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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가 흔들리고 바람은 지나가고

대나무의 덕을 배우고 그것을 삶에서 구현하기
[솔바람과 송순주 15]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은박지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을 우리는 기억하며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런데 조선시대 중기에도 이중섭이라고 불리는 화가가 있었다. 바로 대나무 그림으로 유명한 이정(李霆, 1541~1622)이란 분이다.

 

이름이 이정인데 어떻게 이중섭이라고 하는가? 바로 그의 자(字), 곧 어릴 때의 이름이 중섭(仲燮)이었던 까닭이다. 조선시대에는 이름대신에 호를 많이 불렀지만 친한 사이에서는 자를 그대로 불렀으니까 이중섭이라고 해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 조선시대 이중섭은 탄은(灘隱)이라는 호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세종대왕의 현손, 곧 4대 손자 곧 고손이었다. 그는 시ㆍ서ㆍ화에 뛰어났고 특히 묵죽(墨竹), 곧 먹으로 치는 대나무 그림은 당대 최고로 이름을 떨쳤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이 대나무 그림을 보면 그가 왜 이름을 떨쳤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림 가운데에는 진한 먹으로 그린 대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 뒤로 연한 먹(淡墨)으로 그린 대나무 서너 그루와 화면 밑쪽에 거칠고 억센 필치의 바위가 있다. 이 그림은 우리가 흔히 보듯 꼿꼿한 대나무 줄기를 굵게 그려 넣는 그림들과는 달리 줄기도 가늘고 가지는 11시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12시 반 방향으로 바뀌는 그런 구도이다. 다만 짙은 먹으로 대나무 잎들이 오른쪽으로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선연하다. 그런데도 이 그림은 조선시대 대나무 그림의 대표가 되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바로 이 대나무 그림에는 보이지 않는 실체가 잘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 실체는 대나무가 아니라 바람을 이기는 대나무의 정신이다. 작가는 우선 보이지 않는 존재인 대나무의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바람에 나부끼는 대나무를 그려놓았다. 그것은 곧 영국의 시인 크리스티나 로세티( Christina Rosetti, 1830-1894)가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라는 시에서 묘사한 바람이다.​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나도 당신도 아닙니다.

그러나 나뭇잎이 매달려 흐느낄 때

바람은 거기를 지나가고 있는 겁니다.​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요?

당신도 나도 아닙니다.

그러나 나무들이 머리 숙여 절할 때,

바람이 지나가고 있는 겁니다.

 

영국의 여류시인이 나무가 고개를 숙이고 거기에 매달려있는 나뭇잎들이 떨릴 때에 바람이 지나가고 있는 것을 보았듯이 우리의 중섭, 곧 탄은은 대나무 잎들이 한 방향으로 쏠려 흔들릴 때에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본 것이고 그것을 먹이라는 한 가지 재료만으로 그 농도의 차이를 통해 종이 위에 멋지게 표현한 것이다.​

 

조선시대 중섭이 풍죽도에 사용한 것은 먹뿐이다. 오로지 먹물의 농담(짙음과 옅음)과 몇 가지의 붓질만을 사용하여 바위의 입체감을 살리고 대나무에 생명감과 탄력성을 불어넣었다. 그것으로 배경과는 공간감이 살고 마치 안개가 낀 느낌을 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그려졌다.

 

알려진 대로 중섭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의해 오른팔을 크게 다쳤지만 좌절하지 않고 이전보다 더 열심히 그림을 그려, 팔을 다친 뒤의 그림이 더 격조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므로 이 대나무 그림에서 바람은 자신에게 닥친 가혹한 운명을 상징하는 것이며 그런 바람을 견디며 서 있는 대나무는 전란 속에서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견뎌낸 자신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

 

이중섭의 풍죽에 대해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백인산 상임위원은 역대 제일의 묵죽화가가 그려낸 으뜸가는 수작이며 우리나라 최고의 묵죽화라고 평가한다. 그 까닭으로 "중국의 풍죽은 대체로 바람이 보이는 듯하고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하게 기세를 발산하여 그려내었다면, 이정의 풍죽은 바람이 부는 정경을 묘사하기 보다는 이를 견뎌내는 대나무의 응축된 기세를 표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서"라고 분석했다.​

 

대나무는 흔히 선비에 비유된다. 대는 그 성질이 맑고 차고 푸르고 곧다. 청아하고 고고한 품위와 맵시, 매서운 추위 속에서야 오히려 돋보이는 짙푸른 기개(氣槪), 깨끗하게 안을 비워 두는 결백함 등의 이 모든 성질들이 절개와 청렴(淸廉)과 결백(潔白)을 생명과 같이 여기는 우리 옛 선비와 같다. 곧고 옳은 선비를 대변하는 것이다. 당나라의 대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는 말한다.

 

“대나무는 현명한 사람과 비슷한데, 왜 그런가? 대나무 뿌리가 단단함으로써 덕을 세우고 있다. 군자는 그 뿌리를 보면 곧 뽑히지 않는 훌륭한 덕이 서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대나무의 성질은 곧음으로써 자신의 몸을 바로 서게 하고 있다. 군자는 그 성질을 보고는 곧 어느 편에도 기울지 않고 마음이 바로 서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대나무 속은 비어서, 비움의 도를 몸으로 보여준다. 군자는 그 빈 속을 보면서 곧 자기의 마음을 비우고 남을 받아들이는 법을 생각한다. 대나무 마디는 곧아서, 곧음으로써 뜻을 세우고 있다. 군자는 그 마디를 보면 곧 자기 이름과 행실을 갈고 닦아서 쉬울 때나 어려울 때나 한결같이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러하기 때문에 군자들이 이것을 많이 심어 정원수로 삼고 있는 것이다.“ - 양죽기(養竹記), 백거이(白居易)

 

 

그런즉 대나무와 이웃하며 앉아있으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고 아늑할 수가 없다.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 699?~759)가 느낀 그런 분위기이다.​

 

獨坐幽篁裏 홀로 그윽한 대나무 숲 속에 앉아

彈琴復長嘯 거문고 켜다가 길게 숨을 내 쉬네

深林人不知 깊은 숲 속이라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明月來相照 밝은 달만이 찾아와 비추고 있네 – 죽이관(竹裏館) 왕유(王維)

 

대나무의 기운이란 무엇인가? 송나라 때 동파(東坡) 소식(蘇軾, 1037 ~ 1101)의 설명을 다시 들어보자;​

 

"대나무가 막 움이 터 나올 때에는 한 마디 정도 되는 싹일 뿐이나, 여기에서 마디가 생기고 잎이 나온다. 처음에는 층층이 포개져 있는 마디가 마치 매미의 뱃가죽 같고 뱀이 허물을 벗어놓은 것 같으나, 이것이 자라면 수십 길이 되어 검을 뽑아 하늘에 닿을 듯한 기상이 된다. - 소식, 문여가화운당곡언죽기(文與可畫篔簹谷偃竹記)​

 

그런 대나무의 덕을 살려주는 것, 곧 대나무를 대나무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람이다. 그 바람은 때로는 친구요, 때로는 적이며, 때로는 대나무를 시험하는 시험관이다. 그 바람이 대나무를 건드리며 내는 소리, 그 소리는 곧 마음을 청량하게 씻어주는 가장 좋은 소리였다. 시인 묵객들은 직접 대나무를 보지 않고, 바람소리를 듣지 않고도 먹으로 그린 대나무 그림에서 그 소리를 듣는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도 풍죽을 보면서 바람도 속이 비었고 대나무도 속이 빈 것이라는 데 주목한다.

 

너에게 소중한 것은 곧은 절개뿐이다.

흔들리어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은 바람이 시킨 것일세.

이도 또한 본래 빈 것인데 누가 이것을 흔들까

 

 

조선시대 이후 현대로 오면서 나라를 잃고 되찾는 과정에서 지조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대나무를 가꾸고 스스로의 행동과 마음을 고결하게 유지하는 사람들이 드물다고 한다. 요즈음 죽림 사이에 지어진 조그만 집 마루에 앉아 비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는 댓잎들의 의연한 몸짓과 대나무 줄기들의 굳건한 자세, 그리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의 맑은 기운을 보노라면 대나무에 얽힌 이런 사연을 생각하게 된다.

 

긴 시간동안 이 땅을 살다간 많은 인간 군상들을 되돌아보면서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대나무를 바라보는 이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고 또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우리가 후대들에게 남겨줄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대나무의 덕을 배우고 그것을 삶에서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

 

그런 고민을 대나무 숲속에서 해보게 된다. 그리고는 때때로 현대의 음유시인 김민기가 꿈꾸던 대로 대나무 사이를 마음 놓고 다니는 바람의 자유로움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끝없는 바람

저 험한 산 위로 나뭇잎 사이 불어 가는

아 자유의 바람

저 언덕 넘어 물결 같이 춤추던 님

무명(無名) 무실(無實) 무감(無感)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 볼래 지녀 볼래 - 바람과 나(김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