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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박인희 ‘봄이 오는 길’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32] 봄을 부르는 단아한 목소리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눈이 부시다. 

안과에서 동공촬영 한 만큼이나 눈이 부시다. 내 눈이 부신 건 눈() 때문만은 아니다. 이 눈부심은 마음의 눈부심이다. 기다리던 님이 기척 없이 다가와 등 뒤에서 껴안듯 짜릿한 눈부심이다. 슬그머니 빠져 나가려던 겨울이 봄에게 꼬리를 밟혔기 때문이다. 좔좔좔 눈 녹은 물이 얼음을 이고 시내를 흥건히 적신다. 겨우내 물 한 방울 없던 수중보에도 시냇물이 넘쳐 북평 앞바다에서 올라온 황어들이 용솟음친다. 

왜가리 날개 짓에도 힘이 실렸다. 기록적인 폭설이라고는 하지만 눈이 그친지 열흘이나 지났는데도 전천 산책로에는 무릎을 넘는 눈이 그대로이다. 상류 쪽은 사람은 커녕 짐승조차 지나간 흔적 없이 설원을 이루고 있다. () 당국의 무관심 덕택에 처녀설을 밟는 우수리까지 챙기는 운 좋은 날이다. 나는 어릿광대가 되어 새끼노루처럼 겅중겅중 뛰어본다. 중년 나이에 이렇게 촐싹거린다고 벌금 매기는 것도 아닐 테고 설령 매긴들 어떠랴!  

취병산 너머로 남풍이 불어오는 오늘, 허식의 허물을 벗어던지고 이렇게 첫 봄을 맞는다. 

눈은 마음의 창이요, 얼굴은 인품이란 말처럼 박인희처럼 외모와 행동거지가 일치되는 사람도 흔치않다. 사춘기 청소년시절, 그녀의 온화한 미소와 지성적인 목소리 거기에다 초저녁 어스름을 닮은 그윽한 눈빛에 밤잠 설쳐보지 않은 이 땅의 청춘이 어디 있으랴. 

   
▲ 박인희 음반 표지
산 넘어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
들 넘어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아지랑이 소삭이네
봄이 찾아온다고
어차피 찾아오실
고운손님 이기에
곱게 단장하고
웃으며 반기려네
하얀 새 옷 입고
분홍 신 갈아 신고
산 넘어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
들 넘어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그녀는 외모에서 풍겨지는 이미지 그대로 단아하고 품위 있게 살아가고 있다. 노래와 연주, 작사, 작곡에다 시작(詩作), 방송진행까지 모든 예능분야에 천부적 소질을 타고 났지만 단 한 번도 거만을 떨거나 자랑 한 번 해보지 않은 훌륭한 품성을 지니고 있다. 

박인희는 김상희, 반효정, 이해인, 김을동 같은 유명인사들을 많이 배출한 풍문여고에서 그 인성의 기초를 닦았다. 특히 이해인, 김을동과는 동기동창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녀의 음악인생은 숙명여대 불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1969년에 시작된다. ‘미도파 살롱에서 MC로 활동 중일 때 타이거즈라는 밴드의 리더였던 이필원을 만나면서이다. 이필원의 고독과 애수에 젖은 목소리와 박인희의 지성적이며 정숙한 목소리의 조합은 천상의 화음이라는 평단의 극찬을 얻었다. 하지만 둘의 완벽한 조화가 연인사이라는 세간의 오해를 불러 뚜아 에 무아는 팀 해체라는 아픔을 겪었다. 

봄이 오는 길은 솔로로 활동하던 시기에 발표된 특히, 노랫말이 아름다운 노래이다. 음반에는 김기웅 작사·작곡으로 되어있는데 혹시 박인희가 작사한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여성적인 시어(詩語)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세상을 살다보면 마치 잘 짜인 각본 같은 우연이 있기도 하지만 이렇게 절묘할 수가 또 있을까? ‘봄이 오는 길이 발표된 날이 지금으로부터 꼭 41년 전 바로 오늘인 1974228일이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