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상아 시인] 바람의 길 - 김상아 꽃씨를 틔우는 건 봄비가 아니라 바람이라 하였지 바람이 낸 길을 바람 따라 걸으면서도 그 속을 알지 못했지 음악이 날려 오고 문학이 날려 오고 이 모든 게 바람의 짓이란 걸 누군가 일러준 뒤에야 알게 되었지 내가 익는 건 햇살이 아니라 한 자락 바람이라 하였지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시인] 봄 비 - 김상아 빗소리는 고요하다 개울가 물억새 새싹에도 고요하고 돋아나는 참쑥 솜털 위에도 고요하다 빗소리는 고요하다 양철 지붕을 때려도 고요하고 자글거리는 달래 전 소리에도 고요하다 빗소리는 참으로 고요하여 낮잠 코골이에도 고요하고 낯선 발자국에도 고요하니 개들마저 고요하다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시인] 송 곳 - 김상아 이 그리움을 글로 못 쓰면 바보 아무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바람이 빠져나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아내에게는 그냥 지쳤다고만 말했습니다 TV로 공연실황이나 보며 쉬자고 했습니다 이삿짐 정리하다 송곳에 코끝을 찔렸기 때문입니다 이 슬픔을 티 내면 바보 아내에게는 비밀입니다 나보다 더 큰 그리움과 슬픔을 견디며 살아내기 때문입니다 딸아이와 나는 오래전에 헤어졌습니다 지금은 중학생쯤 되었을 겁니다 이태 전에 아내는 딸아이를 가슴에 넣었습니다 나를 무척 따르던 아이였습니다 초저녁이면 쫄병을 거느리고 나타나는 대장별이 그 아이입니다 남은 게 남는 거라는 걸 모르면 바보 두고 온 아이의 사진 몇 장, 낙서 몇 점의 애 마름도 이토록 후비는데 방안 가득한 떠난 아이의 손길은 오죽하겠습니까 아내는 몽당연필 한 자루도 버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재주가 낭추* 같던 딸들아! 심장을 찍는 이 호미질을 너희는 몰라도 된다 재능이 주머니 속에 그냥 있어도 괜찮다 노래 같은 너희 웃음소리로 아침을 열고 반짝이는 눈빛과 밤을 맞을 수만 있다면 바보라도 좋습니다 이 그리움을 글로 못 쓰더라도 * 낭추(囊錐)-낭중지추(囊中之錐)의 준말. 주머니 속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시인] 통 발* - 김상아 음악보다 술이 좋은지 슬프거나 힘들 때면 나는 술을 먼저 찾는다 글쓰기보다 글 자랑이 좋은지 책 내는데 정신이 팔려 몇 달째 글 한 줄 안 쓰고 있다 대나무는 잎은 흔들려도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다 강해서가 아니라 지조 때문이다 나는 어쩌다 통발 풀이되어 물 위를 떠돌았을까 달그림자를 보고도 짖어대는 개가 되어 구린내 나는 곳을 쏘다녔을까 제발 본모습 좀 지키라는 마누라 바가지에 다시 붓을 세운다 * 통발 - 부유성 수생식물. 뿌리가 없다.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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