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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배를 타고(渡江)

[연변조선족문학창 43]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한배를 타고(渡江)

 

물위엔

제갈공명 같은 안개가 낮고

안개 너머 대안에선

조승상 같은 뱃고동소리 길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긴 강, 장강

이 강을 건너기 위해 우리는

관광버스 안에 허리 곧게 펴고 앉아있다

저기 한창 시공 중인 대교가

반공중에 신기루처럼 떠 있고

문뜩 나타나서 입을 벌린 뚜룬(渡輪)*

십여 대의 관광버스를

차례차례 삼킨다

북방사람은 돌아가는 길

강남사람은 떠나가는 길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버스는 배를 타고

이제 모두 저쪽 기슭으로 건너가려고 한다

이게 무슨 인연일가

시간 전 만해도 동서남북 각지에서

그들은 저 각각의 방언으로 나는 또 조선말로

자기 삶을 사느라 떠들었거니

지금 모두 입 다물고 앉아있다

앞뒤 그리고 옆의 좌석에서 차례차례

적벽지전 나가는 삼국군사들 얼굴을 하고 있다

안개는 사방에 짙게 깔리고

강물은 철석철석 뱃전을 두드리고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한배를 타고.

2004. 04. 15.

 

* 뚜룬(渡輪) : 버스 등 큰 차량을 싣고 다니는 배

 

 

 

 

< 해설 >

 

석화시인의 시에서 중국의 고전에서 인용한 전고들이 적지 않다. 당시(唐詩), 송사(宋詞)나 《삼국연의》 같은 중국 고전에서부터 모택동의 시사(詩詞)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아주 넓다. 이런 중국고전에서 따온 전고들은 적재적소에 사용되어 시의 맛을 한결 돋구어주고 있다. 석화의 시 “연변ㆍ23 – 쌀은 내게로 와서 살이 되는데”에는 “봄, 여름, 가으내 철철의 신고가/ 알알이 맺혀서 반짝이는가”라는 시구가 있는데 이는 당나라 리신(李紳, 780-846)의 유명한 시 “농부를 가엾게 여겨”를 인용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석화시인의 서정시 ”한 배를 타고“를 보면 한국 현대시와 중국고전의 영향을 아울러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 시는 시적 발상이나 형식에 있어서는 백석의 시 “조당(澡塘)에서”를 연상시킨다. 하나는 공중욕탕에서 다른 민족과 만나고 다른 하나는 강을 건너는 배 위에서 다른 민족과 만난다. 하나는 도연명이나 양자와 같은 사람과 만났다고 생각하고 다른 하나는 적벽지전에 나가는 삼국의 군사들과 만났다고 생각한다. 또한 하나는 한가하고 게으르지만 “목숨이라든가 인생이라든가 하는 것을 정말 사랑할 줄 아는 / 그 오래고 깊은 마음들”을 좋아하고 다른 하나는 조선족과 한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은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임을 설파하고 있다.

 

그리고 “남국에 아서”의 마지막에는 “—제발 백팔가지 온갖 벌 다 주시더라도 / 뜬 달을 건지려 물속에 풍덩 하신/ 시 쓰던 그 양반만은 닮게 하지마소서, 아멘”에서 보다시피 밤중에 일엽편주를 타고 호수에서 소요하다가 수면에 비낀 달을 건지려다가 물속에 빠져죽었다는 시선 이태백의 일화를 아주 재치 있게 인용함으로써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요컨대 석화의 서정시 “한 배를 타고”는 백석의 “조당에서”의 시적 구조를 차용하고 중국의 《삼국연의》와 이태백의 일화 같은 고전을 전고로 이용함으로써 새로운 시적 경지와 재미를 창출하고 있다고 하겠다.(김정영ㆍ김호웅 <시인의 실험정신과 조선족공동체에 대한 시적 형상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