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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경칩, 이마의 추위가 봄의 생명감 느끼게 해

[한국문화재발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셋째 경칩(驚蟄)이다. 원래 이름은 중국 역사서 한서(漢書)에 열 계(啓) 자와 겨울잠을 자는 벌레 칩(蟄)자를 써서 계칩(啓蟄)이라고 되었었는데 뒤에 한(漢) 무제(武帝)의 이름인 계(啓)를 피하여 대신 놀랠 경(驚)자를 써서 경칩(驚蟄)이라 하였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겨울잠 자던 동물은 음력 정월에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절기로는 경칩에 해당하며, 음력 9월에는 겨울잠을 자기 시작하는데 절기로는 입동(立冬)에 해당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는 “이월에는 식물의 싹을 보호하고 어린 동물을 기르며 고아들을 보살펴 기른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경칩이 만물이 생동하는 시기이므로 이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때임을 뜻한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임금이 농사의 본을 보이는 적전(籍田)을 경칩이 지난 해일(亥日)에 선농제(先農祭)와 함께 행하도록 정하였으며, 경칩 이후에는 갓 나온 벌레 또는 갓 자라는 풀을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불을 놓지 말라는 금령(禁令)을 내리기도 했다. 《성종실록(成宗實錄)》에 “우수에는 삼밭을 갈고 경칩에는 농기구를 정비하며 춘분에는 올벼를 심는다>‘고 나와 우수와 경칩은 새싹이 돋는 것을 기리고 본격적인 농사를 준비하는 중요한 절기임을 얘기해준다.

 

경칩에 개구리알 먹고 고로쇠나무 물마시고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대동강물이 풀린다고 하여 완연한 봄을 느끼게 된다. 이날 농촌에서는 산이나 논의 물이 괸 곳을 찾아다니며, 몸이 건강해지기를 바라면서 개구리(또는 도롱뇽) 알을 건져다 먹는다. 또 경칩에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하여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기도 한다. 특히 빈대가 없어진다고 하여 일부러 흙벽을 바르기도 했다. 경칩에는 보리 싹의 자람을 보아 그 해 농사를 점쳐보기도 한다.


또한 고로쇠나무(단풍나무, 어름넝쿨)를 베어 그 수액(水液)을 마시는데, 위장병이나 속병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특히 전남 구례의 송광사나 선암사 일대에서 채취한 고로쇠 수액은 유명하다. 보통의 나무들은 절기상 2월의 중기인 춘분(春分)이 되어야 물이 오르지만 남부지방의 나무는 다소 일찍 물이 오르므로, 첫 수액을 통해 한 해의 새 기운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이처럼 경칩은 만물이 생기 넘치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때로, 움츠려 지냈던 겨울이 끝나고 새로운 생명력이 다시 태어나는 절기다.


특히 옛날에는 이날 젊은 남녀들이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징표로써 은행씨앗을 선물로 주고받으며, 은밀히 은행을 나누어 먹는 풍습도 있었다. 이날 날이 어두워지면 동구 밖에 있는 수 나무 암 나무를 도는 사랑놀이로 정을 다지기도 했다. 그래서 경칩은 정월대보름, 칠월칠석과 함께 토종 연인의 날이라고 부른다.

 

   
▲ 경칩, 겨울잠 자던 개구리도 깨어나 뛰놀고, 아가씨들은 나물 캐고(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봄의 말밑과 그 의미


우리말 '봄'의 어원에 대해서 두 가지 설이 있다. 그 한 가지는 불의 옛말 '블'(火)과 오다의 이름씨꼴(명사형) '옴'(來)이 합해져서 '블+옴'이 되고 'ㄹ'받침이 떨어져 나가면서 '봄'이 된 것으로 보아 우리말 봄의 의미로 따뜻한 불의 온기가 다가옴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한편으로 우리말 봄은 보다(見)라는 말의 이름씨꼴 '봄'에서 온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우수를 지나 봄이 오면서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에 생명의 힘이 솟아 풀과 나무에 물이 오르고, 꽃이 피며, 동물들도 활기찬 움직임을 하는 것들을 '새로 본다'는 뜻인 ‘새봄’의 준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자말인 춘(春)은 원래 뽕나무 상(桑) 자와 해를 뜻하는 '날' 일(日)자의 두 상형문자를 합한 회의문자(會意文字)이다. 이것을 풀어보면 봄을 가리키는 한자 춘(春)은 따사한 봄 햇살을 받아 뽕나무의 여린 새움이 힘차게 돋아나오는 때를 뜻하는 것으로 본다.


영어로 봄을 뜻하는 'spring'은 원래 돌 틈 사이에서 맑은 물이 솟아 나오는 옹달샘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풀과 나무의 새움이 땅을 뚫고 솟아나오고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도 뛰쳐나오는 때라고 하여 봄을 뜻하는 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봄의 절기 중에 얼음을 녹이는 봄비가 내린다는 뜻의 우수(雨水)와 얼음이 녹아 깨져 나가는 소리에 놀라 겨울잠에서 개구리도 깨어나 뛰쳐나온다는 뜻을 담은 경칩(驚蟄)이 이러한 중국의 '춘(春)'이나 서양의 'spring'과 뜻이 같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서 ‘봄’, 춘(春), ‘spring'의 차이를 최창렬 님의 '꽃샘과 봄의 의미'란 글을 토대로 견주어 보자. 뽕나무 새순이 돋는다는 뜻의 한자 '춘(春)'이나, 삼라만상의 생기가 새로 솟아올라 온다는 뜻을 담은 영어의 'Spring'이 모두 자연이 주체가 되어 솟아오른다는 자연 중심의 이름에 비하여, 우리말 '봄'은 사람이 주체가 되어 대자연의 움 돋는 생기를 새롭게 본다는 인간 중심의 이름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말 이름의 깊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다.

 

춘설(春雪) -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로 아츰,

새삼스레 눈이 덮힌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어름 글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롬 절로
향긔롭어라.

웅숭거리고 살어난 양이
아아 끔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 순 돋고
옴짓 아니긔던
고기입이 오믈거리는,

꽃 피기전 철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이 시를 이어령 선생은 다음과 같은 분석을 한다.


"얼음이 금가고, 파릇한 미나리의 새순이 돋고, 물밑에서 꼼짝도 않던 고기입이 오물거리는 그 섬세한 봄의 생동감을 느끼려면, 그리고 겨울과 봄의 그 미세한 차이를 알아내려면 ‘이마의 추위’(꽃샘추위)가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활짝 열린 봄의 생명감은 <웅숭거리고 살아온 겨울의 서러운 삶>을 통해서만 서로 감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봄눈이야말로 겨울과 봄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체험할 수 있게 하고, 끝내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의 그 차이를 보여주는 <놀라움>이 되는 것이다. 봄의 시는 꽃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용의 상상력에 의하면 그것은 봄눈에 덮인 서늘한 뫼뿌리에 혹은 얼음이 녹아 금이 간 그 좁은 틈에 있다."


정지용 시인의 '춘설'이라는 아름다운 시와 또 이 시의 아름다움을 깊이 있는 분석으로 더해준 이어령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새봄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는 슬기로움이 우리에게 있을 터이다. 우리는 우수와 경칩을 맞으며 '웅숭거리고 살아온 겨울의 서러운 삶'이 존재했을 때 봄이라는 환한 새로움을 얻을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