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울진 봉평의 신라비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신라비” 라고하면 흔히 국보 제3호인 서울 북한산에 있는 “신라진흥왕순수비”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울진 대게로 유명한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에도 “신라비”가 있다. 그것도 국보 제242호로 지정된 귀하신 몸 “신라비”인 것이다. 이 신라비는 잘 꾸며진 “울진봉평신라비 전시관”에 모셔져 있다.
정식 이름이 “울진봉평신라비”로 붙여진 이 비가 세상에 나온 것은 1988년 1월 20일의 일이다. 당시 봉평 2리 118번지 논에 묻혀있던 커다란 이 비석은 논 주인(주두원 씨)이 객토 작업을 하기 위해 하천변에 옮겨 놓은 것을 마을 이장(권대선 씨)이 정원석으로 활용해볼까 하고 흙을 털어내던 중 비석에 새겨진 글씨가 예사롭지 않아 1988년 3월 21일 이 비석을 울진군 공보실에 신고하면서 그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게 되었다.
비의 크기는 높이 204㎝, 너비 32~55㎝로 모양은 긴 사다리꼴이며 재질은 화강암이다. 글씨는 10행으로 모두 399자인데 글씨체는 예서에서 해서로 넘어가는 과도기 것으로 대부분 판독이 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울진봉평신라비”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대구 일간지 <매일신문>에 특종보도(1988.4.15.)되면서 부터다. 당시 신라비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매일신문>의 문화부기자 박진용은 곧장 현장으로 달려가 비의 출현 사실을 독점 취재하여 특종 보도한 것이다.
당시 신문의 1면을 장식한 “울진봉평신라비”는 이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정식으로 비가 출토된 위치를 확인하는 발굴 작업 등을 거쳤다. 아쉽게도 비좌(碑座)가 확인되지 않아 비가 원래 있었던 정확한 장소를 밝혀내지는 못하였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정밀한 판독과 분석, 비문에 대한 사학계의 종합적인 학술회의를 거쳐 “울진봉평신라비”가 525년에 세워진 삼국시대 신라의 비로 확인되었고 이 비석이 신라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임이 밝혀져 국보 242호로 지정되었다.
이 비의 가치는, 신라 법흥왕 때의 노인법 등 율령반포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입증, 신라 6부의 존재, 왕권의 실태, 17관등 명칭, 울진 지역 촌 이름, 지방관명, 칡소를 잡아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의식 등 기존 문헌 기록에 보이지 않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알려주고 있는 점이다.
전시관 뒤에는 광개토대왕비 등 실물크기로 재현한 국보급 비석 32기를 모아둔 비석거리도 볼 만하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비석들은 비신과 다양한 모양의 받침돌들이 서로 뽐내고 있다. 푸른 동해바다가 넘실대는 울진의 겨울은 여름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제철 만난 울진 대게도 먹고 우리나라 최고의 신라비인 “울진봉평신라비”도 구경할 겸 <울진 봉평이 신라비 전시관>에 들러 보면 어떨까?
한적한 울진 바닷가 근처에 자리한 “울진봉평신라비”는 단순한 과거의 돌비석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처럼 울고 웃던 신라인들 즈믄해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임을 새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