地)》사람들의 시와 이야기를 앞으로 소개한다. *김리박 시인 누리편지:ribak@hera.eonet.ne.jp, *손말틀 : (일본) 090-8147-7689 , 국내 문의:02-733-5027 - 편집자 설명 - 무궁화와 인생 신시성 겨울에는 어디에 있었는지 봄에는 또한 어디서 머물고 있었는지 또 올 여름 이쁘게 핀 무궁화 한 여름 시들지 않고 늘 피어 있는 그 심사는 무엇인지 알고 싶기도 하고 모른 척 지나가고 싶기도 하고 인생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한흙(大地)》이란 재일한국문인협회에서 펴내는 잡지로 1992년에 처음 만들었으니 올해로 21년째를 맞이한다. 편집을 맡은 한밝 김리박 선생은 대한민국 한글학회 일본 간사이지회 회장이자 재 일본한국문인협회 회장으로 우리말 토박이말을 살려 시조를 쓰는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흙(大地)》은 한국인들조차 잊고 사는 우리 고유의 토박이말을 일본 땅에서 부여잡고 수십 년간 겨레사랑, 한글사랑 정신을 실천하는 문인들이 토해 내는 한국 혼 그 자체다. 국내에서도 잡지 출간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일본에서 꾸준히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조국의 얼과 혼을 아름다운 씨실과 날실로 엮어내는 《한흙(大地)》사람들의 시와 이야기를 앞으로 소개한다. *김리박 시인 누리편지:ribak@hera.eonet.ne.jp, *손말틀 : (일본) 090-8147-7689 , 국내 문의:02-733-5027 -편집자주- 뙤약달 (8월) 한밝 김리박 세 더위 첫 더위 왔구나 가운데는 붙이고 끝더위는 큰놈인지 굵기만 하느니 한더위 이겨내자니 늙몸은 숨 가프고 싹쓸바람 바다서 돋아나고 하늘서 내려오니 집들이 흔들려서 짐승도 두렵다니 이승이 다 없어지면 얼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우리는 무기를 가졌습니다. 조국을 찾아야 한다는 목표물을, 똑바로 겨냥한, 젊음이란 이름의 무기입니다. 자유로를 달리다 마주치는 통일전망대 인근에 조성된 장준하공원 돌비석에 새겨진 말이다. 젊음이라는 무기를 거머쥔 채 조국 광복을 위해 뛰었던 선생은 1975년 8월 17일 등산로에서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는불운을 겪었다. ▲ 장준하 선생 무덤으로 오르는 계단, 글귀가 적혀있는 낮은 돌 담장 같은 곳 뒤 계단을 오르면 무덤에 이른다. ▲ 추모공원의 양쪽 돌 담장 모양 사이의 공간으로 들어서서 계단 위로 오르면 무덤이 나온다. ▲ 장준하추모공원 전체 모습, 돌담장 모습으로 이 돌판에 해적이(연보)를 적어 두었다. 장준하추모공원은 2012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688번지에 조성된 것이지만 전체적으로 조촐하고 소박한 모습이다. 추모공원이 반드시 커야 할 필요는 없지만 선생을 기념할 만한 기념관이나 자료관 같은 것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 무덤 옆의 비석 장준하 선생 추모공원과 바로 위의 무덤은 통일전망대나 파주헤이리예술마을을 찾는 이들이 간간이 찾고 있는 듯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다시 살아난 수원의 잔 다르크 이선경 이윤옥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홀로 죽어 간다는 것은 외롭고 쓸쓸한 일입니다 광복의 기쁜 소식을 듣지 못하고 홀로 눈을 감는다는 것은 외롭고 슬픈 일입니다 열아홉 값진 목숨 모진 고문으로 숨 거두어 쓸쓸히 떠났건만 오래도록 찾지 않은 그의 무덤 자취도 없이 사라진 지 91년 째 그의 의로움 그의 조국에 대한 열정 마침내 만천하에 드러나던 2012년 삼월 하늘가 그곳에서 수원의 잔 다르크 살며시 미소 짓습니다. ▲ 이선경 애국지사 판결문 이선경(李善卿,1902. 5. 25~1921. 4. 21)애국지사가 그간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유관순 열사가 1920년 10월 독립운동의 제단 위에 거룩하게 바쳐지고 난 지 6개월만인 1921년 4월 21일 이선경 열사가 꽃다운 나이에 또 다시 순국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유관순 열사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수원이 낳은 이선경 열사에 대하여는 잘 모르고 살아왔다. 유관순 열사가 일제의 감옥에서 순국하였고 이화학당 교사 미쓰 월터 선생이 시신을 받았다는 점에서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질 수 있었던 상황이었던 것에 견주어, 이선경 애국지사는 경기여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일제강점기 친일파들의 사진은 많지만 독립운동가 사진은 드물다. 그것은 시기적으로 1945년 이전 사진술이 널리 보급되기 전이기도 하지만 또 한 가지 이유는 대부분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운동을 하러 불철주야 뛰어 다니느라 제대로 된 사진을 찍어둘 여유가 없었던 까닭도 있다. 뿐만 아니라 얼굴이 알려지면 일제에 표적이 되어 잡히는 일이 다반사였기에 일부러 사진을 남기지 않은 분들도 많다. ▲ 고종황제 이러다보니 독립운동가들의 변변한 사진이 없는 게 현실이다. 이에 동임문화그룹 김동임 대표는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초상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것을 알고 러시아의 세르게이 예브게니예프 또까레프 교수에게 의뢰하여 독립운동가들의 초상을 남기게 되었다. ▲ 우당 김회영 선생 또까레프 교수는 러시아의 저명한 사실주의 화가로 독립운동가들의 내면세계를 잘 표현하고자 종이에 목탄을 사용하여 마치 빛바랜 사진을 보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용운, 신채호, 김회영, 남자현, 이광춘 등 쟁쟁한 조선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초상전을 통해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정신과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다. ▲ 또까레프 화가와 그의 어머니 모습 김동임 대표는 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