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22일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에 있는 <하동 칠불사 아자방 온돌>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습니다. 칠불사의 ‘아자방(亞字房)’으로 불리는 독특한 형태의 선방(禪房)은 스님들이 벽을 향해 수행할 수 있도록 방 안 네 귀퉁이를 바닥 면보다 한 단 높게 구성함으로써 ‘亞’자 모양의 아자형(亞字型) 방 전체에 구들을 놓아 만든 온돌방인데 한 번 불을 지피면 온돌과 벽면의 온기가 100일 동안 지속된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아자방 온돌은 신라 때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며, 2017년 진행된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고려시대의 유물인 기와 조각, 기단석(基壇石, 건축물이나 비석 따위의 기초로 쌓는 돌), 확돌(홈이 파여 있는 돌, 아궁이 문을 고정하는 용도) 등과 함께 기타 여러 기록 자료에 따라 아자방 온돌은 선종사찰(禪宗寺刹)의 선방으로서 그 기능을 유지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옛 선비들이 지리산을 여행하고 남긴 각종 지리산 유람록, 일제강점기 발행됐던 신문 기사 등 당시의 자료들을 통해서도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지요. 칠불사(七佛寺)는 지리산 반야봉 남쪽 자락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뜨끈뜨끈 온돌의 맛’이라는 주제로 이야기주제공원(스토리테마파크) 누리잡지(웹진) 담(談) 2024년 1월호를 펴냈다. 혹독한 겨울날, 우리의 선조들은 온돌을 통해 어떻게 추위를 녹였는지 살펴본다. 양반이 온돌을 깔자 청계천이 범람하다 <구들을 덥히자 청계천이 범람했다>에서 김소라 교수(경인교대)는 17세기 조선 임금의 침소부터 온돌이 깔리면서 달라지는 조선의 풍경을 담았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17세기에 소빙기의 여파가 극심했다. 조선은 현종 때의 경신대기근(1670~1671)과 숙종 때의 을병대기근(1695~1696)은 모두 황충(메뚜기) 피해, 냉해, 가뭄, 홍수 등의 피해로 조선 백성들은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당시 주거환경은 온돌과 비슷한 난방이 이미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으나, 따뜻한 바닥의 좌식 생활은 줄곧 하층민의 생활양식으로 여겨졌다. 상류층은 최소 조선 전기까지 입식 생활을 주로 영위하였고, 난방은 화로 등을 활용했다. 조선에서 가장 뒤늦게 온돌을 일상화하게 된 공간은 궁궐이었다. 소빙기의 여파로 인조 때 궐내 온돌 증설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며 궁궐에도 온돌이 설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