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유지숙의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 이야기

[국악속풀이 139]

[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 10월 초, 충북 단양에서 열린 제54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는 한국서도연희극보존회 유지숙 대표가 이끈 평안도의 항두계놀이'가 대통령상을 받았다. 전통적인 놀이형식의 이 작품이 각 시도의 훌륭한 출품작들을 제치고 대상에 오른 것은 나름대로 그 지역의 역사나 전통을 올곧게 지켜온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황해도의 봉산탈춤 이래로 이북 5도의 작품이 그러한 대상을 받았다는 점이 올해의 이북 5도청의 큰 수확이 아닐까 한다.

참고로 향두계(또는 항두계)놀이는 일종의 두레이다. 그러니까 마을의 농사일을 함께 하기 위해 조직된 평안도의 협동조합이고 이러한 조합을 통하여 지역민이 함께 일하고 추수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부르는 노래나 춤, 연희들이 벌어지는데 이와 같은 놀이를 통하여 서도지방의 삶과 정서, 애환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 항두계놀이는 다음기회에 소개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먼저 2013년 12월 18일, 오후 5시에 서울 종로구 구기동 소재 이북5도청 공연장에서 송년기념 공연으로 무대에 올리는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이라는 작품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번 작품은 특별히 조선시대 상황에 맞는 무대 디자인이나 세트 제작, 프로젝트를 이용한 배경디자인과 노래 및 반주음악의 음향, 출연자들의 대사전달이나 연기 등 기존의 소리극을 뛰어넘는 치밀한 구성이라는 점이 유지숙 명창과 연출자의 변이다. 독자 여러분에게 친근감 있게 다가가리라 믿는다.

   
▲ <추풍감별곡> 장면 1

<추풍감별곡>이란 글자 그대로 가을바람은 부는데 흘러간 시간의 애틋함을 각별하게 느껴 부르는 감상적인 노래이다. 이곡은 원래 서도지방의 대표적인 송서(誦書)로 알려져 있는 곡이다. 송서란 글 읽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글을 읽긴 읽되 보통 책방에서 읽듯이 밋밋하게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싯귀(詩句)에 따라 고저를 살리고 장단은 없으나 긴 호흡으로 낭랑하게 읽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추풍감별곡은 다른 송서와는 달리 서도소리조로 부르며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운치가 넘쳐 즐겨 읽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원본 소설 주제는 김진사의 딸 ‘채봉’과 ‘장필성’이라는 총각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간단하게 이야기의 줄거리를 짚어보면 주인공인 16세의 채봉은 미모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시(詩)와 서(書)에도 능하고 바느질이나 수놓기에 능한 아가씨였다. 그의 상대인 장필성 역시 미남에 가문도 좋은 집 자제였다. 채봉의 아버지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서울에 올라가 많은 돈을 뿌렸으나 오히려 일이 잘못되어 빚만 잔뜩 지고 볼모로 잡히자, 이를 해결하고자 채봉은 기녀가 되어 평양감사의 수청을 드는 처지가 되었다.

어느 가을 밤, 채봉은 필성을 생각하며 추풍감별곡을 지어 구슬프게 불렀는데 이 애달픈 사연을 알게 된 감사가 그녀와 장필성과 짝을 맺어 주었다는 행복한 결말의 사랑 이야기인 것이다. 아버지를 위해 기녀가 되는 점에서는 효녀 심청을 연상하게 되고, 갖가지 유혹을 물리치고 오직 장필성이라는 총각만을 사랑하는 점에서는 춘향전을 연상하게 되는 작품이다.

   
▲ <추풍감별곡> 장면 2

그러나 이 작품에서도 남녀의 관계가 순수한 사랑이외에 벼슬이나 돈, 사회구조의 모순 등으로 이루기 어렵다는 상황을 설정해 놓고 있으며 진실은 통한다는 메시지를 건네주고 있는 전통적인 풍자극이다. 모두 6절로 된 긴 시(詩)를 노래하는데, 제일 짧은 1절 대목을 소개해 보면 아래와 같다.

“어젯밤 부던 바람 금성이 완연하다 / 고침단금에 상사몽(相思夢) 훌쳐 깨어 / 죽창(竹窓)을 반개하고 막막히 앉았으니 / 만리 창공에 하운(夏雲)이 흩어지고 / 천년강산에 찬 기운 새로워라 / 심사(心思)도 창연한데 물색도 유감이다 / 정수(庭樹)에 부는 바람 이한(離恨)을 아뢰는 듯 / 추국에 맺힌 이슬 별루(別淚)를 머금은 듯 / 잔류남교에 춘앵(春鶯)이 이귀(已歸)하고 / 소월(素月) 동정(洞庭)에 추원이 슬피운다

임 여의고 썩은 간장 하마하면 끊길세라 / 삼춘(三春)에 즐기던 일 예런가 꿈이런가 /세우(細雨) 사창(紗窓) 요적한데 흡흡히 깊은 정과 / 삼경(三更) 무인(無人)사어시에 백년 사자 굳은 언약 / 단봉(丹峯)이 높고 패수(浿水)가 깊고 깊어 / 무너지기 의외어든 끊어질 줄 짐작하리.”

“어젯밤 부던 바람 금성이 완연하다” 에 나오는 금성(金聲)은 오행(五行)의 하나로 방위는 서쪽, 계절은 가을이며, 성음은 5음 중에서 제2음, 색깔은 황금색을 의미한다. 곧 가을소리를 의미한다. 끝부분에 나오는 “단봉이 높고 패수가 깊고 깊어”의 단봉은 모란봉, 패수는 대동강의 옛 이름인 점에서 이 시의 배경이 평양지방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