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은 2015년 러시아 연해주 한인동포를 대상으로 생활문화 현지조사를 실시하여 2016년 8월 고려인인 목소리 조사보고서를 펴냈다. 지난 1996년부터 2005년까지 국립민속박물관은 한민족공동체 정체성 이해를 목적으로 중국과 우즈베키스탄, 카 자흐스탄, 러시아, 일본, 미국, 멕시코 지역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펴낸 바 있다. 그로부터 적게는 10년 많게는 20년의 세월 동안 우리 동포 사회의 생활문화 양상이 많이 변화하였으며, 새롭게 조성되는 동포 사회도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2015년부터 새롭게 재외 한인동포의 생활문화에 대한 조사 연구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2015년 첫 재외 한인동포 생활문화 조사지로 조사팀은 러시아 연해주의 우수리스크를 꼽았다.(2015년 조사, 2016년 펴냄) 이곳은 1860년대부터 이루어진 만주・연해주로의 한민족 초기 이주지이며, 1937년 중앙아시아로의 강제 이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이후 거주이전이 자유로워지고 연해주로 재이주를 한 러시아 동포, ‘고려인’들의 질곡의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다. 이주 1세대들은 이미 사망한 경우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일본이 철거를 획책하고 설치를 방해할수록 '평화의 소녀상'은 늘어난다. 유엔이 정한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인 12월 10일에 맞춰 독일 프라이부르크 중심부에 소녀상이 건립된다. 수원시 국제자매도시인 독일프라이부르크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되면 유럽에서는 처음이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5일 오전 수원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월례조회 '9월의 만남'에서 "독일 프라이부르크 중심부에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하기로 프라이부르크 시장과 최종 합의했다."며 "유엔이 정한 제68주년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인 오는 12월 10일에 맞춰 현지에서 건립행사를 가질 예정이다."라고 발표했다. 이날 염 시장은 "지난달 31일 디터 잘로몬 독일 프라이부르크 시장과 전화통화를 갖고, 설치장소와 건립시기 등 후속조치를 위한 구체적인 합의도 이루었다."고 밝혔다. 평화의 소녀상은 시민들이 많이 다니는 프라이부르크 시내 중심부에 건립하며, 건립시기도 평화와 인권, 역사의 상징인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기억으로 되새기는 의미에서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맞추기로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염 시장은 "그동안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둘러싸고 미국과 호주 등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 12명은 8월 30일(화) 늦은 1시 대한민국 법원에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각 1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소송에 참여한 이들은 강일출, 길원옥, 김군자, 김복동, 김복득, 박옥선, 안점순, 이순덕, 이옥선(1), 이옥선(2), 이용수, 하수임 할머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이사장 지은희)과 할머니들은 이날 제출한 소장에서 2011년 8월30일 헌법재판소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정부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을 근거로 들었다. 지난해 12월 28일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열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 방안에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정부는 ’화해 치유 재단’을 설립하고 위안부 피해자 245명을 대상으로 생존자에게 1억 원, 사망자 유족에게 2천만 원 범위에서 현금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발표해 피해 할머니들과 관련 단체 관계자들의 큰 반발을 사고 있다. 할머니들은 보도자료를 통해 "피해자들은 헌법재판소 결정(헌법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일제의 한일합병 조약이 강제 체결되며 식민시대가 시작된 바로 그 곳, 남산공원 통감관저터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피해 할머니들을 기억하기 위한 추모공간인 ‘기억의 터’로 다시 태어났다. 서울시와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위원장 최영희)는 경술국치일인 8월29일(월) 늦은 1시 남산 통감관저터에서 민‧관 협력으로 조성한 ‘기억의 터’ 제막식을 열었다. 행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와 박원순 서울시장, 양준욱 서울시의회 의장,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기억의 터 최영희 추진위원장과 ‘기억의 터’ 조성 추진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등 노동계인사들이 참석했으며, 행사장에는 참석자들 말고도 언론사 취재진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제막식의 시작은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 최영희 위원장의 인사말씀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피해할머니 말씀”으로 시작되었다. 김복동 할머니는 “그동안 여러 대통령은 지금 박근혜 대통령처럼 우리 할머니들을 괴롭힌 적이 없었다. 사죄하지 않는 일본에서 위로금 받아서 할머니들에게 준다는 것은 할머니들을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우리나라의 상징ㆍ역사ㆍ문화 등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주제를 총망라한 책자가 나왔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원장 이상진)은 《기록과 테마로 보는 대한민국》책자를 펴냈다. 이번에 펴낸 책자는 국가기록원 누리집(www.archives.go.kr)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콘텐츠 가운데 관련 주제를 선별하고 내용을 요약해 정리한 것으로, 국민들의 흥미와 관심 유발을 위해 화보집 형태로 만들었다. 특히, 올해 9월 5일∼10일 서울 코엑스에서 '기록, 조화와 우애'라는 주제로 개최되는 '2016 세계기록총회'를 기념해, 총회에 참석하는 190여 개국의 기록인들이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문화 등을 쉽게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영문판도 함께 펴냈다. 책자에 소개된 주제와 기록은 국가기록원뿐만 아니라 국회사무처ㆍ독립기념관 등에서 협조 받은 다양한 자료들로 알차게 꾸며졌다. 책자에 수록된 기록은 국가기록원 자료 137점과 관련 기관 자료 107점 등 모두 244점에 달하고 내용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사진뿐만 아니라 문서ㆍ행정박물ㆍ간행물까지 풍부하게 망라됐다. 주제는 모두 3부로, 1부는 반도체, 새마을운동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임진년(1592년) 4월 14일 부산포에 침입한 왜적은 상주 충주를 거쳐 한양에 이른게 불과 18일 만이었다. 5월 2일 한양을 점령한 뒤 6월 13일에는 평양'까지 접수하고 전 조선국토는 살인과 방화로 초토화 되어 갔다. 그러나 이들의 전쟁물자는 왜군이 점령한 육로로는 너무 힘들어 해상으로 길을 내야 했다. 그리하여 해상으로 길을 내기 위하여 경상우수사인 원균을 공격하자, 원균은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에게 구원요청을 하였다. 이때는 4월 29일 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원균의 구원요청을 즉시 받아들여 5월 4일 축시에 판옥선 24척과 협선 15척 포작선 46척을 거느리고 경상해안으로 출전하였다. 깜깜한 새벽에 출전하였으나 소비포 앞바다에 이르자 날이 저물었고, 5월 5일 당포 앞바다에 머물다 5월 6일에야 원균으로부터 왜적의 정세를 자세히 듣고 남해현령을 비롯한 경상도 전선 6척을 증편하고 거제 남단 송미포에서 밤을 지세웠다. 7일 아침 송미포를 출발하여 왜적이 머무르는 천성과 가덕도를 향하여 오시(午時=111~12시)에 옥포앞바다에 이르고 적의 동태를 살폈다. 이순신 장군은 적의 진영을 살피며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일제의 한일합병 조약이 강제 체결되며 식민시대가 시작된 바로 그 곳, 남산공원 통감관저터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피해 할머니들을 기억하기 위한 추모공간인 ‘기억의 터’로 다시 태어난다. 서울시와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위원장 최영희)는 경술국치일인 8월29일(월) 늦은 1시 남산 통감관저터에서 민‧관 협력으로 조성한 ‘기억의 터’ 제막식을 갖는다고 밝혔다. 지난 1910년 8월29일은 일제가 강제로 체결한 한일합병조약을 공포, 국권을 상실한 치욕의 날이다. 이런 의미를 담아 경술국치(庚戌國恥)일로 불린다. 행사에는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박원순 서울시장, 양준욱 서울시의회 의장, 기억의 터 최영희 추진위원장과 추진위원, 모금 참여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치욕의 공간’이 한 세기 만에, 시민 참여를 통해 ‘새로운 역사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일합병 조약 이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경제적 착취, 정치적 탄압 뿐 아니라 군 위안부라는 여성 인권유린까지 자행됐다는 점에서 강제적 한일합병 조약은 아픈 역사의 시작점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남한 정부는 부산으로 임시수도를 정하고 행정조직을 이전하여 임시업무를 보았다. 그 임시수도정부청사를 보았던 곳이 이제는 동아대학교가 되었고, 그 임시수도정부청사로 쓰이던 건물은 동아대학교 박물관이 되었다. 이제는 겉모습만이 옛날 모습이고, 내부는 개조되어 대학교 행정업무를 보는 건물이 되었고, 2층은 동아대학교 박물관이 되어 고대 신석기시대부터 출도된 부산을 포함한 남해안 한민족의 출초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신석기시대부터 발굴과정에 출토된 유물 위주의 전시품들을 돌아보면서 많은 아쉬움도 있었다. 한민족의 기원이 적어도 5,000년은 된다고 하면서도, 그 5,000년 이전에는 어떤 나라가 있었는지 알수도 없고, 최초의 고대국가인 고조선에 대하여는 별 설명도 없었다. 또 한민족의 활동영역은 본래 만주가 그 주 무대였는데, 신석기 청동기의 유물을 표기하면서도 정작 그 본류지역인 만주지역은 아예 지도에서 표현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이는 스스로 만주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역사학자들의 견해를 갖고 있음을 은연중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하니 할 수
[우리문화신문=도쿄 이윤옥 기자 ] 태풍 9호 등 세 개의 강력한 태풍이 일본열도로 상륙한 날, 도쿄 역시 태풍의 영향권 아래 일부 지하철 운행의 차질이 생기는 등 어수선한 가운데 어제(22일) 가와사키 시(川崎市)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는 ‘헤이트스피치(차별선동표현, 특히 혐한시위)를 용서하지 않는 모임’ 행사 취재를 위해 도쿄 오오츠카 숙소를 나섰다. 가와사키 시는 도쿄의 위성도시로 인구 140여만 명의 제법 큰 도시인데 숙소인 오츠카에서는 전철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다. 도쿄에 상륙한 강한 태풍으로 비바람이 몰아쳐 몸을 가눌 수 없는 궂은 날씨에도 가와사키시노연회관(川崎市勞連會館) 5층 강당에는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이날 모임의 정식 이름은 ‘시민입법으로 가와사키 시 인종차별해소 조례를! 학습・의견 교환회(市民立法で、川崎市人種差別解消條例を! 學習・意見交換會)라는 다소 긴 이름의 모임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에 대한 사례와 이에 대한 문제점 등을 공부하는 모임이었다. 이날 가와사키 시민네트워크가 초청한 강사는 교토 시에서 인종차별철폐조례를 위해 뛰고 있는 김상 교수(류코쿠대학 법학대학원)였다.
[우리문화신문=도쿄 이윤옥 기자] “한국, 조선인 피폭자의 존재는 일제 식민지 지배 탓이며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을 맞은 것은 전쟁을 일으킨 천황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한 일제국주의의 전쟁범죄와 천황제를 용인한 일본인의 무자각과 무책임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와 데루다카(塙輝高, 도쿄 거주) “인터넷을 통해 고려박물관에서 피폭 관련 전시회를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히로시마에 친구가 살고 있어서 조선인 원폭 피해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일본인으로 매우 부끄럽다.” -아리타 고타로(有田幸太郎, 시코쿠 거주)- 이는 도쿄 고려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피폭 71년 한국ㆍ조선인과 일본(被爆 71年 韓国·朝鮮人と日本)> 전시회장에서 만난 일본인들의 이야기다. 특히 아리타 씨는 멀리 시코쿠 지방에서 ‘피폭전시회’를 보기 위해 도쿄로 올라와 이날 고려박물관을 찾았다고 했다. 어제(21일) 오후 2시 기자는 신오쿠보에 있는 고려박물관을 찾았다. 고려박물관(관장 히구치 유우지)을 만든 사람들은 양심 있는 일본인들로 아베정권을 비롯한 극우 성향의 정치인들이 “침략전쟁은 없었다. 위안부의 강제성은 없다. 독도는 일본땅이다.”를 주장하는 것에 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