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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입동, 감나무에 까치밥 남겨두는 조선의 마음

[한국문화 재발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김남주 시인은 <옛 마을을 지나며>라는 시에서 이 즈음의 정경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바로 겨울이 다가왔다는 손짓이다. 무서리 내리고, 마당가의 감나무 끝엔 까치밥 몇 개만 남아 호올로 외로운 때가 입동이다 

 

  

▲ 백양사 들머리의 감나무와 까지, 스님들은 아예 까치들에게 모두를 내주었나 보다.


입동은 24절기의 열아홉째이며, 이 날부터 '겨울()에 들어선다()'이라는 뜻에서 입동이라 부른다. 이때쯤이면 가을걷이도 끝나 바쁜 일손을 털고 한숨 돌리는 시기이며, 겨울 채비에 들어간다. 겨울을 앞두고 한 해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때인데 농가에서는 서리 피해를 막고 알이 꽉 찬 배추를 얻으려고 배추를 묶어주며, 서리에 약한 무는 뽑아 구덩이를 파고 저장하게 된다 


입동 전후에 가장 큰일은 역시 김장이다. 겨울준비로 이보다 큰일은 없는데 이 때를 놓치면 김치의 상큼한 맛이 줄어든다. 큰집 김장은 몇 백 포기씩 담는 것이 예사여서 친척이나 이웃이 함께했다. 우물가나 냇가에서 부녀자들이 무, 배추 씻는 풍경이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다. 이것도 우리 겨레가 자랑하는 더불어 살기의 예일 것이다 김장과 함께 메주를 쑤는 것도 큰일 가운데 하나이다.

 

  

▲ 입동 즈음엔 메주 쑤는 것도 큰일이다.



입동날 날씨가 추우면 그해 겨울은 추울 것으로 점을 친다. 경남 여러 섬에서는 입동에 갈까마귀가 날아온다 하고, 밀양 지방에서는 갈까마귀의 흰 뱃바닥이 보이면 목화가 잘 될 것이라 한다. 제주도에서는 입동날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바람이 지독하게 분다고 점을 쳤다 


입동에는 치계미(雉鷄米)”라고 하는 미풍양속도 있었다. 여러 지역의 향약(鄕約)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계절별로 마을에서 자발적인 양로 잔치를 벌였는데, 특히 입동(立冬), 동지(冬至), 섣달 그믐날에 나이가 드신 노인들에게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것을 치계미라 하였다. 본래 치계미란 사또의 밥상에 올릴 반찬값으로 받는 뇌물을 뜻하였는데, 마치 마을의 노인들을 사또처럼 대접하려는 데서 온 풍속인 듯하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한해에 한 차례 이상은 치계미를 위해 금품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도랑탕 잔치로 대신했다. 입동 무렵 미꾸라지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도랑에 숨는데 이때 도랑을 파면 누렇게 살이 찐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다. 이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노인들을 대접하는 것을 도랑탕 잔치라고 했다 

 

  

▲ 입동 때는 노인들에게 "도랑탕" 곧 추어탕으로 잔치를 하기도 했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10월부터 정월까지의 풍속으로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임금에게 우유를 만들어 바치고, 기로소(耆老所)에서도 나이 많은 신하들에게 우유를 마시게 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겨울철 궁중의 양로(養老) 풍속이 민간에서도 행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입동을 즈음하여 점치는 풍속이 여러 지역에 전해오는 데, 이를 입동보기라고 한다. 충청도 지역에서는 속담으로 입동 전 가위보리라는 말이 전해온다. 입춘 때 보리를 뽑아 뿌리가 세 개이면 보리 풍년이 든다고 점치는데, 입동 때는 뿌리 대신 잎을 보고 점친다. 입동 전에 보리의 잎이 가위처럼 두 개가 나야 그해 보리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 믿어지고 있다 


또 이 때에는 추수를 무사히 끝내게 해준 데 대해 감사의 고사를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음력 1010일에서 30일 사이에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쪄서 토광, 외양간 등에 고사 지낸 뒤, 소에게도 주면서 수확의 고마움과 집안이 무사한 데 대한 감사를 드린다. 또 이웃집과도 나누어 먹기도 한다 


입동은 수능시험일과 겹치기 일쑤이다. 입시한파라 하여 그렇지 않아도 매년 이맘때만 되면 전국이 온통 얼어붙는다.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남은 어떻게 되든지 나만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라는 차가운 마음을 갖게 되어 온 세상에 냉기로 가득 차게 된 결과가 아닐까 


송강 정철은 다음처럼 한밤중 산 속의 절에서(山寺夜吟:산사야음)”라는 노래를 한다 


蕭蕭落木聲 쓸쓸히 나뭇잎 지는 소리를
錯認爲疎雨 성근 빗소리로 잘못 알고서
呼僧出門看 동자승 불러 밖에 나가보라 했더니
月掛溪南樹 시내 남쪽 나무에 달 걸렸네요
 

 

  
▲ 동자승이 "나무에 달 걸렸네요."한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나뭇잎 지는 소리를 빗소리로 착각하여 동자승에게 나가보라고 했는데 밖에 나가본 동자승은 시내 남쪽 나무에 달이 걸렸네요.”라고 대답한다. 동자승의 말이 참 아름다운 시다. 이렇게 가을은 깊어 간다. 아니 벌써 입동이 지나고 겨울이 성큼 다가선다. 계절이 바뀌는 소리가 들리는가? 바쁜 세월을 살고 있지만 붉게 물든 산세도 돌아보고, 고통 속에 떠는 주변도 돌아볼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