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나는 현재 공자보다도 더 오래 살고 있지만, 인생 칠십에 배우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음을 깨닫고 있다. 지금 이 나이에 배워서 뭐하냐는 말들을 하지만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고, 배우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어디에 써먹으려고 배우는 것보다도 배우는 것 자체가 기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이런 말도 세상에서 크게 성공하신 분들로부터 들으면 그 의미가 새로워질 수 있다. 위의 말을 한 사람은 가야금 음악가이신 황병기 님이다. 가야금 연주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황병기 선생은 2013년에 갑자기 《논어 백 가락》이란 책을 내셨는데 공자의 어록이라고 할 《논어》의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인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라는 귀절을 설명하면서 배움의 중요성을 다시 말씀하신다. 이 책이 나온 2013년에 황병기 선생은 77살이셨다. 말하자면 70대 후반에 접어든 때인데, 이 때에도 배움의 중요성, 아니 배움의 즐거움과 기쁨에 대해서 잔잔하게 말씀을 하신다. "아무리 노인이 되어도 뭔가를 알고 배우려는 게 사람이다. 노인도 세상 뉴스는 알고 싶고 손주들이 어떻게 지내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얼마 전에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한 음식 프로그램에 손이 멈춰졌다. 장안에 인기를 끌고 있는 요리사 앞에는 대형 스크린이 있고 그 속에는 전 세계 40여 개 나라에 흩어져 있는 한국인, 혹은 한국요리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들이 화상으로 연결돼 각자의 조리대에 재료를 쌓아놓고 있었다. 서울에서 요리사가 요리방법을 알려주면 영상으로 그것을 보고 요리를 해나가는데 요리가 잘못되면 요리사가 개선방법을 즉석에서 가르쳐주고, 잘 된 것은 칭찬을 해주니 각국에서 참여한 자원자들이 원하는 요리를 만드는 방법을 눈앞에서 배우고 그렇게 만든 음식을 맛보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동안 화상회의를 한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세상에, 이제 전 세계 어디에 있든지 직접 수강생이 되어 직접 눈앞에서 요리를 시도하고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로 확산된 이후 가상공간을 통해 접촉과 교류, 쌍방향에다가 다방향의 회의나 수업, 교육하는 이른바 비대면(非對面) 문화가 ‘뉴 노멀’, 혹은 새로운 대세가 되었음을 실감하게 한다. 얼마 전에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새해가 되어 봄이 돌아오자 만물이 새로운데, 성명께서 즉위하여 나라를 다스리신 지 큰 나라인 경우 천하에 호령할 수 있는 준비 기간인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 세월은 위에서 흘러 하늘의 운수가 바뀌었으며, 백성은 아래에서 곤궁하여 사람의 일이 극에 도달하였습니다." 1663년 새해가 되자 교리 이민서(李敏敍) 등이 당시의 왕인 현종에게 올린 차자(箚子:왕에게 올리는 간단한 서식의 상소문)의 시작은 이렇게 한다. 효종을 이은 새 임금이 즉위한 지도 5년이 지났는데, 이 정도면 정사를 다 파악해서 나라가 편안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기 위함이다. ”지금 전하께서는 ....왕위에 계신 기간이 적은 것이 아닌데 세도가 나쁜 쪽으로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인심이 벌써 떠나갔으니 대업을 보장할 수 없으며, 국가의 형세가 이미 기울었으니 나이가 한창때인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성명께서는 위로 선왕께서 부여하신 막중한 사업을 생각하시고 아래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상황을 살피시며, 계절이 바뀐 데에 느낌이 일고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데 슬퍼하시며, 한밤중까지 잠 못 이루며 생각하고 안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아무리 겨울이 실종되었다고 해도 겨울은 겨울이다. 나이가 들어 눈 앞에서 날아갈 듯이 가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다고는 하지만 한 해를 보내고 새로 맞는 마음에는 늘 비장함이 파고든다. 새해를 맞으며 지난해 가졌던 찬란한 꿈과 희망이 결국에는 또 후회의 반복이라는 파도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한 밤의 어둠을 깨고 나오는 새벽, 새해의 첫 해를 정성껏 맞이했다. 예전에는 첫 해에 자신에 관한 소망을 담았다면 이제는 내가 아니라 우리 자식 손주들, 우리 사회와 국가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이 달라진 것이긴 하지만. 한 해를 바꾸는 때를 세(歲)라고 한다. 세모(歲暮)라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해가 바뀌면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사람은 당연히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다. 중국 고대의 역사에서 교훈을 알려주는 경전인 《서경(書經)》의 홍범(洪範) 부분을 보면 "임금은 해(歲)를 살펴야 하고, 귀족과 관리들은 달(月)을, 낮은 관리들은 날(日)을 살펴야 한다(王省惟歲 卿士惟月 師尹惟日)"라는 구절이 나온다. 세상이 잘 돌아가고 못 하고는 일 년을 단위로 나타나기 때문에 임금은 크게 전체를 보아야 하고 그다음 신하들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세월 빠르다. 시간 빨리 지나간다는 말은 하면 바보인 것 같다. 엄연히 뻔한 진리인데 새삼 읊조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일 터. 그래도 현실인 것을 어떻게 하나. 누구처럼 새해가 되었다고 희망을 노래한 것이 언제던가, 벌써 일 년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새해를 맞아하려고 했던 몇 가지 일들은 반의반도 시작도 못 하고 또 어영부영 살다가 다 써버렸으니, 여름 장미꽃잎처럼 팽팽하고 빛나던 나의 꿈은 어느새 시들었고 다시 찬 바람에 가시마저도 숨구멍을 닫아야 하는 때가 되었다. 내일모레가 섣달그믐이다. 우리가 양력을 쇠니 양력으로 따져볼밖에. 섣달그믐이 어떤 밤인가? 해가 바뀌는 밤이다. 절서(節序)의 빠름은 전광석화와 같고, 시간의 흐름은 달리는 말이 문틈을 스쳐 가거나 뱀이 골짜기를 지나가는 것과 같단다. 시인은 해가 저물어 간다고 자신의 감회를 부쳐 읊고, 공자(孔子)는 세월이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음을 탄식하며 한숨을 쉬었다. 평생을 내 집으로 생각하며 살던 회사를 나온 지도 벌써 해로 보면 두 자릿수에 가까워진다. 그전에는 선배들이 하던 대로 여행도 가고 놀기도 놀고 또 선배들의 도움으로 개인적으로 좋은 일도 없지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초겨울에 접어든 요즈음에 나는 천 원의 행복 속에 빠져들고 있다. 시중에 점점 많아지고 있는 천 원짜리 전문점을 가주 간다는 뜻은 아니다. 나에게 이 행복을 주는 곳은 동대문 밖 종묘 옆 담자락 주위로 펼쳐진 중고시장이고 그 가운데서도 옛 책들을 파는 몇몇 서점이다. 지하철 1호선 동묘앞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가면 거기서부터 동묘공원 담을 따라서 청계천까지 광범위하게 중고품 시장이 펼쳐져 있어서 대낮에는 엄청난 숫자의 시민들이 오셔서 자기한테 필요한 물건을 골라 흥정하고 사가는 풍경이 정겹다. 그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오른쪽에 하나 또 저 안쪽으로 가면 왼쪽으로 두 개의 큰 중고책 서점, 다른 말로 하면 옛 책 서점이 있는데 각 서점 앞에는 길에다 책을 널어놓고 한 권에 천 원씩을 받고 책의 주인을 찾는다. 길에 누워서 주인을 기다리는 이 책들은 베스트 셀러였던 소설류나 수필들, 혹 신변잡기류, 철 지난 자기개발서적, 곧 돈 벌어 성공하는 법, 여행안내서, 요즘 쓸모없는 사전류 등등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어떻게 보면 이미 용도가 끝난, 도서라는 지식유통체계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 것 같은 그 책 더미 속에 가끔 보물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동지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동지라 하면 팥죽을 생각하게 된다. 팥죽이라고 하니 서울에서 송추로 가는 도봉산 오봉 기슭 석굴암의 팥죽 전설이 생각난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 년 전인 1792년, 당시 석굴암에는 노스님과 동자승 단둘이서 살았는데 그날은 마침 동짓날이었고, 밖에는 많은 눈이 와서 마을과의 왕래가 끊기었다. 동자승이 아침 일찍 일어나 팥죽을 끓이려 아궁이를 헤집어 보니 그만 불씨가 꺼져 있었다. 노스님께 꾸중 들을 일에 겁이 난 동자승은 석굴에 들어가 기도하다 지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눈을 뜬 동자승이 공양간에 가보니 아궁이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바로 같은 시간. 석굴암에서 10여 리 떨어진 아랫마을 차(車) 씨네 집에서도 팥죽을 끓이고 있었다. 당시 50대 초반의 차 씨 부인 파평 윤씨가 인기척에 놀라 부엌 밖으로 나가보니 발가벗은 아이가 눈 위에 서 있었다. 깜짝 놀란 차 씨 부인이 "어디에서 새벽같이 왔느냐?"고 묻자 동자승은 "오봉 석굴에서 불씨를 얻으러 왔다"라고 대답했다. 차 씨 부인은 하도 기가 막혀 "아니, 스님도 너무 하시지. 이 엄동설한에 아이를 발가벗겨 불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하다가 일이 터졌다. 애들 다 출가시키고 둘이서 사는 우리, 지난 주 집사람이 갑자기 김장한다고 해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소식을 전했더니 “도와주어야지, 여자 혼자 하려면 너무 힘들다.”라고 하기에 큰맘 먹고 바깥 일정을 줄이면서 들어와서 배추 속을 만들기 위한 무채 썰기 시작했는데 무 두 개를 썰고 나서 그만 채칼에 오른 손 엄지 끝을 베이고 말았다. 손톱도 조금은 잘리는, 엄지손으로 보면 중상이다. 그냥 지혈로 버텨보는데 지혈이 안 된다. 결국, 집사람의 성화로 자정 무렵에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니 당직 의사와 간호원이 고생고생하면서 봉합수술을 해주신다. 집에 오니 새벽 1시 반. 일단은 안심하였지만,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였다. 말하자면 오른손 엄지가 없어진 셈이다. 붕대로 감아놓으니 힘을 쓸 수가 없다. 물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물에 손을 담글 수가 없으니 면도를 하려고 해도 오른손으로 하던 면도기를 제대로 잡을 수가 없어 면도가 안 되고, 머리를 감을 수 없고, 옷을 입으려니 단추를 꿸 수가 없어 못 입겠다. 나는 골프를 안 치니 그립 잡는 것으로 고민할 이유는 없지만, 오른손으로 하는 작업 중에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저 뜯어 달아난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 나무는 눈물 흘리며 감사한다 이 아름다운 싯귀는 시인 나희덕이 11월에 부쳐 쓴 작품이다. 겨울을 재촉하는 강한 바람에 마지막 매달려 있던 나뭇잎마저 뜯겨 날려 가는 계절을 짧은 글로 나타내고 있다. 계절은 나희덕이 그린 11월을 넘어서 12월로 접어들었다. "어허 벌써 올해도 마지막 달로 접어들었단 말인가?" 이런 탄식이 사람들의 입에서 줄을 잇는 그런 사이에 아침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고 공원의 나무들은 게으른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계절의 위력에 순응이라도 하려는 듯 마지막 잎까지 날려버릴 준비를 다 하고 있다. "명령만 내리세요, 겨울님!" 그들은 더는 동장군의 위력에 저항할 의지도 버린 모양이다. 그 마지막 잎새를 바라보며 나는 미국작가 오 헨리의 단편소설보다는 더 마음이 댕기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가수 배호가 부른 같은 이름의 노래다. 그 시절 푸르던 잎 어느덧 낙엽 지고 달빛만 싸늘히 허전한 가지 바람도 살며시 비켜가건만 그 얼마나 참았던 사무친 상처길래 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 그런데 이 멋진 노래의 노랫말은 포항출신의 정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늦은 가을에서 겨울로 치닫는 요즈음 나를 사로잡은 음악이 하나 있다.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1845~1924)의 ‘무언가 3번’이란 피아노곡이다. 3분 안쪽의 짧은 곡인데 한 번 듣는 것으로 성이 차지 않을 때에는 다른 사람들의 연주를 포함해서 몇 번이고 듣지만 주로 이 한국인의 연주를 우선 듣는다. 무언가라면 무언(無言). 곧 가사가 없는 노래라는 뜻이겠지. 피아노곡은 원래 노래 없이 연주만 하는 경우가 많으니 특별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라고 하면 무언가 정말 드러내지 않은 메시지가 담겨있는 듯한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이름이다. 프랑스 사람인 작곡자 포레가 붙였을 원제목은 불어로 ‘Trois romance sans paroles’라고 해서 ‘무언의 3개 로망스’라고 뜻인데 그냥 무언가라고 부른단다. 포레의 작품번호 17번인 이 곡은 3곡인데 그중에 3번째 곡이 글자 그대로 로망스의 분위기가 나는 곡이다. ‘로망스’라고 하면 우리는 베토벤의 로망스 2번 F장조를 처음 듣고 그 두근거림과 달콤함에 곧 빠진 기억이 새로운데 이 곡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런 달콤하면서도 아련한 느낌과 함께 이 곡과 관련된 어느 한 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