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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그리고 우리말

2천년 역사의 우리말 땅이름이 사라진다

국립중앙도서관, ‘2천년 역사의 우리말 땅이름,대한민국ㆍ한양ㆍ한강ㆍ서울’ 강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대한민국, 한양, 한강에서 2천년 역사의 우리말 땅이름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서울2천년 역사의 우리말 땅이름이란 것은 알지만 그것이 역사적, 공간적으로 어떤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알고 있는 사람 역시 적은 듯합니다. 이미 사라져버린 땅이름을 되찾고 더 이상 아름다운 우리말 땅이름이 사라지지 않길 바랍니다.”

 

 

이는 어제(9일, 금) 오후 2시부터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2018년 첫 고문헌강좌 우리말 땅이름의 강사인 이기봉(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 씨의 강연 내용 가운데 일부이다.

 

오후 2시 디지털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강연에는 우리땅 이름에 관심을 가진 200여명의 청중들이 몰려와 강연장을 후끈하게 달궜다. 이날 강연은 사전 접수를 받은 사람들 우선으로 입장을 시켰는데 강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 들이 대회의실 문을 열때까지 기다리는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평소 우리말에 관련해 관심이 많았던 기자 역시 일찌감치 신청 접수를 해놓고 이날 강연장을 찾았다. 이날 강연은 일제 강점기인 1911년 당시 여주군 금사리 행정마을을 예로 들면서 시작되었다.

 

지금 여주에 가면 이포리(梨浦里)라는 마을이 있습니다만 이 이름을 당시 마을 사람들은 배개라고 불렀습니다. ‘배를 대는 개울(물가), 배대기 좋은 곳이라는 뜻이지요. 행정 편의상 이포리(梨浦里)가 되어 버렸지만 한자 표기인 梨浦里도 아니고 이포리인 바에는 배를 대던 곳이란 뜻을 알 길이 없지요. 그렇다고 한자를 쓰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컨대 예로부터 땅이름이란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입말(구전)로 전해오는 것인데 이를 무시하고 한자말로 표기하다 보니 본래 땅이름이 지닌 뜻을 잃어버린 것이 안타까운 것이지요.

 

 

이기봉 씨는 이해하기 쉽게 한자 땅이름에 찌들어 있는 청중을 향해 많은 예를 제시하면서 우리말 땅이름이 어느 시기에, 어떤 절차를 거쳐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에 한자 이름이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 지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지금 상품리, 하품리의 경우도 그렇지요. 여러분들은 상품리, 하품리 하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강사의 질문을 듣고 보니, 냉큼 물건과 관계가 있는 상품’, 졸릴 때 나오는 하품을 연상케 하지만 이 땅이름 역시 웃품실’ ‘아랫품실로 불렸던 곳이라고 한다. 이것을 상품리(上品里), 하품리(下品里) 식으로 고쳐 놓은 것이다.

 

그는 이어, 노루와 관련이 있던 노루목이 장항리(獐項里), 한밭이 대전(大田)으로, 바깥들 곧 밧들이 외평리(外坪里), 여울목이 탄항리(灘項里) 등으로 바뀌어 버린 내력을 설명했다.

 


 

특히 탄항리처럼 우리말 여울을 일컫는 이름을 여울 탄()자로 바꿔 놓은 곳의 예를 보면, 경기도 연천의 한탄강도 그 한 예이다. 지금은 한탄강(漢灘江)이라는 한자로 칠해 놓았지만 원래 이 본뜻은 한(크다), (여울), ()을 뜻하는 큰여울, 한여울이었다고 지적했다.

 

이기봉 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큰길을 한길로, 큰내를 한내로 큰여울을 한여울로 썼지만 언제부터인가 대로(大路), 대천(大川), 한천(漢川), 한탄(漢灘) 등으로 부르기 시작하여 우리말의 크다를 뜻하는 이 일상생활과 땅이름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날 강연 2시간 가운데 절반은 원래 우리말이었던 것이 한자로 바뀌어 버린 땅이름 사례를 통해 설명했다.

 

이어 잠시 휴식을 가진 뒤 2부 강연에서는 대한민국의 대한’, 한강의 ’, 통일신라시대와 후삼국, 고려까지 전해온 삼한의 ’, 조선의 서울 한양의 에 대한 의미를 역사적 근거를 통해 설명했다.

 

그는 여기서 의 의미는 순수한 우리말 크다를 뜻하는 으로 한자(, )는 후대에 붙인 것임에 주의하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한자에 절은 나머지 순수한 우리말이 먼저 표기 되었던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는 우리에게 신선한 메시지를 전해준 셈이다.

 



특히 이기봉 씨는 1897년 10월 11일 고종황제(1863~1907)가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사용한 대한의 의미를 《고종실록》 36권, 고종 34년 10월 11일치 기록을 통해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곧 삼한(三韓)의 땅인데, 국초(國初)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 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대한이란 큰()자와, (원래는 크다를 뜻하는 말이지만 한자로 을 씀)이 어우러진 것으로 큰나라라는 뜻임을 강조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현재 수도인 서울의 유래가 서라벌, 서나벌, 서벌 등에서 유래한 것으로2천년의 세월 동안 변하지 않고 내려온 것에 대한 역사성을 강조했다.

 

특히 자신의 어린시절에는 영국의 서울은 런던, 미국의 서울은 워싱턴, 한국의 서울은 서울이라고 하던 것을 요즘은 영국의 수도는 런던...식으로 서울수도로 바꿔 말하는 것이 마치 세련된 것인 양 취급하고 있는 것도 우리말을 해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우리말 땅이름을 한자의 뜻과 소리를 따서 표기한 뒤 표기된 한자의 소리로 읽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 이 때문에 특별시, 광역시, ()의 광역자치단체, , , 구의 기초자치단체, , 리의 이름 가운데 우리말 땅이름 소리가 남아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도로명 주소가 시행되면서 다행히 사라졌던 우리말 땅이름 일부가 채택되는 경우가 있어 다행이지만 아직도 우리말 땅이름을 한자로 바꿔 부르는 예가 많아 안타깝다.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강연에 참석한 조희자(49, 주부) 씨는 평소 우리말에 관한 관심이 많아 참석했다. 오늘 강연을 듣고 원래 우리말로 부르던 마을 이름을 한자말로 의미도 모르게 바꿔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행정 편의 보다는 조상들이 쓰던 아름다운 우리말, 의미를 가진 땅이름을 되살리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기자 역시, 강연시간 내내 “고유의 땅이름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무관심”이 부끄러웠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제29회 이야기로 풀어가는 고문헌강좌로 연 이날 이기봉 강사의 “ 2천년 역사의 우리말 땅이름, 대한민국ㆍ한양ㆍ한강ㆍ서울” 강연은 그런 뜻에서 매우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