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답사 기간이 길어지니 오늘이 며칠, 몇 시인지 시간관념이 희미해졌다. 해 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자리를 깔고 잠을 자니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사니 즐겁고 행복한 나날이었다. 텐트에 비치는 햇살에 눈을 뜨니 모두 일어나 분주하게 아침준비를 한다. 굶주린 독수리가 무리를 지어 우리 야영장 주변을 맴돌았다. 사람은 사람대로 동물은 동물대로 자기의 위치에서 살아가니 초원의 시간은 평화롭게 흘러갔다. 주변 정리를 깨끗이 하고 출발하였다. 30여 분 달려 텔멍까지 가니 포장길이 나타났다. 4년 사이에 도로포장 공사를 했다니 깜짝 놀랐다. 몇 년 안에 울리아스타이시까지 포장이 될 것 같다. 이 구간에 제일 큰 대형 돌무지무덤(적석총)과 사슴돌 비석을 답사하고 토손쳉걸 마을 강가에서 점심을 먹는데, 4호차 운전사인 자야 씨의 고향 마을로 옛 친구가 우연히 강가에 나왔다가 반가워했다. 몽골의 고갯길은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 결빙을 막기 위하여 비포장으로 두어 사고를 방지한다고 한다. 생활의 슬기로움인 것 같다. 솔롱고티얀 고개를 넘어 한가이 산맥 북쪽 평원으로 내려왔는데 도로 오른쪽 멀리에 작은 비석이 하나 보여 차를 세우고 조사를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며칠째 이어지는 비포장 길과 건조한 날씨 척박한 환경에 모두 피곤해 하였다. 필자도 목이 쉬고 입술이 터져 엉망이지만 오늘도 만만치 않은 길을 나섰다. 울리아스타이시는 훈족 우현왕의 옛도읍으로, 첩첩산중 사막에 위치하여 접근조차 하기 어려운 곳이다. 숙소 앞에 있는 시립박물관에서 이 지역에 살았던 유목민의 삶과 역사를 배우고, 어텅겅텡게르산(4,021m Otgontenger uul) 가는 길에 있는 다얀산(2,750m) 천제단을 찾아서 출발하였다. 만년설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의 수량이 많아, 하천 주변으로 게르와 양 떼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천제단의 위치는 산상 호수 2개의 가운데 산 꼭대기에 있는데 이정표가 없어 위쪽 호수까지 가서 주민에게 물어보니, 아래쪽 호수 뒤쪽으로 진입하여야 한다고 알려줬다. 다양산 꼭대기로 오르는 길 아래에 차를 세우고 바라보니 제주도 오름처럼 식생 한계선으로 가까이 보이지만 2시간 정도 산행을 하여야 오를 수 있는 큰 산이다. 발아래는 솜다리 꽃(에델바이스)과 이름 모를 꽃이 만발하였다. 가까워 보이는 산이지만 천천히 올라야 했다. 여러 곳에 성혈(선사시대 유적에서 확인되는 바위에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아침에 일어나니 햇살이 강렬하게 비춰 상쾌한 아침이었다. 일부 답사단이 새벽에 등산을 하였고 나머지 대원은 여유 있게 출발 채비를 하였다. 알타이산이 거대하게 펼쳐진 하삭트하르항 산이 아름답게 펼쳐진 한 폭의 그림 같은 언덕 게르에서 야크를 키우며 살아가는 집을 찾았다. 4년 전에 방문하였는데 살던 할아버지는 앞에 보이는 게르에서 살고, 아들 내외가 살고 있었다. 게르에 방문하니 아기 둘과 아주머니가 있다. 아주머니는 어름(야크 젖 치즈)과 빵을 대접하면서 수태차를 끓이는 작고 협소한 게르에 2~30여 명이 들어가 풍성한 대접을 받았다. 연속 3일째 이어지는 비포장길로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타이시르까지 가는 길은 지도상에 나타나지 않아 걱정하였는데, 막상 진입하니 길이 희미하고 험하지만 통과하기에는 무난하였다. 가는 길에 자우항강 줄기가 가늘게 나타났다. 이 강은 한가이산 서부에서 발원하여 울리아스타이를 거처 몽골 서부 저지대 하이어가스 호수(둘레 240km)로 흘러든다. 강의 유로 연장 540km나 되는 큰 강인데, 가뭄으로 가는 물줄기를 형성하면서 흐렸다. 쉴루스테로 가는 길은 타이시르에서 65km로 고비사막을 벗어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알타이시는 몽골 서부를 잇는 기점으로 작고 아담한 오아시스 도시이다. 어젯밤은 근사한 호텔(EHTYM HOTEL 7048-3364)이 있어 하룻밤을 편안하게 쉬었다. 간단하지만 조식을 먹고 알타이 시내를 걸어서 박물관으로 가는데 햇볕이 따가웠다. 거리에 스키타이 양식의 대표적인 동물무늬가 새겨진 청동 말 동상(BC 3~7세기)이 알타이시의 상징으로 설치되어 있다. 알타이박물관 전시물은 4년 전과 동일한 것 같았다. 방명록을 보니 2014년 8월 4일 필자의 이름이 나와 있었다. 2018년 6월 21일 또 방명록을 쓰니 감회가 새로웠다. 알타이 시장에 들러 구경하고 알타이산맥의 지맥인 하삭트하르항산(3,579m) 마더 마운틴으로 출발하였다. 큰 산을 끼고 도는 길이라 거리가 75km밖에 안되지만 무척 험하여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가는 길 주변에 4~50 여기의 돌무지무덤(적석총)이 흩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 몇 개는 줄자로 크기를 재고 기록을 하였다. 어렵게 산 입구에 들어서니 우리 차가 고개를 넘지 못하였다. 4년 전에도 차를 밀어서 고개를 넘었는데 이번에도 똑같이 밀어서 고개를 넘었다. 험한 산이라 어쩔 수 없다.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어제 밤은 초원에서 야영하였더니 기분이 좋았다. 모두 일찍 일어나 분주하게 아침을 먹고 떠날 준비를 하였다. 이번 답사에서는 이동식 화장실 텐트를 설치하여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출발 전 미팅에서 어제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운전사들에게 선두 차를 앞질러가지 말라고 하였다. 빨리 가다가 사막에서 헤어지면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으므로 선두 차를 따라올 것을 강조하였다. 오늘 달려야 할 고비사막은 115km는 포장도로이고 285km는 비포장 구간으로 몽골의 진수인 고비사막을 즐길 수 있는 멋진 곳이다. 이 길은 칭기즈칸의 서역 정벌 길로 동서 교류의 장이며 문화의 이동로이다. 바얀홍고르 시내를 벗어나니 바로 비포장도로가 나왔다. 멀리서 대형 컨테이너 차량이 고비사막을 뚫고 먼지를 풀풀 날리며 달려오는 모습을 보니 고비에 진입하기도 전에 질렸다. 바로 옆에는 도로포장 공사를 하고 있었다. 4년 전에 왔을 때 알타이시 부근에만 포장이 되었는데 고비사막 연결도로가 수년 내로 포장이 완료될 것 같았다. 이 지역은 고비알타이 사막으로 여러 개의 저지대 호수가 있는데 우리 답사단은 그 가운데 제일 큰 버엉차강노르(Buun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새벽 한기에 잠을 깨 게르에서 나오니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고 상쾌하였다. 차량별로 아침을 먹고 바얀홍고르로 출발하였다. 오늘부터 가는 길은 건조하고 메마른 고비사막으로 들어가는 힘든 고행길이다. 구름과 하늘이 맞닿는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에 포장과 비포장도로가 이어지는데, 더위 속에서 먼지를 뚫고 길이 없는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는 험한 길이었다. 예년에 견주면 오랜 가뭄으로 강은 말라 있고, 도로 주변의 초지는 말라붙어 사막처럼 먼지만 풀풀 날리는 곳에서 풀을 뜯는 양과 말이 바짝 말라 갈비뼈가 보여 안타까웠다. 그래도 가끔 저지대 습지 지역을 지날 때 민들레와 이름 모를 꽃이 양탄자처럼 낮게 피어 장관을 이뤘다. 끝없는 평원을 달리다 보면 하늘과 땅이 하나로 보이며, 둘러보는 사방 모두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아르웨이헤에르시에서 시장을 보고 다시 사막으로 달렸다. 주변에 가끔 적석총이 보이나 뚜렷하지 않아 지나치는데, 하이르항돌랑을 지나는데 오른쪽 언덕에 적석판석묘가 여러 개 보여 잠시 둘러보고, 샤르팅죠 판석묘(E45˚54´59˝, N101˚39´18˝, h1939m)를 찾기 위하여 이일걸 단장에게 위치를 알려주고 차량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1일 차 2018.6.17. 일요일, 19시 05분 출발 몇 달 전부터 원정 준비하여 오던 몽골 답사 출국 날 단원을 오랜만에 만나니 반가웠다. 새롭게 지어진 인천공항 제2터미널이 멋지게 단장되어 출국수속을 편리하게 잘 할 수 있었다. 21:45분 울란바토르 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답사 단원 중 야외 활동을 오랜만에 하는 분들이 있어 칭기즈칸 공항 구내에서 차량별로 나누어 줄 가방을 열어놓고 11일간 사막에서 먹을 건조 음식과 버너 사용법을 설명하는데, 주차장에서 기다리던 신 사장과 저리거씨가 우리를 찾고 있었다. 짐을 챙겨서 조별로 차량에 나뉘어 싣고 큰 가방이 많아 화물차에 어렵게 실었다. 출발 전 여러 번 큰 가방 가져오지 말라고 하였는데 여러 명이 대형 가방을 가져왔다. 차량지붕 위에 어렵게 짐을 실으니 밤 11시 40분이다.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채운 후 12시 40분에 미니 고비사막으로 출발하여 밤새도록 달렸다. #2일 차 2018.6.18. 월요일, (이동 거리 410km, 고도 1,575m) 아나르 캠프장 사막의 일출을 보기 위하여 공항에서 바로 출발하여 밤새 달려서 05:10분 미니고비(니생다사하)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안동립 고조선유적답사회장은 <몽골 서부 카라코룸에서 고비사막, 알타이산맥까지> 답사기를 보내왔습니다. 32일 동안 9,000km를 달린 몽골 답사 가운데 세 번째인 이번 답사도 우리 민족의 기원과 뿌리를 찾아 정처 없이 떠난 여행이라고 합니다. 모두 12번에 걸쳐 연재합니다.(편집자 말) 2018년 6월 17일(일요일) ~ 6월 28일(목요일) 9박 11일 이동 거리 2,780km 지구상 마지막 두메(오지), 사막의 바다를 건너 거친 대자연이 어우러진 성스러운 땅 몽골...! 필자는 세 번에 걸쳐 몽골을 답사했다. 1차 (2010.6.11.~18일 몽골 동부), 2차 (2014.7.31.~8.11일 몽골서부 홉스골지역), 3차 (2018.6.17.~28일 몽골 서부지역)에 걸친 답사여행 날짜와 거리를 계산해보니 32일 동안 약 9,000km를 달렸다. 우리 겨레의 기원과 뿌리를 찾아 정처 없이 떠난 여행에서 우리와 몽골의 동질성을 보았다. 고구려 서울인 국내성 집안시 환도성에는 수많은 대형 적석총이 수백km 반경에 분포되어 있었다. 그 적석총들은 우리나라 여러 곳에 있는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사진 46) 서도 물골 주변에 영어로 ‘STOP’ 글자를 새겼는데, 영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상주 하였던 듯하다. (위치 자료 20번) 사진 47) 서도 물골 주변에 태극무늬 암각 사진과 ‘조 자, ㅓ재’ 글자로 두 명의 여성 이름이 나온다. ‘조 자’는 글자가 훼손되어 무슨 글자인지 정확하지 않다. (위치 자료 20번) 사진 48) 서도 물골 주변에 ‘김종만 고영희’ 글자는 한 면에 나란히 쓰여 있어 애인이나 부부로 보이며, ‘조자’와 함께 여자 이름으로 추정된다. (위치 자료 20번) 사진 49) 서도 물골 주변에 한문으로 ‘心乱’ 난 자와 여러 글자의 흔적이 보이는데 풍화가 되어 정확하게 알아볼 수 없다. (위치 자료 20번) 사진 50) 서도 물골 주변에 ‘최성곤’ 글자는 정체로 단단한 바위에 뚜렷이 새겼다. 그 아래쪽에도 글자의 흔적이 보이는데 풍화가 되어 정확하게 알아볼 수 없다. (위치 자료 20번) 사진 51) 서도 물골 주변에 ‘민’ 글자는 보이고, 바위 이끼가 낀 부분과 바위의 갈라진 주변에 10여 개의 글자의 흔적이 보이는데 풍화가 되어 정확하게 알아볼 수 없다. (위치 자료 20번) 사진 52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사진 15) 독도 등대 앞쪽 땅바닥에 시멘트로 만든 태극기이다. (위치 자료 15번) 사진림 16)독도를 지키다 순직한 경찰 위령비 6기가 동도 등대 앞에 세워져 있다. (위치 자료 17번) 사진 17, 18, 19, 20, 21) ‘독도, 獨島, DOKDO KOREA’ 옆면에 설치 연도, 뒷면에는 ‘한국산악회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단, KOREAN ALPINE CLUB, 15th AUG 1952’라고 써진 한국산악회 독도 표지석은 1953년, 2005년에 설치한 것은 유실되고 2015년 8월 9일 동도 부두 계단 앞에 다시 설치하였다. 그림 20과 21은 2005년 다시 설치하였는데 유실된 한국산악회 비석이다. (위치 자료 10번) *2005년 복원 유실 사진, 최선웅 제공 사진 22, 23) 청동으로 만든 성화 채화대로 1996년 5월 5일에 동도 전차바위에 세운 조형물이다. 준공 비문은 ‘경상북도 개도 100주년을 맞아 제34회 도민체육대회를 기념하여 독도를 사랑하는 300만 경북인의 숨결을 여기에 모았으니 독도여 영원하라! 경북이여 웅비하라! 1996년 5월 5일 경상북도지사 이의근’ (위치 자료 13번) 사진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