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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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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세계 2위 종교, 그러나 대접 못 받아

잔인한 학살자 티무르, 문학ㆍ예술 사랑하고 무슬림 신심 깊어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11>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다. 병산도 아침형 인간이다. 병산은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 일정을 되돌아보며 생명탈핵 실크로드 카페에 순례일지를 쓴다. 어제 찍은 사진을 올리고 중간중간에 사진 설명, 여러 가지 소식, 그날 만난 사람과 들러본 경치에 대한 느낌 등등을 간단히 기록한다. 병산이 순례일지를 쓰면 내가 영어로 번역한다. 오늘도 새벽 3시쯤 일어나 어제 병산이 쓴 순례일지를 번역하였다. 내가 번역을 끝내면 순례단을 지원하는 이승은 간사가 번역문을 사진과 함께 실크로드 영문 카페에 올린다. 간사는 제주도에 살고 있지만,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거의 실시간으로 이러한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 세계는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하여 실시간으로 그리고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불과 30년 전과 견주면 참으로 놀라운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순례일지 번역을 끝내고도 시간이 남아서 안사리의 이슬람 역사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다음과 같은 그림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위 지도에서 까만색 부분은 이슬람 인구가 50%를 넘는 이슬람 국가를 나타낸다. 지리적으로 보면 이슬람 국가들은 유럽과 미국을 합친

고려인의 강제이주 이야기와 아리랑요양원

우즈베키스탄에서 고려인을 위한 위문공연 하다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10>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7/18(목) 오늘은 타쉬켄트 근처에 있는 아리랑요양원을 방문하는 뜻깊은 날이다. 아리랑요양원은 노무현 정부 때 우즈벡 정부와 공동으로 지원하여 설립되었는데, 현재 82살 이상의 고려인 노인 38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82살 이상으로 입원 자격을 제한한 이유는 강제이주가 이루어진 1937년 이전에 연해주에서 태어난 사람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를 간단히 숙소에서 해결하고 병산과 나는 씩씩하게 순례길을 나섰다. 병산이 구글 지도를 이용하여 거리를 재보니 아리랑요양원이 있는 아마드 야사비이 마을까지는 24km이다. 아직은 오전 시간이라 뜨겁지는 않아서 우리는 순례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걸어가기로 했다.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큰길을 따라 걷다 보니 시끄럽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다. 병산은 원칙에 충실한 지도자지만 때로는 유연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병산이 구글 지도를 확인하더니 지름길을 찾아내었다. 그러나 지름길은 양쪽 도로 중간에 있는 철도 때문에 100m 정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병산은 좌우로 기차가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더니 1초도 지체하지 않고 성큼성큼 철길을 건넌다. 나도 순례단원으로서 무조건 병산을 따라 철

이슬람 여성의 옷, 부르카ㆍ차도르ㆍ니캅ㆍ히잡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건축물, ‘비비하눔 모스크’ 이야기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9>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이슬람 세계의 보석으로 불리는 푸른 도시 사마르칸트에는 티무르와 관련된 유물이 상당수 존재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중앙아시아 최대 사원이라는 비비하눔 모스크다. 비비하눔은 9명의 왕비 가운데 티무르가 가장 사랑했던 왕비의 이름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이 아름다운 모스크를 방문하지는 못하고 다만 인터넷을 검색하여 이 모스크에 관해서 알아보았다. 1398년 인도 원정에서 돌아온 티무르는 비비하눔을 위해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모스크를 짓겠다고 결심했다.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제국의 각지에서 200여 명의 장인과 500여 명의 노동자를 뽑고, 대리석 운반을 위해 인도에서 코끼리 95마리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매일 현장에 나가 작업을 독려하고, 음식물을 제공하며, 주화로 포상하는 등 모스크 건립에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았다. 그 결과 비비하눔 모스크는 높이 35m에 달하는 에메랄드빛 돔과 직경 18m의 아치형 정문, 50m 높이의 미나레트 그리고 400개의 대리석 기둥이 떠받치는 둥근 천장 갤러리를 가진 화려한 모습으로 조성됐다. 실내 또한 아름다운 대리석과 다양한 형태의 모자이크 테라코타 등으로 장식되어 보는

말의 피를 빨아 마시며, 세계를 정복한 칭기즈칸

‘영웅’이란 낱말의 뒷면, 전쟁서 죽은 수많은 병사의 원혼 서려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8]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칭기즈칸은 그의 손자 대에 이르러 중국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동유럽까지를 포함하여 문명 세계의 거의 전부를 지배하였다. 몽골 초원의 유목민족이 세계 역사상 가장 큰 나라를 건설한 것이다. 그들이 지배한 면적은 현재 중국의 3배 규모였다. 당시 몽골 본토의 인구는 100만 명에 불과했지만, 점령지의 인구는 약 1억 명이었다. 이러한 1당 100의 정복과 통치가 어떻게 가능했는가에 대해서 서양 학자들은 많은 연구를 하였다. 1927년에 영국의 전략사상가 리델 하트가 쓴 책 《위대한 지휘관들을 벗긴다》에서는 몽골 군대 승리의 비결을 한 마디로 간편성(Simplicity)이라고 표현하였다. 몽골 군대는 보급 부대가 따로 없는 전원 기병의 군대이었다. 기병 한 사람이 말을 4~5마리씩 몰고 다니면서 비상식량이나 물통으로 활용했다. 사막을 건너갈 때는 물 대신 말의 피를 빨아 마셨다. 《맛있는 세계사》 (2011년 주영하 저)에 따르면 미국의 대표적인 간편식인 햄버거는 몽골 군대의 전투 식량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중앙아시아 초원에 살았던 몽골인과 타타르족은 유목민이다. 평상시에는 이동식 천막을 치고 가축을 키우며 요리를 해먹을 수 있지만,

고구려 바보 온달, 사마르칸트 왕족?

아프라시압 벽화에 그려진 고구려 사신의 비밀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7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사마르칸트는 중앙아시아 고대 연구의 중심지로서 2001년에 <사마르칸트, 문화의 교차로>라는 제목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인터넷에서 사마르칸트를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은 정보가 나온다. 중앙아시아에서 오래된 도시들 가운데 하나다. 기원전 4세기에는 마라칸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기원전 329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점령되었다. 기원후 6세기에는 투르크인, 8세기에는 아랍인, 9~10세기에는 이란의 사만 왕조, 11~13세기에는 투르크계 종족들의 지배 아래 있다가 호라즘 왕국에 합병되었다. 1220년에는 몽골의 정복자 칭기즈칸에게 점령되고 호라즘 왕국은 멸망하였다. 1365년 아미르 티무르가 몽골 통치자들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 후 티무르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티무르는 공공집회를 할 수 있는 모스크(mosque, 군사ㆍ정치ㆍ사회ㆍ교육 따위의 공공 행사가 이루어지는 건물)인 비비하눔과 자신의 능묘를 세우고 사마르칸트를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ㆍ문화 중심지로 만들었다. 1,500년 우즈베크인들에게 정복되었고 부하라칸국의 영토가 되었다. 18세기에 이르러 사마르칸트는 쇠퇴했으며 1720~1770년

몸자보 붙이고 생명탈핵 깃발 들고

'모래의 땅'이라는 뜻의 ‘레기스탄’에 가다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6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오늘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 도시인 사마르칸트를 관광했다. 타쉬켄트에서 사마르칸트까지는 313km, 기차로 3시간이 걸린다. 아침 일찍 일어나 빵을 2조각씩 굽고 달걀부침 2개에 사과까지 곁들여 근사한 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배낭을 메고 몸자보(가슴이나 등에 붙이는 대자보) 2개를 가슴과 배낭에 붙이고 생명탈핵 깃발을 들고 씩씩하게 출발을 했다. 그런데 우리가 기차표를 예매했던 타쉬켄트 역에 도착하니 사마르칸트로 출발하는 기차역은 다른 곳에 있다고 한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버스가 있다지만 시간이 급해서 택시를 탔다. 택시로 10분쯤 달리니 한적한 곳에 역이 나타난다. 자유여행하는 관광객이라면 매우 조심해야 할 사항이다. 서둘러 기차를 타니 그제야 안심이 된다. 사마르칸트까지 가면서 창밖을 보니 건조지대라는 것이 눈에 띈다. 숲이 보이지 않고 들판은 초원으로서 땅은 매우 건조해 보였다. 경작지가 보이기도 하는데, 내려서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물길이 닿아야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자연환경은 목축에 적합하다. 지리적인 측면에서 설명하면 1년에 강수량이 250mm 이내이면 사막, 250~7

할머니도, 아이들도 모두 아리랑을 부른다

한국에 가면 우리는 또 외국 사람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5]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김병화 박물관은 원래 김병화 농장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 1974년에 김병화가 죽은 후 농장은 차츰 쇠퇴해졌다. 잇단 생산 목표 초과 달성에 판단력이 흐려진 중앙정부가 과도한 목표를 지시하기 시작했다. 아랄해 유역 상류의 사막화가 심해짐에 따라 수확량이 줄어들게 되었다. 1980년대에는 목화 생산량이 소련 평균보다 낮아졌고 모범 농장이라는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렸다. 1991년에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한 이후 농업 정책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무료로 제공되는 땅에서 농사를 지어 수확량의 일부만 집단 농장에 내면 됐지만 이제는 농사를 지으려면 돈을 내고 땅을 빌려야 했다. 자연히 농사의 수익성이 떨어졌고 이농 현상이 심화되었다. 농토를 떠난 고려인들은 도시에서도 취직이 여의치 않아 살길을 찾아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연해주로 다시 되돌아가는 고려인들도 나타났다. 김병화와 고려인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소련 내에서의 고려인 이미지는 매우 좋았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서도 근면하고 성실한 고려인은 매우 좋게 평가받는다고 한다. 1976년에 준공한 김병화 박물관에는 김병화가 사용한 집기와 가구들, 그리고 당시의 생활상을 담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

마차를 타고 김병화박물관에 가다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4]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점심 식사를 끝낸 뒤에 막상 출발하려니 햇볕은 쨍쨍 내리 쬐고 날씨가 너무도 더웠다. 병산이 슬기전화(스마트폰)로 일기예보를 확인해 보니 기온이 낮 3시에는 40도까지 오른단다. 결국 병산은 이런 폭염에 걷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이니 버스를 타고 가자고 말한다. 나도 찬성했다. 병산이 슬기전화로 버스 노선과 버스 번호를 확인한 뒤에 우리는 김병화박물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얼마쯤 가다가 버스에서 내렸는데, 말이 끄는 짐마차가 지나간다. 병산이 마차를 세우고 ‘김병화박물관’을 우즈벡어로 말하면서 손짓 발짓을 하다 보니 마부가 우리를 마차에 태워준다. 말이 끄는 짐마차에 타다 우리는 짐마차를 타고 약 2km 정도 갔는데, 마부가 내리라고 손짓을 한다. 병산은 택시비 정도에 해당하는 돈을 마부에게 주었다. 병산이 다시 슬기전화로 확인하더니 다른 버스를 기다리자고 말한다. 다시 버스를 타고 한참 가다가 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거기서부터는 시골길을 걸어서 김병화박물관으로 갔다. 우리가 1960년대에 보던 한가하고 한편으로 정겨운 느낌이 나는 그런 시골길이었다. 막상 김병화박물관에 도착하였는데, 철문이 잠겨 있었다. 난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