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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템페스트 ‘잊게 해주오’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31] 록그룹 이별노래 백미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이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음악들이 매일매일 쏟아져 나온다. 도치 알집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음악 가운데 대중음악이 숫자 면에서 절대적 우위를 보이고, 그 가운데에서도 사랑을 소재로 한 노래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사랑노래가 그렇게 많이 만들어질까? 어떤 이는 군사정권시절에 존재했던 사전검열제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한다. 사랑 이외의 노래, 예를 들어 친구라든가 아침이슬’, ‘물좀주소같은 노래들은 이런 저런 트집을 잡아 금지곡으로 묶어버리니, 아예 시빗거리를 피하기 위해 사랑타령이 양산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는 주장이긴 하나 사랑노래가 많은 건 비단 우리뿐이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고 보면 동의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군사정권의 대명사인 제3공화국 시절에 왜색, 비탄조의 사랑타령은 국민에게 활력을 주지 못한다 하여 탄압을 가했던 사실을 돌이키면 더욱 그렇다. 

또 다른 이는 사랑의 다양성을 답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인간이 느끼는 원초적 감정 중 가장 가치가 큰 것으로, 동서는 물론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쉽게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게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보는 눈이 약간 씩 다르겠으나 40여년을 여러 나라의 대중음악을 전달하며 살아온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후자의 설에 더욱 마음이 기운다. 

그런데, 사랑노래 가운데서도 이별을 다룬 노래가 특히 우리나라에 더 많은 건 무엇 때문일까? 그 답은 독자 여러분과 함께 차츰 구해 보기로 하고, 오늘은 필자에게도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이별노래 한 곡을 소개한다. 

   
▲ 템페스트 음반 표지
때로는 생각이야 나겠지마는
자꾸만 떠오르는 잊어야할 여인
잊게 해주오 잊게 해주오
그대를 모르게 잊게 해주오
잊게 해주오 잊게 해주오
과거를 모르게 잊게 해주오
우연히 나도 몰래
생각이야 나겠지만
잊게 해주오가운데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 그룹사운드라 불리어지던 록 그룹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64년에 키 보이스에드 포가 록 그룹의 서막을 열긴 하였으나 상징적 의미만 클 뿐 대중의 공감을 얻는 데는 다소 미흡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 나비효과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꿈틀거리다가 머잖아 그 위력을 나타낸다. 8군 무대에서 활약하던 실력파들이 속속 일반무대로 진출하여 가요계의 판도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동안 트로트 일색의 가요만 접하던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기호에 맞는 장르의 출현에 환호했고 인기의 불길은 타올랐다. 그 인기의 불길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695월에 열린 플레이보이 컵 쟁탈 전국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였다. 

대 성황리에 끝난 1회 대회에 고무되어 많은 록 그룹들이 속속 등장하였는데, 템페스트의 탄생도 그렇게 이루어졌다. 드러머 유상봉이 홍익대 미대 재학생인 장계현을 보컬로 영입하고, 성정민(기타), 유광선(키보드), 김영무(베이스)를 라인업으로 70년에 결성되었다. 71년에 나온 첫 음반은 흥행에는 실패하였으나 밤무대의 스타로 발돋움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잊게 해주오73년에 나온 두 번째 앨범 수록곡이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