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예당카의 부하들이 저마다 일어나 칼과 곤(棍), 철퇴 등을 움켜쥐고 족장 주변의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김충선을 내려다보는 예당카의 눈매가 섬뜩하도록 차가웠다. 이곳이 내 부락이요, 내 부족이 있는 곳인데 어디로 대피한단 말이냐? 너희 조선 왕은 도망갈지 몰라도 난 아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조선 왕이라고 부족장 예당카가 분명 말했다. 김충선은 순간적으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정체가 이미 탄로 난 것이 아닐까? 병장기를 휴대한 예허부족의 막료들이 김충선을 포위했다. 그럴 리가 없다! 김충선은 내심 부인했지만 예당카의 살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조선에서 온 장수라고? 김충선! 그대가 착각한 것이 있다. 김충선은 맥이 탁 풀렸다. 역시 예당카는 사전에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실수가 있었던 겁니까? 예당카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오만한 어조로 말문을 이었다. 우리 만주의 여진족은 상대 적장을 암살하는 그런 비열한 방법을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비록 서로의 의도가 달라서 전쟁을 벌이기는 하지만 우린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 우린 하나의 민족이다. 그렇다면......? 건주여진의 칸이 내게 비밀서신을 보내왔다
[한국문화신문 =유광남 작가] 여기인가? 드디어 중앙의 대형 막사를 발견하였다. 입구에는 병사 두 명이 각기 장창을 꼬나 쥐고 경계를 서고 있었다. 마침 주변은 오고가는 사람 없이 조용했다. 절호의 기회가 왔다 싶은 김충선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누구냐? 여기 하다부족의 장수가 혹시 오셨소? 병사 중 한 명이 물러가라는 손짓을 했다. 하다부족의 진영은 서쪽에 자리하고 있소. 김충선이 아둔한 척 다시 되물었다. 그럼 여긴......어느 부족의 막사요? 병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예허 족장님이 머물고 계신 본영을 모르고 있소? 김충선은 자신의 예감이 들어맞자 병사들을 향해서 벼락처럼 공격을 감행했다. 우측의 병사를 향해 발길질을 하는 동시에 손 안에 감추고 있던 암기로 좌측 병사의 옆구리를 찔렀다. 어쿠. 기습을 받은 병사들이 반격을 하지 못하도록 김충선은 복부를 걷어차여 쩔쩔매는 우측 병사의 목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 찍었다. 동시에 좌측의 병사에게는 우측 병사와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비수를 힘껏 끌어 올렸다. 커억! 심장을 파고드는 칼끝의 여운이 손바닥으로 짜릿하게 파고들었다. 역시 고도의 간자(間者) 훈련을 받았던 김충선의 솜씨는 절륜했다. 이제 막사를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김충선은 비록 어이가 없었지만 반드시 성공해야 할 이유가 더 명백해졌다. 이것은 자신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그와 더불어 여기까지 도착했던 이들 병사들의 목숨도 걸어야 할 판이 아닌가. 다녀오리다. 김충선은 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고는 재빠르게 어둠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김충선의 행동이 얼마나 민첩했던지 남아있는 병사들은 순식간에 그의 종적을 놓치고 말았다. 비호가 따로 없군. 건주여진의 병사들은 일제히 혀를 찼다. 그들은 각자 몸을 엄폐(掩蔽)하고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김충선이 성공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충선은 조총을 휴대하기 용이하게 분해하여 군장에 숨기고 날렵하게 어두운 들판을 걸었다. 저격을 하기에는 마땅하지 않다. 아무래도 직접 부딪쳐서 결판을 내야하겠지. 김충선은 가급적 자세를 낮추어 사방을 경계하면서도 보폭은 매우 빠르게 이동을 하고 있었다. 여러 부족들이 돕기 위해 모였다면 서로에 대해서 아직은 낯이 설을 것이다. 이 점을 노려야 한다. 김충선은 예허부족을 돕기 위하여 파견 된 다른 부족의 병사로 위장하여 잠입 할 생각이었다. 때마침 일단의 병사들이 우마차에 잔뜩 곡식 가마니를 싣고 이동하는 장면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감히 날 외면해? 칸의 막사를 물러 나오자마자 일패공주가 김충선에게 따지듯이 대들었다. 왜 위험을 자초하는 거죠? 날 떼어 두고 혼자가면 성공할 것 같아요? 그렇소. 뭐라고요? 당신은 우리 여진족들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럴 리가 있겠소? 당신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난 이미 경험을 했는걸. 김충선은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일패공주는 매우 심각한 표정이었다. 장난할 때가 아니죠. 예당카를 암살하기 위해서는 예허부족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야 하는데 그건 매우 위험한 작전이라고요. 위험하지 않은 전투는 없소. 김충선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패공주는 수긍하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성공하고 돌아오겠다고 약조하고 떠나요. 김충선이 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하겠소. 일패공주는 마주 손가락을 걸지 않고 몸을 돌렸다. 왠지 새끼손가락을 서로 걸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진의 장녀로 누르하치의 명을 받고 조선을 종횡했던 그녀였다. 어떤 사내들보다도 강했던 일패의 심경이 이토록 무기력하게 흔들릴 줄은 그녀 역시 예상하지 못했었다. 당혹감과 두려움이 그녀를 엄습했다. 이......런 감정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나이다. 우리 병력이 과도한 희생이 예상 된다면 난 당연히 전술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애초에 2천을 넘지 않은 병력이었으나 이제는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대에게 방도를 묻고자 한다. 김충선이 아뢰었다. 매우 현명한 처사이옵니다. 만주국으로의 통일에 되도록 적은 피를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후에 갈등도 작아지옵니다. 만주국으로의 융합을 위하여 가장 효과적인 전술이 요구되옵니다. 바로 그것이다. 내가 듣고 싶었던 것이. 계속 말하라. 예허부족을 돕기 위해서 다른 부족들이 운집한 것은 그들 내부적인 족장들의 협조와 의리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예허부족의 족장을 먼저 치는 것이 상책이라 여겨집니다. 예허부족의 족장 예당카를 말인가? 그리되면 다른 부족의 응원군들은 중심을 잃고 흩어져 각기 물러갈 것입니다. 누르하치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훌륭한 계책이다. 우리 측의 병력 손실도 없이 예허부족을 점령할 수 있겠어. 건주여진 누루하치의 장수 중 선봉을 서겠다던 장수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김충선을 훑어보더니 나섰다. 하지만 누가 예당카를 쉽게 없앨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패륵은 장난 끼 가득한 김충선의 뒤를 맹추격했다. 기다려요! 내가 잡고 말 테니까. 두 필의 준마가 만주의 능선을 달리면서 뽀얗게 먼지를 일으켰다. 아무래도 기선을 잡은 김충선의 준마가 유리해 보였다. 그들은 질풍처럼 내달려서 불과 일 각도 지나지 않아서 누르하치의 진영으로 뛰어 들었다. 일패공주가 어디선가 튀어 나왔다. 어딜 다녀오세요? 당신을 잃을 뻔 하였소. 영문을 알 수 없는 일패공주는 막 뒤따라 진입하는 패륵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니? 누나 때문에 형님이 비겁했어. 그래? 일패공주는 이상하게도 그 말이 흡족했다. 만일 대업을 성취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온전히 일패, 자신을 위해서 김충선이 진심으로 청혼을 선택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었다. 그것이 우매하고 어리석은 일이란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그렇게 바랬다. 사랑을 알고, 사랑을 하게 되면서 그녀의 날카롭던 예지(銳智)는 미망(迷妄)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당신도 출전 하는 거요? 김충선이 물었고 일패공주가 대답했다. 나도 여진의 딸입니다. 강해야만 살아남는 민족이죠. 하지만 기분이 묘하군. 당신과 함께 전쟁터에 나가야 한다는 현실이 슬프기도 하고.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일곱 ...... 영웅(英雄)의 장 김충선은 말머리를 돌려서 잠시 능선을 타고 천천히 말을 몰았다. 칠월의 북풍은 뜨거운 열기를 그나마 식혀주었다. 달빛이 대지를 어루만지고 있으나 공연히 처량한 심정이었다. 여진의 칸을 설득하기 위하여 만주로 떠나 왔으나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지금은 누르하치의 부마가 되어야 할 처지로 돌변하였다. 장군님, 부디 강녕하소서. 이순신에 대한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이순신의 나라를 건국하기 위하여 건주여진의 칸 누르하치를 대면하였지만 오히려 그의 장단에 놀아나고 있는 느낌을 지을 수가 없었다. 허나, 내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는 절대 이곳을 벗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외다. 김충선은 신념 가득한 시선으로 구름에 반쯤 잠겨있는 일그러진 달을 올려다보았다. 비록 구름에 의해서 가려진 월광이지만 은은하고 도도한 향취는 숨길 수가 없었다. 언제고 때가 오리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장군! 개벽의 그 날을 위하여 나 김충선은 어떠한 위기와 고난도 극복하며 살아남아, 장군이 열어야 할 새 하늘에 동참할 것입니다. 김충선이 각오를 다짐하고 있을 때 뒤에서 인기척이 발생했다. 잠시 후에 출전입니다. 왕자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오오 자네들인가. 판옥선이 도달하자 부하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서 이순신의 주변을 감쌌다. 그들은 이순신이 통제영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서 일제히 연락을 취해 달려온 길이라 하였다. 판옥선은 모두 군선으로 차출되지 않았는가? 헌데 이 배는 어떻게? 첨사 이순신이 나대용을 가리켰다. 나군관이 원수사에 의해서 직위 해제 된 후, 은밀히 판옥선 한 대를 구축하였습니다. 이순신은 나대용이 직접 제조했다는 판옥선의 형태가 기존의 판옥선과 어딘지 모르게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군관, 새로운 판옥선이로군. 나대용의 입이 떡 벌어졌다. 역시 장군님의 안목은 숨길 수가 없군요. 여기 있는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는데요. 나 역시 상세히 설명하기는 어려워. 그냥 눈짐작일 뿐이지. 어느 부분이 달라 보이시는지요? 노가 좀 특이하게 생겼군. 본래의 판옥선에서 격군(格軍)들이 사용하는 노와 무엇이 다른가? 나대용이 판옥선으로 안내했다. 아시겠지만 판옥선은 3층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하체 즉 본체라고 할 수 있지요. 배의 중심과 속도, 평형 유지 등이 이곳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전투선의 생명은 빠르기입니다. 당연하지.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원균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물론 백의종군의 신분으로 자신이 근무하던 통제영으로 돌아와서 승선을 요구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 장군, 다음에 기회가 있을 것이요. 반드시. 충청수사 최호가 이순신을 위로했다. 그들은 이순신이 왜 이토록 구차하게 매달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다시 만납시다. 장군! 왕실의 종친인 이억기 장군의 손이 이순신의 팔목에 감겼다. 언제나 바다에서 단련된 단단함이 느껴졌다. 이순신이 내심 중얼거렸다. 나의 근심이 단순한 우려였기를 바라오. 그들 수사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었으나 원균은 그대로 대장선으로 올랐다. 원균의 대장선박의 신호에 따라서 미리 대기 중이던 판옥선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수년간 이순신이 성취해 놓은 걸작 함대였다. 130여 척에 달하는 대함대는 이제 원균의 손에 의해서 기동을 하고 정박을 하며, 또 때로는 돌격을 감행하고 함포를 사격할 것이었다. 판옥선 하나하나에 이순신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은 없었다. 외롭다! 이순신은 불현 듯 텅 빈 통제영에 자신만 남아 있는 것에 대해서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저 멀리 파도를 거슬리며 선두에 항해중인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그래서 내게 어명을 거역하라고 사주하는 겁니까? 이수사 마냥 의금부로 끌려가서 백의종군의 신세가 되도록 말이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원균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럼 정확히 어떤 말씀이요? 내게 위험하니 계속 대기하라는 것이 아닙니까? 여기 통제영에서 머물면서 꼬리를 감추고 있으라고요?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요? 어림없소! 누굴 역도로 만들려고 하시오? 난 그리 못하오. 원수사! 일본 왜적들은 지난날의 패배를 만회 하고자 수군의 경험이 풍부한 장수들을 대거 기용하였소이다. 특히 선두에는 해적으로 위명을 떨친 일본 장수들이 포진하여 매우 위협적이외다. 그들은 아타케부네(安宅船)와 중형의 군선인 세키부네로 중무장을 하고 300여 척이 넘는 대 함대를 지휘하고 있소이다. 그따위 노략질이나 하던 해적 놈들을 두려워한단 말이요? 일개 해적이라면 어찌 두려울 수 있겠소. 그들은 조선과 명국, 안남에 이르기까지 해안 지방을 상대로 약탈을 감행했던 조직적인 왜구들이었소이다. 원균은 장담하였다. 이번 기회에 완전 쓸어버리고 말겠소. 두고 보시요! 이순신은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한 번 설득에 나섰다. 혹시 일본군 장수들에 대해서 내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