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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조동진 ‘겨울비’ 관조적 노랫말로 순수함 노래해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22]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 조동진 ‘겨울비’ 수록 음반 표지
겨울비 내리던 밤
그대 떠나갔네
바람 끝닿지 않는
밤과 낮 저편에
내가 불빛 속을 서둘러
밤길 달렸을 때
내 가슴 두드리던
아득한 그 종소리

겨울비 내리던 밤
그대 떠나갔네
방안 가득 하-얗게
촛불 밝혀 두고
내가 하늘 보며 천천히
밤길 걸었을 때
내 마른 이마위에
차거운 빗방울이
 

어제 오후부터 시작한 겨울비가 오늘 아침나절까지도 내린다. 그동안 바람이 매섭다며 꼭꼭 닫아 놓았던 베란다 창을 열어젖히고 액자 속 그림 감상하듯 비에 젖은 겨울을 내다본다. 이 비 그치고 나면 추위가 온다 하고 이미 고개 너머 세상은 폭설이 내린다니 어쩌면 갑오년에 마지막으로 보는 비 일지도 모른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한 해가 또 내게서 떠나는구나! 창틀에 대롱대롱 매달린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으려 애써보지만 결국 중력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듯이, 나 역시 생로병사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 인생무상의 허탈감을 만끽하려고 밤늦도록 음악과 함께 주(酒)서방과 씨름한 결과가 고통스런 속 쓰림으로 돌아온다. 죽이라도 끓여 먹이려는 아내가 뒤주를 여니 습도 탓인지 유난히 쌀 향기가 진하게 퍼진다. 

그래, 청소년 시절에 미향(米香)이란 호를 갖고 싶다 했지. 많은 사람에게 흐뭇함을 줄 수 있는…. 

과연 나는 그렇게 살아 왔는가? 세상 사람들에게 흐뭇함을 안기기는커녕 피해는 주지 않았는가? 지구상의 그 어떤 생명체보다 우리 인간이 가장 모순된 종(種)이라 하는데 나 역시 그런 삶을 살지는 않았는지? 겨울비를 바라보며 잠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본다. 

조동진의 노래를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순수해진다. 우리가 까마득히 잊고 있던 수정보다 맑은 영혼을 그가 찾아내 주기 때문이리라. 그의 노래는 슬퍼도 슬프지 않다. 아파도 아프지 않다. 기뻐도 기쁘지 않다. 그의 노래는 관조 그 자체이다. 

한국의 대표적 음유시인 조동진은 1947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록 밴드 스타들을 많이 배출한 대광고 시절 학교밴드에 가입하면서 음악과 연을 맺었다. 연극영화과에 진학하였으나 중도에 그만두고 미8군무대로 진출하였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그의 음악적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서울로 다시 돌아와 주로 생음악 살롱에서 활동하다가 황규현을 만난다. 그가 결성한 ‘쉐그린’이 마침 베이스 주자가 공석이었던 터라 조동진을 영입했다. 하지만 리더였던 황규현이 솔로로 발표한 ‘애원’이 히트를 하면서 멤버 간 이상기류가 흐르더니 조동진을 비롯하여 하나둘 떠나버렸다. 그러나 전언수와 이태원은 계속 남아서 듀엣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조동진은 쉐그린에서 나온 뒤로는 창작활동에 몰두했다. 양희은이나 서유석, 현경과 영애 같은 당시 유명가수 들을 통해서 주옥같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러나 노래에 대한 열망을 어찌 버릴 수 있겠는가? 

오랜 준비기간 끝에 1979년에 드디어 ‘겨울비’가 수록된 첫 음반을 발표하여 판매고 30만장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세상으로 나왔다. 본디 요란한 것을 싫어하는 그의 성격 탓에 주위의 강권에 떠밀려 두어 번 TV에 출연하기도 하였으나 곧바로 얼굴을 감추고 말았다. 

음유시인 조동진! 우리 모두 그의 노래처럼 살수만 있다면…. 

김상아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