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왕궁 앞에서 폭탄을 던진, 추강 김지섭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격렬한 투쟁성을 지녔던 한국 독립운동의 중심에는 나라가 일제에 의해 무너지기 전부터 대대적으로 일어난 의병전쟁 등이 있었다. 그리고 경술국치 이후 만주 등지로 망명한 독립투사들에 의해 독립군 항쟁으로 발전하는 등 해방되기까지 꾸준히 무장독립투쟁의 맥을 이어갔다. 이 가운데 단연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의열투쟁이다. 이는 자신의 생명을 던져 온 인류에게 자유와 정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민족 독립의 대의를 밝히려는 목적으로 일어난 무력적 투쟁이다. 이러한 인류공영의 투철한 목적성을 토대로 진행된 의열투쟁이 단순히 개인 또는 일부 집단의 사적 이익을 도모하고자 자행한 테러와 명확히 구분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경북 안동 풍산읍 오미리에서 태어난 추강(秋岡) 김지섭(金祉燮, 1884~1928) 선생은 거의 반평생을 민족의 해방을 위한 의열투쟁에 헌신한 독립투사였다. 그는 팔련오계(八蓮五桂)로 유명한 풍산김씨 오미마을의 명문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집안 숙부인 운재(雲齋) 김병황(金秉璜, 1845~1914)에게 한학을 공부했다. 김병황은 당시 한학자로서 명망이 높았고, 의병이 일어날 당시 풍산김씨 문중을 대표하여 의병을 지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