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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된 축제, 주군은 마음껏 즐기시옵소서.

소설 "이순신이 꿈꾸는 나라 2권" 명량의 장 57회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경상우수사로 칠천량에 참가했던 배설장군은 병을 핑계로 귀향한 상태였다. 조정에서는 수군 패전의 책임으로 원균과 배설을 지목하고 있었다. 원균은 전사한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권율 도원수가 벽파진을 방문하여 생사가 확인된 셈이었다. 이제 부터는 원균에 대한 처벌 수위 역시도 논의될 것이었다.

“그는 과오(過誤)가 적지 않은 장수입니다.”

“그러나 판옥선 12척을 그가 살려낸 것은 다행한 일이지 않소.”

정도령이 단호하였다.

“주군, 만일 어떤 전투에서든지 꽁무니를 빼어 선박을 유지한 공로를 인정받게 된다면 어느 수군장수가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하겠나이까. 그때마다 달아날 궁리만 하게 될 것입니다. 배수사를 참형하여 군기의 엄함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이순신은 혀를 차며 탄식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요. 도원수부에 장계를 올리도록 하겠소.”

이순신은 그 이상 말하지 않고 침묵의 경계 속으로 자신을 몰입시켰다. 고요한 명상의 세계에서 하나씩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어머니였다. 노모(老母)는 자식이었던 이순신을 공경(恭敬)의 대상으로 삼고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었다. 이순신의 두 형 이희신과 이요신이 요사(夭死)하자 그 조카들은 이순신의 몫이 되었고 이 때문에 노모 변씨는 더욱 이순신에게 의지할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얼마 전에 이순신이 의금부에서 풀려나와 백의종군의 신분일 때 아들 이순신을 만나기 위해 출발한 선상에서 운명하시고 말았다.

‘어머니!’

 

   
 

당시의 심정은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한 아픔이었다.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고 어머니의 뒤를 따라 이승을 하직하고픈 생각뿐이었다. 만일 이순신에게 개벽의 천명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순신은 목적을 잃고 눈을 감았을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바다가 소리 없이 떠올랐다. 파도는 잔잔했고 태양이 눈부셨다. 포구의 갈매기 떼가 하늘을 가득 덮었다. 그 무수한 새떼의 그림자가 점차 확대되며 적의 배로 넘쳐대기 시작했다. 이순신이 다시 눈을 뜨고 정신을 수습한 곳은 대장선의 누각이었다.

“어찌된 것이냐?”

이순신이 놀라며 소리치자 바로 곁에서 정도령의 경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주군의 잠이 너무 깊었나이다.”

이순신은 마치 죽은 것처럼 잠이 들었었다. 전시라 어머님의 제사도 제대로 치루지 못하고 달려왔던 고단한 몸이 모처럼 어머니의 품안에서 오랫동안 편안한 혼절을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 위태로운 곳에 군사가 따라 왔는가?”

“주군의 위기라 하심은 소생에게도 위기입니다. 이것은 준비 된 축제(祝祭)이옵니다. 주군은 마음껏 즐기시옵소서.”

정도령은 여전히 자신만만하였다. 그 자신감에 이순신은 절대 안심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이순신의 전략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또한 일본 수군의 기밀을 수집하여 출동한 것인가?”

“주군께서도 이미 아시고 계시는 겁니까?”

이순신은 푸른 하늘을 곁눈질 하면서 의미 있는 미소를 던졌다.

“사야가 김충선이 아니라면 그 누가 그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겠는가?”

정도령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끝까지 주군에게 발설하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빠르십니다.”

“김충선, 사야가 김충선 장군은 이 사람이 좀 알지.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