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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영화 러브스토리 중 “Snow frolic”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20] 흰 눈에 남겨진 순수한 사랑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죽림칠현 가운데 한 사람인 완적은 사람을 사귐에 있어 꽤나 까다로웠던 모양이다.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흘겨보아 백안시(白眼視)하였고, 자기 마음에 들면 눈에서 푸른 광채가 나며 청안시(靑眼視)하였다 한다. 완적이야 그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놓아서 그렇다지만 사람을 만나다 보면 괜히 주는 거 없이 미운 사람이 있고, 나에게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데도 예쁜 사람이 있다. 

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그러한 현상은 각자 지니고 있는 에너지 파 때문이라 한다. 에너지 파가 맞는 사람끼리 만나면 처음부터 호감을 가지게 되고 그 반대일 경우엔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인데, 오늘은 그 에너지 파가 아주 잘 맞는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영화 <러브 스토리>를 추억해본다. 

   
▲ 영화 러브스토리 OST 음반 표지
“스물다섯에 세상을 떠난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아름답고 똑똑했으며 모차르트와 바흐, 비틀즈를 좋아했고 나를 사랑했죠.” 

애잔한 음악이 흐르고 눈 내리는 공원 한 모퉁이에 쓸쓸히 앉은 한 사내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러브스토리는, 1970년 파라마운트 영화사가 제작한 영화로 에릭시걸의 소설을 필름으로 담아낸 영상미학의 걸작이다.  

당시 신인배우였던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우의 열연이 풋사과를 한 입 깨물었을 때의 느낌처럼 상긋한 내음으로 올드팬들의 가슴에 연밥처럼 박혀있는 영화이다. 

여기서 오늘 감상할 “Snow frolic”이 나오는 장면으로 필름을 되감아 보자. 

목화송이 같은 함박눈이 하염없이 쏟아지는 어두컴컴한 대낮에 고색창연한 교사(校舍)들이 성곽처럼 둘러선 하버드대학 교정에서 한 쌍의 연인은 설국의 왕자와 공주가 된다.  

어린아이처럼 재잘대며 눈싸움을 하는 장면에서 “Snow floric이 울려 퍼지고 둘은 백설기 같은 눈 위에 스러지듯 누워 오목새김(음각)을 한다.  

빙어 속만큼이나 맑은 비익조(比翼鳥, 암컷과 수컷이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라서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는 새로서, 남녀 사이 혹은 부부애가 두터움을 이르는 말)의 지저귐은 무겁게 내려앉은 눈구름을 뚫고 메사추세츠 상공을 갈랐다.  

 

   
▲ 영화 "러브스토리" 가운데 한 장면

관객들 누구나 그 장면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둘의 행복이 영원하길 바랐을 것이다. 남자주인공 올리버가 완고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강행할 때만 해도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매몰찬 작가의 펜 끝은 여주인공 제니를 백혈병 환자로 만들더니 끝내 젊은 부부의 꿀맛 같은 신혼생활에 마침표를 찍고야 말았다. 제니가 이 세상을 떠나는 장면에서 우리는 영화 속으로 들어가 올리버보다 뜨거운 눈물을 더 많이 흘렸다. 

‘러브스토리’는 OST 역시 대성공을 거두어 1970년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음악상과 골든글로브상을 한손에 거머쥔다. 음악을 담당한 프란시스 레이는 전후 샹송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샹송의 여왕 에디뜨 삐아프와의 교분 또한 돈독했으며 미국의 헨리 맨시니, 영국의 존 베리, 이태리의 엔니오 모리꼬네와 함께 영화음악의 거장으로 명성을 드날렸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대형악단이 연주하는 세련되고 격조 높은 음악을 들으며 거칠어지는 심성을 순화하곤 했었다. 

그 시절이 이토록 아련히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