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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배따라기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112]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저것 좀 보아요.
수양버들의 신명나는 춤사위를.
들리나요? 저 소리가.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보다 또렷이 다가오는 연두 빛의 소리가.
어느새 바위마다 이끼가 푸르러 녹색 융단을 덮어썼고, 생강나무 가지에는 노란 병아리 떼가 비를 맞고 떨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쯤 유리창에 그어지는 빗금들을 바라보며 시를 쓰거나 기타를 치며 내 생각을 하겠지요. 나는 이 그림, 한 폭의 파스텔화를 당신에게 전하며 개구리 자맥질하는 개울을 따라 산길을 걷습니다. 이제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참꽃이며 산벚이며 개살구 꽃들이 앞 다투며 피어나 산허리를 가득 메울 테고 초록봉은 꽃 위로 두둥실 떠오르겠지요.


 

그때도 그랬습니다.
봄꽃들이 뿜어내는 향기가 세상을 뒤덮던 화사한 봄날 이었습니다.
다시는 내 삶에 화폐의 소용가치가 없을 것 같기에 있는 돈 몽땅 털어서,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을 것 같았기에 밤새 술이란 술은 죄다 퍼마시고 산사로 향했습니다.


산새들이 노래하고 산유화가 만발해도, 하늘엔 동화 같은 섬들이 도란도란 떠다녀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걸었습니다. 그땐 그랬습니다. 새로운 아침을 맞는 게 끔찍했고 꽃분홍 하늘을 보면 짜증이 났습니다. 새들의 지저귐도 슬펐고, 피는 꽃을 보면 떨어지는 모습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아름답다고 하는 것들은 모두 환멸스러웠고 늘 허무의 늪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무엇이 참다운 삶인가를 찾지 못해 자학에 빠져있던 나는 마침내 입산수도를 결심하게 되었었지요. 그때 숙취에 시달리며 올라간 그 길에서 의지가 굳지 못한 나는 중생구제라든가 대승이라든가 하는 것은 언감생심 흉내조차 내보지 못하고 겨우 몇 달 만에 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그릇이 종발만도 못한 나는 바다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기에, 진리란 경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핑계를 대고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말 것이며
  *위선이 배제된 남을 위한 배려,
  *진정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며 살 것이라는 어설픈 화두 하나 안은 채 산 그림자 드리우는 일주문을 나섰지요.

그 땐 왜 그랬을까요?

비 오는 산길을 걸으며 허무주의에 빠져 살던 그 때의 나를 떠올려 봅니다.
그 땐 왜 몰랐을까요?

홍매화 피어있는 언덕이, 대숲을 훑고나온 바람이, 대지를 간질이는 봄비가 음악처럼 아름답다는 것을. 살아가는 모든 게 소중하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나는요 비가 오면 추억 속에 잠겨요
그댄 바람 소리를 무척 좋아하나요
나는요 바람 불면 바람 속을 걸어요
외로운 내 가슴에 나 몰래 다가와
사랑을 심어놓고 떠나간 그 사람을
나는요 정말 미워하지 않아요
그댄 낙엽지면 무슨 생각하나요
나는요 둘이 걷던 솔밭 길 홀로 걸어요


 

1984년에 발매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 하나요><배따라기 2>에 수록된 배따라기 최고의 히트곡이다. 대부분의 가요팬들은 배따라기를 이혜민, 양현경 으로 구성된 혼성 듀엣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이혜민 1인 프로젝트 그룹이다. 이미 고등학생 신분으로 <삼포 가는 길>을 작곡하여 명성을 얻은 이혜민은 곡을 받으러 온 양현경의 목소리가 탐나 객원가수로 초빙하여 2집 작업에 참여시켜 4곡을 함께 불렀다.

 

그로 인해 세간에는 두 사람이 연인관계라는 풍문이 돌았으나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이혜민은 김흥국이 불러 히트 시킨 <호랑나비> <59년 왕십리> 김남화의 <애증의 강> 이예린의 <포플러 나무아래> 등을 작곡한 히트 메이커요 실력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