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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형 온계를 제대로 드러낸 평전

[서평] 《온계 이해평전》, 이동식, 휴먼필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아아, 우리 중씨(仲氏)께서는, 예사 무리에 뛰어났다. 의표(儀表)가 번쩍이는 듯하고, 내심은 봄날같이 온화하였다. 아름다운 재주가 숙성(夙成)하여서, 소문이 날마다 새로워졌다. 과거에 이름을 걸어, 청운(靑雲)의 길이 피곤하지 않았다. 요직을 두루 거치며, 충성스러운 왕신(王臣)이었다. 도량(度量)은 포용(抱容)함이 있었고, 몸가짐(操守)은 더욱 진중(珍重)하였다. 사사로이 당패를 심음이 없었고, 권요(權要)에 아부하지 않았다. 큰 환란이 나라에 다가오는데, 감히 미리 아뢰지 않을 것이랴.“

 

이는 퇴계 이황이 형님 온계(溫溪) 이해(李瀣)의 묘비문에 쓴 글이다. 퇴계는 평소에 가장 가까이에서 본 형님의 성품과 행동에 대해 묘비에 자세히 기록해 놓고 피 끓는 마음으로 형님을 애도한다. 최근 KBS에서 문화전문기자로 이름을 날렸으며, 보도제작국장을 지낸 이동식 작가가 휴먼필드를 통해 《온계 이해평전》을 펴냈다. 이동식 작가는 온계 이해 선생의 15세 후손이기도 하다.

 

작가는 들어가는 말에서 ”하늘이 명한 것[天命], 인간이 지키고 알아야 할 본성[性]을 자각하고 그것, 그러한 자각으로 인간의 도리[理]를 끝까지 추구하는 것, 도(道)를 이루는 것이라면 온계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죽음으로서 지키려고 했던 그것이 바로 유교의 선비들이 추구한 그 도(道)였을 것이다. 옳은 일이라면 목숨을 구걸하지 않겠다는 그 길을 온계는 스스로 간 것이다.”라고 운을 뗐다.

 

우리 겨레치고 퇴계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퇴계의 형 ‘온계’를 얘기하면 많은 이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온계(溫溪) 이해(李瀣)는 조선 인종 때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이기(李芑. 1476~1552)라는 사람이 우의정에 지명되자 탄핵에 앞장섰다. 그것은 바로 윤원형과 이기로 대변되는 외척들의 발호를 막기 위함이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이기는 온계가 청홍도 관찰사 시절에 유신현에서 일어난 역적 사건에 따라 역적들의 재산을 몰수할 때 이 지역 감사로 있던 이해가 멋대로 처분을 했다며 트집을 잡아 심한 매질 끝에 유배 가도록 했는데 가다가 매질 후유증으로 절명했다.

 

 

 

그런데 작가는 온계의 셋째아들 원암공 교(㝯)가 당시 상황을 꼼꼼하게 정리한 《경술일기(庚戌日記)》를 통해 온계가 매질을 당할 때의 얘기를 전해준다. “내가 처음 매를 맞을 때는 매의 숫자를 헤아리지 않았으나 두 번째부터 끝 번째까지는 하나하나 손꼽아 매의 숫자를 헤아리니 마음이 아침 해와 같이 밝아지더라.”라고 온계가 말했다는 것이다. 온계의 정신력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평전(評傳)’이란 무엇이든가? 사전을 찾아보면 ‘개인의 일생에 대하여 평론을 곁들여 적은 전기’라고 풀이한다. 그럼 평전이 대중서적인가 아니면 전문서적인가. 이에 대해 분명한 선은 그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 평전들을 보면 지나치게 어려운 말을 남발하고, 거의 학술서적처럼 접근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 대중은 평전에 잘 접근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 《온계 이해평전》의 첫장을 여는 순간부터 전문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쉽게 접근하고 독자를 배려하는 작가의 끊임없는 노력이 돋보였다는 생각이 책장을 넘기는 내내 따라다녔다. 작가는 《조선왕조실록》 등 옛 문헌을 인용하면서 그에 등장하는 어려운 말들을 쉽게 풀어주는가 하면 중간중간 독자들이 관심 가질만한 내용을 구어체로 풀어쓰는 노력도 했다. 물론 이런 노력은 작가가 온계를 제대로 이해했음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이를 토대로 독자와의 소통을 끊임없이 추구한 흔적이다.

 

 

 

다만 이 책의 편집에 약간의 흠을 잡는다면 본문 곳곳에 사진을 배치한 것은 칭찬할 일이지만 사진이 조금 작은 크기란 점과 사진을 단순히 꾸미개로 치부한듯 설명을 붙이지 않아 아쉬움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칭찬하고 주변에 이 책 읽기를 권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까닭은 온계를 드러내는 작가의 필력이 역시 예전 문화전문기자로 이름을 날렸을 때를 연상하는 뛰어남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책을 끝내면서 온계 할아버지께 편지를 쓴다. 편지는 “(앞 줄임)요즘 세상을 보면서 할아버지 생각이 더 납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대통령을 보좌하던 많은 공직자와 교육자, 사회지도층이 줄줄이 조사받아 구속되었고 전직 대통령까지도 구속돼 있습니다. (가운데 줄임) 사회에는 눈앞의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지금도 여전히 많습니다. 남의 고통을 외면하고 일신상의 안위와 치부만을 생각하는 사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할아버지가 더욱 생각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할아버지가 걸어가신 길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할아버지가 목숨을 바쳐 이루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뒤 줄임)“라고 온계 할아버지를 그리워한다.

 

온계는 “20여 년이나 조정에서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나 스스로 근행자지(勤行自持)하고 교유를 삼가서 악인과 사귀지 않았으며, 목멱산(남산) 아래 명례방(明禮坊) 조그마한 초가에서 검소한 생활로 자족하면서 그 작은 서재를 운암석실(雲巖石室)이라고 해서 저녁에 퇴조하거나 여가가 있으면 경서를 읽어서 학덕을 쌓았다.”고 한다. 작가처럼 온계의 후손이 아니어도 시대에도 온계가 그리워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백성을 위한 길만 갔던 온계의 철학이 가슴 속에

《온계 이해평전》 저자와의 대담

 

- 어떻게 평전을 쓰게 되었나?

 

“나는 자라면서 내가 진성이씨이고, 온계파라는 것을 늘 듣고 자랐지만, 사실 온계가 누군지를 잘 모르고 있었다. 이것은 후손으로서는 당연히 부끄러운 것인데, 조금 공부를 했더니온계가 단순히 퇴계의 형님이라서가 아니라 이분도 학문과 지조를 높게 가지고 백성들을 위해, 그리고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기에 이런 분을 우리 집안에만 모셔두지 않고 이 세상에서 더욱더 많은 사람에게 소개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단행본으로 정리하게 됐다.”

 

- 평전을 쓰면서 특히 염두에 둔 것이 있다면?

 

“책을 쓰는 동안 온계가 생각한 선비의 길은 무엇인가, 그것이 동생 퇴계와는 어떻게 다르고,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것이 이 시대 수많은 지식인, 공무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거울이 될 것인지를 규명해보려고 노력했다. 특히 온계는 당시 언론의 지도자였는데, 그런 과정에서 과연 온계가 걸어온 길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는지 또 그것을 위해서 온계가 지조를 굽히지 않으려 얼마나 노력했는지 드러내고 싶었다.”

 

- 평전을 쓰면서 온계의 철학이 가슴 속으로 밀려온 한 가지가 있다면?

 

“특히 온계가 벼슬을 했던 당시는 권력자에게 맞서면 관직이 힘들어지고 마침내 목숨까지 내놓아야 했지만, 모든 공부를 일신의 편안과 영달만을 위하지 않고, 다른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오로지 백성을 위하여 한 길만을 갔던 온계의 철학이 가슴 깊이 새겨졌다.”

 

- 온계가 이 시대에 들려주는 말을 대신한다면?

 

“선비가 공부하고 세상에 나왔으면 모든 사람이 고루 잘 사는 세상을 위한 길을 걸어갈 뿐, 자신의 안락을 꾀하거나 현실에서 도망쳐서는 안 된다. 그런 선비를 볼 수 없는 세상이라면 정치는 혼탁해지고, 백성들의 삶은 얼마나 피폐해질 것인가? 권력이 유혹하고 뜻을 꺾으라고 하지만 과감히 백성들이 즐거운 세상을 만드는 데에 목숨을 걸라. 그 말은 내가 살았던 당시나 지금이나 같은 이치가 아니던가?”

 

- 앞으로 또 다른 집필 계획은?

 

“내가 펴낸 책으로 보면 《온계 이해평전》은 어언 21권째지만 많이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동안 우리 음악의 바른길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지만, 이제는 역사 속에 숨은 인물들의 값어치를 찾아내는 작업을 하고 싶다. 특히 위대한 한국인으로서 손꼽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는 백남준 선생에 관한 연구와 평가가 아직 크게 미흡한 상황으로 앞으로는 백남준 평전을 쓰는 데 매진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