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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제223호)

피안에 들고 싶다면 귀를 열어라 [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5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도피안사 삼층석탑 - 이 달 균 피안(彼岸)에 들고 싶다면 화개산 도피안사(到彼岸寺) 가자 깨달음의 언덕을 언제쯤 올라보나 열반은 가까이 있다 “귀를 열어라”고 탑은 말한다 도피안사는 피안의 세계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번뇌와 고통이 없는 경지에 이르고 싶은가. 그런 이상적인 경지가 꿈처럼 요원하다면 남한의 최북단 철원 화개산 도피안사에 가자. 한국 전쟁 이후 군에서 재건하였다는 이 절의 〈사적기(寺蹟記)〉엔 재미있는 사연이 전한다. 당시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조성하여 철원에 있는 안양사에 봉안하기 위해 암소 등에 싣고 운반하는 도중, 불상이 없어져 찾아보니 현재의 도피안사 자리에 앉아 있어 865년(신라 경문왕 5)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그 자리에 절을 세우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현재는 군에서 파견된 군승과 주지 김상기가 관리하고 있지만, 휴전선 북쪽 민통선 북방에 있어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3층석탑(보물 제223호)은 치열한 격전지에 있는 것에 견주면 비교적 양호한 모습을 하고 있다. 상륜부와 3층 지붕돌 일부만 손상되었을 뿐 전체적으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철조비로자나불

당신은 산타클로스 같은 신을 믿는가?

인간은 자연의 일부고, 자연이 신이다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45>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아시아나 비행기가 출발하려면 6시간이나 남았다. 나는 공항 안에서 점심도 사먹고, 손말틀(휴대폰)로 궁금한 한국 소식도 알아보고 등등 시간을 보냈다. 포노 사피엔스는 손말틀만 있으면 몇 시간이고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가 있다. 공항에는 손말틀을 충전하는 시설까지 있으므로 배터리 걱정을 안 해도 된다. 나는 탈핵이라는 단어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하였다. 세계의 이름 있는 기업들이 ‘RE100’이라는 이름의 재생에너지 사용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RE100을 처음 들어보았다. RE100은 재생에너지 100%(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이다. 2014년에 시작된 이 캠페인은 다국적기업들이 생산 활동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에서 조달하겠다는 선언이다. 2019년 현재 170개 기업이 동참하고 있다. 애플, 구글, BMW, GM, 이케아 등 유럽과 미국의 기업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삼성과 LG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기업은 한 곳도 동참하고 있지 않다. 이미 구글과 애플은 풍력이나 태양광발전에서 나오는 전력만으로 생산 활동을 하는 100% 목표를 달성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1만 명의 천주교인, 잘못된 유권해석으로 순교

“제사는 우상 숭배다.”라는 교황청, 200년 뒤 제사 허용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44]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오늘은 드디어 이스탄불에서 아시아나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가는 날이다. 새벽에 아잔 소리에 잠이 깨었다. 하루에 5번 빠지지 않고 기도하면 누구나 독실한 무슬림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매일 새벽 기도를 빠지지 않고 다닌다면 그 사람은 독실한 기독교인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에는 전통적인 종교인 유교와 불교, 그리고 근대에 서양에서 전해진 천주교와 개신교, 그리고 순수한 토종 종교인 대종교, 천도교와 원불교 등 여러 가지 종교가 섞여 있다. 그렇지만 종교 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 지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또 여러 종교가 싸우지 않고 비교적 사이좋게 공존하는 나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적 관용과 공존이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에 천주교가 처음 전파된 것은 18세기 후반이다. 정조 8년인 1784년 이승훈은 베이징에서 서양 신부에게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고 돌아와 천주교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 후 7년이 지난 1791년에 최초의 순교자(윤지충)가 생겼다. 그는 왜 사형에 처해졌을까? 부모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것이 죄목이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10계명 가운

오, 신이시여, 당신은 누구 편입니까?

정교회 법통, 예수님의 직접 제자인 안드레아에서부터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4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어제 총대주교 친견을 위해 대기실에서 기다릴 때 주위를 살펴보니 정교회 안내 유인물이 있어서 하나 가지고 왔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유인물을 읽어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다. “동방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인 안드레아에 의해서 창설되었다. 안드레아의 제자인 스타키스(Stachys)가 비잔티움의 첫 번째 주교였다. 서기 330년에 콘스탄티노플이 로마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콘스탄티노플 교회는 현재처럼 정교회의 중심이 되었고 콘스탄티노플 주교가 대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의 발도로메오 총대주교는 1991년에 제270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로 선출되었다. (필자 주: 현재의 프란체스코 교황은 로마 카톨릭의 제266대 교황이다.) 터키에서 태어나고 터키의 시민인 발도로메오 총대주교는 각국 정교회를 통합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또한 타종교 곧 기독교, 무슬림, 유태교와의 대화와 화해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정교회의 법통이 예수님의 직접 제자인 안드레아에서부터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에서부터 이어져 온 로마 가톨릭과 견주어 보면 역사의 길이가 똑같다고 말할 수 있

무장사터 삼층석탑(보물 제126호)

버려진 신라의 한 하늘이 나뒹굴어 [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5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무장사터 삼층석탑 - 이 달 균 적막하다 새벽은 그렇게 더디게 온다 무장산 첩첩산중, 깨진 기와조각처럼 버려진 신라의 한 하늘이 나뒹굴고 있었다 오늘 난 문무대왕의 음성을 들을 것인가 통일의 염원으로 서라벌을 달리던 웅혼한 영웅의 기개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탑 하나로 오로지 한겨울 무장사터 간간히 흩날리는 진눈개비가 추워라 가만히 역사의 문을 닫고 전설을 걸어 나왔다 우리가 찾아간 무장사터는 동장군의 서슬이 시퍼런 겨울 새벽이었다. 일찍 출발한 탓으로 여명을 한참 기다렸다. 건물은 아무것도 없고, 탑만 외로이 심산유곡에 있어 더욱 추운 기운이 밀려왔다. 절 흔적은 거의 없는데 위쪽엔 미타상을 조성한 인연을 적은 비문 무장사아미타불 조상사적비의 비신을 받쳤던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 여기저기 깨진 기왓장들이 흩어져있어 절터임을 말해 줄 뿐이다. 무장사의 유래는 《삼국유사》에 전해오는데,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뒤 병기와 투구를 이 골짜기에 숨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병장기가 필요 없는 평화스러운 시대를 열겠다는 문무왕의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라 한다. 언제 어떤 연유로 폐사지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석탑은 숲 사

정교회의 발도로메오 총대주교 접견

총대주교, 한국의 남북평화를 기원한다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4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오늘은 이번 여행의 정점으로서 정교회의 발도로메오 총대주교를 친견하는 날이다. 친견시간은 저녁 4시 30분으로 잡혀 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오전에 숙소에서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는 돌마바흐체 궁전을 구경하기로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돌마바흐체 궁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소개가 나온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이스탄불에 있는 오스만 제국의 궁전이다. 원래 목조 건물이었으나 대화재로 소실되자 31대 술탄 압둘마지드 1세가 1859년에 석조 건축물로 재건했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로 했으며 유럽에서 보낸 수많은 헌상품과 호화롭게 꾸며진 벽들을 보면 당시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다. 오스만 제국 후기 술탄 6명이 일부 사용했다. 세람르크는 술탄이 공무를 보고 각국 대사를 접견하던 장소로 남자만 출입할 수 있었다. 하렘은 왕실 가정으로 술탄과 가족이 살았다. 터키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도 이곳을 관저로 쓰다가 1938년 11월 10일 아침 9시 5분에 집무실에서 죽었다. 아직도 집무실과 침실의 모든 시계는 9시 5분을 가리키고 있다 궁전 정원에는 베고니아, 사르비아, 금잔화 등의 풀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장미와 목백

정혜사터 십삼층석탑(국보 제40호)

허리 곧추세우고 이승의 강을 건너는 [천년의 얼 석탑, 사진ㆍ시조로 다가가기 4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정혜사터 십삼층석탑 - 이 달 균 친구여 생의 인연 하나 만나지 못했다면 지상에 흔적 하나 남기지 못했다면 서라벌 별밭에 숨은 미인도(美人圖) 보러가자 도덕산 해 기운다고 발길 재촉 마라 왕조 저문다고 눈물 보이지 마라 보아라 허리 곧추세우고 이승의 강을 건너는 경주 옥산서원 지나 도덕산과 자옥산 자락, 국보는 40호 십삼층석탑은 거기 서 있었다. 어떤 담장도, 제어할 누구도 없는 산 녘, 미인은 원래 외로운 팔자인가 보다. 단풍 드는 가을 정경이 이리 아름다운데 전혀 밀리지 않는 탑의 미려함이라니. 맑은 날 찾아간 십삼층 탑은 신라의 하늘을 이고 있었다. 이끼 낀 세월 속에서도 젊은 날의 자태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고개 숙일 일도, 타협할 이유도 없다. 그저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여정이 당당할 뿐이다. 정혜사터 일대의 경작지에는 부서진 기왓장만 어지럽다. 가져오고 싶은 것이 있을까 찾다가 그만두기로 한다. 멀리서 볼 땐 그리 크지 않아 보였지만 가까이 가 보면 한참을 올려다봐야 한다. 당시로선 매우 큰 건축물로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으리라 짐작된다. 13층이란 층수도 예사롭지 않거니와 기단부와 초층탑신의 양식, 탑신과 옥개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