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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빙옥(氷玉) 같은 송인수를 배향하는 청주 신항서원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47]

[그린경제/얼레빗=양승국 변호사]  청주 표충사에 들렀을 때, 표충사를 물러나와 신항서원도 들렀습니다. 신항서원은 1570(선조 3)에 유정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청주지역의 첫 번째 사원으로 건립되었고, 1660(현종 10)에 신항서원으로 사액을 받았습니다. 신항서원에는 송인수, 박훈, 경연 등 15-17세기 청주 지역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들이 배향되어 있지요 

그런데 이곳에도 당쟁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청주 지역의 유림들을 둘로 갈라놓았습니다. 이런 분쟁의 씨앗을 심은 것이 노론의 거두 우암 송시열입니다. 송시열은 신항서원에 율곡 이이를 추가로 배향하면서 배향 순서를 기존에 배향된 청주 출신 성리학자들을 제치고 이이를 맨 앞으로 하였습니다. 


   
▲ 송인수, 박훈, 경연 등 15-17세기 청주 지역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들을 배향한 신항서원(문화재청 제공)

더욱이 송시열이 화양동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신항서원은 노론이 주도하는 서원으로 자리 잡게 되어, 신항서원 운영에서 소외된 소론과 남인이 불만을 갖게 되었죠. 이후 청주지역에서는 자파의 세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자파의 서원을 추가 건립하는 등으로 14개의 서원이 난립하였다는군요. 

이런 것도 한 원인이 되어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청주 지역의 많은 소론과 남인들이 이인좌의 난에 호응을 한 것이지요. 신항서원을 찾아가니 이곳도 역시 문이 잠겨있어, 또 담 밖에서 기웃기웃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항서원에 배향된 인물 가운데 규암 송인수(宋麟壽 1499-1547)는 그야말로 청렴결백한 관리였습니다. 인종이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을 공조 참판으로 임명하자 당시 대사헌이던 송인수는 보름이 넘도록 윤원형을 탄핵하여 자기주장을 관철시켰지요. 

너무 심하게 자기주장을 펼치는 규암이 걱정된 매부 성제원이 하루는 규암과 같이 잠을 자면서 너무 고집피우지 말라고 넌지시 이야기를 하였답니다. 그러나 평소 성제원을 존경하여 성제원의 말을 잘 따르던 규암도 이때에는 거짓으로 자는 체하며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는군요. 


   
▲ 신항서원에 배향된 청백리 송인수의 무덤(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남계리, 기념물 제131호, 문화재청 제공)

규암이 동지사로 북경에 갔을 때에는 다른 사람들은 중국 간 김에 한 몫 챙기느라고 물건 사기에 정신이 없는데, 규암의 숙소는 쓸쓸하고 사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한 조각의 얼음과 옥과 같다느니, 청렴하기가 빙옥(氷玉) 같았다니 하였다는군요.  

또한 규암이 전라관찰사로 있을 때에는 한 부안 기생을 사랑하였지만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않았답니다. 규암이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에 사랑하는 기생에게 미안하여 변병 하느라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은 것은 내가 죽을까 염려되어서였다.”고 하자, 기생은 앞산의 많은 무덤을 가리키며 저기 보이는 무덤들이 다 나의 서방이었습니다.’라고 하여 모든 사람들이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답니다. 그 기생은 우스갯소리로 얘기하였지만, 실제 그 기생은 그런 규암을 존경하여 후에도 규암의 얘기를 할 때면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는군요. 

이렇게 청렴결백하였던 규암은 1547년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억울하게 사약을 받습니다. 역사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윤원형이 양재역 벽서 사건을 조작하여 눈에 가시 같은 송인수를 죽인 것이겠지요. 그러나 규암은 죽는 순간까지 의연하게 사약을 받습니다. 그렇기에 신항서원에도 배향된 것이겠지요. 

저는 규암 송인수를 신항서원 이외에도 제주 오현단에서 만났습니다. 전에 제주 재판 갔다가 제주에 유배 온 성리학자 중 5명의 현인(賢人)을 모시는 오현단(五賢壇)을 답사하였는데, 오현단에서 모시고 있는 한 분이 규암 송인수이더군요. 다만 다른 4 현인이 유배 온 것과 달리 규암은 김안로를 탄핵하다가 제주목사로 좌천된 것입니다. 


   
▲ 송인수 등 유배된 다섯 사람을 배향한 제주 오현단(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호, 문화재청 제공)

오현단에서 본 규암의 시 고충(孤忠)을 다시 음미해볼까요? 

외로운 충신이라 목숨도 가벼워 (孤忠輕性命)
짧은 노에 맡겼으니 잠겼다 떴다 하였으리 (短棹任沈浮)
해는 저물고 제주섬은 먼데 (日落芳洲遠)
혼 부른 이 마음 더더욱 아득하구나 (招魂意轉悠) 

아무튼 제주에서 만났던 규암을 청주에서 다시 만나니 반갑네요. 다음번에는 규암처럼 신항서원과 오현단에서 같이 만났던 충암 김정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