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종묘제례악을 연주할 때 쓰이는 독특한 악기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축(祝)’이란 악기는 종묘제례악에서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종묘제례악을 끝낼 때 쓰는 ‘어(敔)’라는 악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축과 어 두 악기는 짝이 됩니다. 우리나라의 악기는 앉아서 연주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어와 축은 ‘방대’라는 받침대 위에 올려놓으므로 서서 연주하지요. ‘축’은 네모진 나무 상자 위판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나무 방망이를 세워 상자 밑바닥을 내려쳐서 소리를 냅니다. 축은 양의 상징으로 동쪽에 자리 잡고, 겉면은 동쪽을 상징하는 청색으로 칠하며 사면에는 산수화를 그립니다. 축을 치는 수직적인 동작은 땅과 하늘을 열어 음악을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어’는 나무를 엎드린 호랑이의 모습으로 깎아 만든 악기지요. 호랑이의 등에는 등줄기를 따라 꼬리 부분까지 27개 톱니를 길게 박아 놓았습니다. 둥근 대나무 끝을 아홉 가닥으로 쪼갠 채로 호랑이의 머리를 세 번 치고는 꼬리 쪽으로 한번 훑어 내립니다. 이러기를 세 번 한 다음 박을 세 번 울려 음악을 끝내는 것이지요. 어는 서쪽을 상징하기 때문에 대개 흰 칠을 하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 - 복효근 어둠이 한기처럼 스며들고 배 속에 붕어 새끼 두어 마리 요동을 칠 때 학교 앞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데 먼저 와 기다리던 선재가 내가 멘 책가방 지퍼가 열렸다며 닫아 주었다 아무도 없는 썰렁한 내 방까지 붕어빵 냄새가 따라왔다. 학교에서 받은 우유 꺼내려 가방을 여는데 아직 온기가 식지 않은 종이봉투에 붕어가 다섯 마리 내 열여섯 세상에 가장 따뜻했던 저녁 ▲ 다섯 마리의 붕어빵, 가장 따뜻했던 저녁을 만들어줬다. (출처, 크라우드픽) 우리 겨레는 더불어 사는 일에 익숙했다. 전해오는 얘기로는 예부터 가난한 사람이 양식이 떨어지면 새벽에 부잣집 문 앞을 말끔히 쓸었다. 그러면 그 집 안주인이 아침에 일어나서 하인에게 “뉘 집 빗질 자국인가?”하고 물었다. 그런 다음 말없이 양식으로 쓸 쌀이나 보리를 보내줬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보릿고개에 양식이 떨어진 집의 아낙들은 산나물을 뜯어다가 잘 사는 집의 마당에 무작정 부려놓았다. 그러면 그 부잣집 안주인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곡식이나 소금ㆍ된장 따위를 이들에게 주었다. 물론 부잣집에서 마당을 쓸라고 한 적도 없고, 산나물을 캐오라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8월 22일 저녁 6시 창작단 햇모로가 제11회 가프(Glocal Acting Fstival) 공연예술제에 뽑혀 금천뮤지컬센터에서 공연을 했다. 융합극, 과연 무엇일까? 공연장에 들어가 보니 무대에는 두 대의 거문고, 그리고 25현 가야금 그밖에 생황과 타악기가 놓여 있다. 또 한편으로는 다이어리가 놓인 책상이 하나 있다. 참으로 생소한 무대다. 시작되면서 거문고에 의한 음악이 극장 안을 온통 휩싸 안는다. 연주는 그저 전통적인 것만이 아닌 활로 밀어내는 색다른 경험도 보여준다. 그리곤 연기자 한 사람이 무대에 나와 독백처럼 몇 마디 하고는 책상 뒤의 의자에 앉으며 다이어리를 펼쳐 든다. 무대 뒤의 막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리고 있다. 곧이어 춤꾼이 무대로 나오면서 사뿐 춤을 춘다. 창작단 햇모로 <이끌림>은 진정한 나를 만나는 여정을 담은 융복합 음악 기반 낭독극으로 내 안의 나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는 설명이다. 운명 같은 인연은 결국 내 안의 이끌림을 통해 가식의 나를 버려야 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이 작품의 초연은 2015년 인천항구프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의 열넷째 절기로 입추와 백로 사이에 드는 ‘처서(處署)’입니다. 보름 전에 있었던 열셋째 절기 ‘입추(立秋)’가 가을에 드는 날이라는 뜻이었지만, 이후 말복이 오고 불볕더위가 절정에 이르렀는데 이제 처서가 되어 바야흐로 가을로 접어들게 됩니다. "처서가 지나면 참외맛이 없어진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입도 삐뚤어진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날씨는 본격적으로 선선해집니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든 쌀이 줄어든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아무래도 지금이 곡식이 여물어갈 무렵인 만큼 비가 오면 벼가 여무는데 지장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처서에 비가 내리는데 내일은 다시 활짝 개서 여물어가는 벼 이삭에 생기를 불어넣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때가 되면 선비들은 여름철 동안 눅눅해진 책을 말립니다. 포쇄하는 방법은 우선 거풍(擧風), 곧 바람을 쐬고 아직 남은 땡볕으로 포쇄(曝)를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음건(陰乾) 곧 그늘에 말리기도 하지요. 조선시대에는 왕조실록을 보관한 사고에 포쇄별관을 보내 실록을 포쇄하는 일이 중요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모레는 음력 7월 7일로 ‘칠석’입니다. 칠석은 목동 견우(牽牛)와 베 짜는 공주 직녀(織女)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간직한 날로 예부터 아낙네들의 길쌈 솜씨나 청년들의 학문 공부를 위해 밤하늘에 별을 그리며 소원을 빌곤 하는 풍속이 있었지요. 은하수 양끝에 사는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은 서로 사랑하던 사이였는데 옥황상제의 노여움으로 한 해에 한 번 칠석 전날 밤에만 은하수를 건너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까마귀[오(烏)]와 까치[작(鵲)]가 날개를 펴서 다리를 놓아주는데, 이 다리를 오작교(烏鵲橋)라 했지요. 칠석 전날에 비가 내리면 견우와 직녀가 타고 갈 수레를 씻는 '세거우(洗車雨)'라고 하고, 칠석 당일에 내리면 만나서 기뻐 흘리는 눈물의 비라고 하며, 다음 날 새벽에 내리면 헤어짐의 슬픔 때문에 '쇄루우(灑淚雨)'가 내린다고 합니다. 또 까마귀와 까치는 오작교를 만들려고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에 이 무렵에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유난히 부슬비가 내린다는 말도 전하지요. 이날 부인들은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 놓거나 우물을 퍼내 깨끗이 한 다음 시루떡을 놓고 식구들이 병 없이 오래 살 일과 집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상하다 - 허홍구 마주 앉으면 싸우는 놈들 있다. 눈살 찌푸리게 하고 짜증 나게 한다. 더럽고 험한 말 하는 입에는 악취가 풍기지만 저들만 모른다. 거짓말 같은 참말도 있다고 하더라만 참말 같은 거짓말도 있다고 하더라! 누구의 입에는 오리발이 붙었다 하더라 곳곳에 땅이 흔들리는 지진이 일어나고 산불이 나고, 산이 무너지고 이상하다. 세계 곳곳에 기후도 이상해져 간다. 사람도 세상도 점점 더 이상해져 간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세상이고 자식은 또 부모를 죽이는 미친 세상이다 무엇이 우리를 미치게 하는가? 무슨 까닭일까? 그냥 있을 건가? 물속을 헤엄치면서 사는 오리발에 있는 물갈퀴가 뭍에 사는 닭에게는 있을 턱이 없다. 그런데 우리 옛 속담에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라는 것이 전한다. 닭을 잡아먹고는 '내가 먹은 건 닭이 아니라 오리다.'라고 뻔뻔하게 시치미를 떼며 오리발을 증거랍시고 보이는 것에 빗댄 표현이다. 특히 정치판에서 정당이나 정당 내 파벌의 우두머리가 소속 국회의원과 주요 당직자들에게 명절이나 선거철 등에 비공식적으로 또는 정기적이나 부정기적으로 주던 음성적 활동자금도 오리발이라고 했다. 판공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滿堂歡樂不知暑 왁자지껄 떠드는 이들 더위를 모르니 誰言鑿氷此勞苦 얼음 뜨는 그 고생을 그 누가 알아주리. 君不見 그대는 못 보았나? 道傍갈死民 길가에 더위 먹고 죽어 뒹구는 백성들이 多是江中鑿氷人 지난겨울 강 위에서 얼음 뜨던 자들이란 걸.” 위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얼음 뜨는 자들을 위한 노래(鑿氷行)”이란 한시 일부입니다. 입추가 지났지만, 말복이 아직 남아 불볕더위가 여전합니다. 예전 냉장고가 없던 조선시대엔 냉장고 대신 얼음으로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한겨울 장빙군(藏氷軍)들이 한강에서 얼음을 떠 동빙고와 서빙고로 날랐는데 이들은 짧은 옷에 맨발인 자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저장된 얼음은 한여름 궁궐의 임금과 높은 벼슬아치들 차지였는데 그들은 얼음을 입에 넣고 찌는 듯한 여름에도 더위를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때 길가에는 굶주리고 병들은 채 죽은 백성들의 주검이 나뒹굽니다. 그리고 그 죽은 백성은 지난겨울 맨발로 얼음을 뜨던 백성이었음을 그들은 알 리도 없고 관심도 없음을 시인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김창협은 숙종 때 대사성 등의 관직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국의 전통 목조건축물에 여러 가지 색으로 무늬를 그려 아름답고 장엄하게 꾸미는 ‘단청(丹靑)’이 있습니다. 단청하는 주목적은 건물이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었는데 궁궐, 절, 서원 건축 등 공적이고 권위를 살려야 하는 건축물에 많이 쓰였습니다. 실용적인 측면에선 나무에 벌레가 먹거나 썩지 않게 하려는 것과 또 한국에서 건축재로 흔히 쓰이는 소나무의 균열이나 흠을 가리기 위한 것으로 대체로 30~40년 정도마다 다시 그리곤 하였지요. 단청의 종류에는 가칠단청, 긋기단청, 모로단청, 금(錦)단청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가칠단청’은 무늬 없이 단색으로만 칠한 것으로 꾸밈보다는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종묘와 남한산성 행궁 등에 쓰였지요. 또 ‘긋기단청’은 검은색인 먹과 흰색인 분을 복선으로 그어 마무리한 단청입니다. 직선으로 인해 훨씬 곧은 느낌이 나며, 가칠단청과 함께 검소한 느낌을 주는데 사당이나 부속건물에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로단청’은 목재 끝부분에만 단청을 그리고 가운데는 긋기로 마무리합니다. 모로단청은 나무가 썩지 않게 하려는 목적 말고도 방화나 벽사의 상징적 의미와 함께 건물을 화려하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도깨비와 함께 막거리를 - 함민영 꿈에서 도깨비가 나랑 씨름하자고 하네 아홉 번 지고 할머니가 일러준 게 생각나서 열 번째 왼발로 감아 넘기니 넘어갔네. 그 도깨비 막걸리를 좋아하고, 메밀묵과 수수팥떡도 좋아한다네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절대 해코지하지 않으며 도깨비는 오히려 사람에게 신통력을 부려 도와준다네 그런데 문득 내 앞에 도깨비가 나타나 함께 막걸리를 마셨으면 좋겠네. 열대야에 잠 못 드는 한여름이다. 이때쯤이면 어릴 적 긴긴 여름밤에 모깃불 놓고, 옥수수를 쪄먹으며 옛날이야기, 도깨비 이야기 따위를 듣던 일들이 생각난다. 그때 들었던 도깨비는 '키가 팔대장 같은 넘', '커다란 엄두리 총각', '다리 밑에서 패랭이 쓴 놈', '장승만한 놈'이라고 했다. 도깨비는 먹고 마시며,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고 전한다. 심술을 부리기도 하는 데 힘이 장사며, 신통력을 가지고 있어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주거나 망하게 하기도 한단다. 이렇게 신통력을 가졌음에도 우직하고 소박하여 인간의 꾀에 넘어가는 바보 같은 면도 있다. 또 사람의 간교함에 복수를 하기도 하지만 되레 잘되게 도와주는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제가 8년 전에 펴낸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 종가》 책에는 명재 윤중 선생도 있습니다. 선생은 가을걷이한 뒤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는 며칠 동안 나락을 쌓아 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곤 밤에 마을 사람들이 가져가도 일부러 모른 체 했지요. 그것은 밤에 가져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인데 혹시 머슴들이 누가 가져갔는지 말하면 모른 체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선생은 부자가 양잠까지 손을 대면 가난한 사람이 먹고살 일이 막막해진다는 생각에서 자기 집안에서는 양잠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였는데 이는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선생의 지론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 윤증 선생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로서 이름이 높았으며, 당시 노론의 영수 송시열과 대립해 소론의 영수로 추앙을 받았던 분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현종과 숙종으로부터 지평, 호조 참의, 대사헌, 이조 판서, 우참찬, 좌찬성, 우의정 등 20번이 넘게 관직을 제수받았지만, 그는 한 번도 벼슬길에 나가지 않아 ‘백의정승(白衣政丞)’ 곧 관복을 입지 않은 정승이라고 불렸을 정도입니다. 그런 선생은 책력 앞머리에 《주자대전(朱子大全)》의 목차 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