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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75] 이정화 “꽃잎”

봄 꽃비에 이별을 추억하는 여인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봄의 전령사 얼음새꽃(복수촌)이 피었는가 싶더니 어느새 매화가 만발이다. 멀리 청옥산은 아직 하얀 솜두루마기를 걸치고 웅크리고 있는데 삼화벌판엔 벌써 청보리가 한 뼘이다. 온갖 멧새 때 소리에 아침이 앞당겨져 양달 쪽 목련은 나발을 불고, 복사꽃 망울 속엔 연지가 가득하다.

여기저기서 먼저 피려고 꽃잎들이 다투는 소리에 밤마다 들뜬 잠을 잔다. 이미 남녘에선 벚꽃 개화소식이 들려오니 머잖아 상춘객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다닐 것이다. 누구나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 얼굴이 환해지지만, 꽃잎을 보면 떠나간 연인이 생각나 슬퍼진다고 노래하는 여인이 있어 소개한다.

“나는 그룹 ‘에드 포’의 운영에 한계를 느껴 해산을 하고 미8군 무대 복귀를 결정 하였다. 새로운 밴드 결성에 있어 실력자들을 쉽게 영입할 수 있었으나 여성 보컬이 필요했다. 마땅한 적임자를 구하지 못해 애태우던 중 우연히 한 신인여가수의 무대를 보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실력에 반해 즉석에서 발탁하여 팀에 합류 시켰다. 그 여가수가 바로 이정화이다.

그때가 1966년으로 팀 이름은 ‘덩키스’였다. 우리는 8군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정화의 노래 실력이 아까워 나는 그녀를 위한 음반을 하나 만들기로 하였다. 우리 팀은 피나는 연습 끝에 1969년에 음반을 출시하였으나 불행히 대중의 반응을 얻지 못하고 사장되고 말았다. 우리는 크게 실망하여 각자 흩어져 ‘덩키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정화 역시 월남으로 떠난 뒤 다시는 국내무대에 복귀하지 않았고 그대로 잊혀져갔다.”

한국 록뮤직의 대부 신중현은 벌써 5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이정화 와의 첫 만남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신중현이 발굴하여 데뷔시킨 여가수가 어디 이정화 뿐이겠는가.

장미화를 필두로 김추자, 펄 씨스터즈, 바니걸스, 임희숙, 김정미 같은 굵직굵직한 이름들 외에도 임아영, 민아, 주현, 지연, 차현아, 김명희 등 헤아릴 수없이 많은 여가수들이 신중현의 손을 통해 가수가 되었다.

하지만 신중현은 아직도 어느 가수 보다 이정화에게 많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그녀를 위해 만들었던 ‘덩키스 1집’에는 6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제목이 두 글자로 되어있어 이채롭다. 그 가운데 “봄비”는 박인수가 다시 불러 소낙비 수준의 히트를 하였고, “싫어”는 펄 씨스터즈에 의해, 꽃잎은 김추자에 의해 빅 히트 하였다.
 

   
▲ 불후의 명곡을 남긴 ‘덩키스 1집’ 음반 표지

   꽃잎이 피고 또 질 때면
   그날이 또 다시 생각나
   못 견디겠네
   서로가 말도 하지 않고
   나는 토라져서
   그대로 와 버렸네
   그대 왜 날 찾지 않고
   그대로 왜 가버렸나
   꽃잎 보면 생각하네
   왜 그렇게 헤어졌나
   꽃잎이 피고 또 질 때면
   그날이 또 다시 생각나
   못 견디겠네
   서로가 말도 하지 않고
   나는 토라져서
   그대로 와 버렸네
   꽃잎 ~ 꽃잎 ~

 

나머지 3곡 “먼길” “내일” “마음” 역시 신중현이 아직도 아끼는 곡 들이다.

이정화!

비록 대중적 인기는 얻지 못했지만 훌륭한 곡들을 남겨 놓았기에 그리 슬프지 않으리라. 버들강아지 살랑대는 시냇가에 앉아 진달래 꽃잎 한 장 물위에 띄워 보내며 이정화를 추억한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