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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현란한 기교의 소리꾼, 최창남 명창의 노테크

[국악속풀이 280]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 속풀이에서는 9월 8일 장충체육관에서 있었던 황용주 명인의 <예악생활 60주년 기념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평생 선소리 산타령을 부르면서 살아온 황용주(黃龍周) 명인이 인생 80을 맞아 제자들과 더불어 장충체육관 특설무대에서 산타령 외 경기소리 전 분야를 공연하면서 핫 에이지(Hot Age)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는 이야기, 여럿이 대형을 갖추며 놀량-앞산타령-뒷산타령-자진산타령 등을 연이어 부르는 입창(立唱)형식의 산타령은 답교(踏橋)놀이의 단골 메뉴였다는 이야기, 그 대표적인 예가 ‘살고지다리’의 정월 대보름 축제라는 이야기, 그러나 안타깝게도 변화의 물결은 전문 선소리패들의 연창(演唱)을 단절시켜 유명 소리패들의 공연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행이 1960대 후반, 《산타령》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그 명맥이 오늘에 이어졌다는 이야기, 그러나 산타령의 전문가는 확산되지 못하고 있어서 자생력이 약한 종목으로 남아 있으므로 전승을 위한 특별배려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야기, 관리 감독하는 문화재청도 비인기 종목에 대한 특별 육성책을 강구해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  산타령은 집단의 화합, 협동, 단결력을 키울 수 있는 장점과 국악의 다양한 리듬감이나 씩씩하고 활달한 창법, 다양한 표현법을 익힐 수 있는 교육적인 노래라는 이야기 등을 했으며, 황용주 사범은 스승을 받들고 이웃을 섬기며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게 보이지만, 제자들을 사랑하는 내면이 인간적이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 속풀이는 황용주 명인과 함께 선소리 산타령의 예능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는 최창남 명창의 발표회 이야기를 해보도록 한다.




그는 엊그제 2016년 9월 11(일요일) 늦은 3시부터 삼성동 소재 무형문화재회관에서 산타령을 위시한 경서도 소리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80을 넘긴 고령의 최창남 명창이 해마다 제자들과 함께 소리판을 꾸준히 열고 있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노테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흔히 재(財)테크가 재물을 모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노(老)테크란 나이가 들어도 쉬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의욕적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관건은 바로 하고자 하는 열정(熱情)이다.

최창남 명창 역시 평생을 무대에서, 방송국에서, 전수교육장에서 후진들을 키워오며 살아왔다. 특히 그의 공연무대는 화려했었다. 김뻑국씨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국악계의 누구, 누구 온다고 해도 최창남 빠지면 지방공연은 계약이 성사되기 힘들었다고 한다. 한때 지상파 방송의 국악시간은 최창남의 목소리로 열고 닫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토록 열심히 살아온 그가 이제 조용히 여생을 보낸다 한들 누가 탓하겠는가마는 해마다 발표무대를 준비하는 열정은 마치 젊은이와 같아 부럽기만 하다.

일반적으로 나도는 말 중에 나이 들어 어려운 일이 몇 가지 있다고 하는데, 첫째는 고생스럽게 일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주위에 나이 많은 노인이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둘째는 남에게 냉대 받는 것이고, 셋째가 고민이 많아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 등을 어려운 일로 꼽는다. 그러나  이보다 더 괴로운 것이 바로 노년에 아무 하는 일 없이 무료하고 한가롭게 나날을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흔히 노후준비를 재테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나, 이는 진정한 의미의 노테크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참고할 만한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한다. 일본 목각의 대가 한 사람이 107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소식을 들은 주위 사람들이 그의 작업장을 가 보고는 모두들 놀랐다는 것이다. 앞으로 30년은 충분히 작업할 수 있는 양의 나무가 창고에 가득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가는 나무를 보면서 앞으로도 30년은 더 장인으로서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하루하루 할 일을 해 왔고, 그래서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행복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만약 그 장인(丈人)에게 열정이 없었다면 그는 그저 평범한 노인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렇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70, 80살의 노인에게도 열정이 있다면 마음은 청춘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서가 아니라, 열정이 사라지고 할 일이 없어지면 그때부터 늙기 시작하는데, 먼저 마음부터 늙는다는 것이다.  일본 목각의 대가를 보면서 우리의 최창남 명창을 떠올려 본다.

고향땅 황해도에서 인천으로 내려와 정착을 했고, 그곳에서 개성권번의 소리선생 민형식을 위시하여, 신경문, 김추월, 양소운, 임명옥, 최경명 등 당대 이름을 날리던 서도 명창들에게 수심가, 사설방아타령, 산염불, 난봉가 류의 소리를 익혔다. 이은관과 함께 공연을 다니며 배뱅이굿도 자연스레 익혔고 그의 소개로 벽파 이창배 명인을 만나 시조며 가사, 좌창, 입창, 민요, 등 경서도 소리 전 바탕도 배웠다.

워낙 좋은 목을 타고 났고,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끼를 받은 최창남의 소리 속에는 굳세고 부드러운 강유(剛柔)가 있고, 밝고 어두운 명암(明暗)이 교차하고 있으며  진하고 옅은 농담(濃淡)의 표현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현란한 기교들이 숨어있다.  

최창남 만이 지니고 있는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렵고,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그만의 영역이라고 명인 명창들은 입을 모은다. 그래서 그의 발표회장을 가보면 예로부터 그의 소리를 좋아했던 애호가들이나 이름난 명창, 전문 국악인들이 주된 관객이 되고 있다. 이번 공연에도 예외 없이 객석은 초만원이었다. 그의 주 종목인 <산타령>말고도 큰 제자들과 함께 경기좌창과 경서도 민요, 대감놀이 등 다양한 레퍼토리가 준비해 주어서 객석은 만족이었다.

평소 그의 소리를 잊지 못하고 있는 애호가들에게 그의 열정이 담긴 무대가 특별히 큰 의미를 갖게 되었으리라 확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