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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겨울 소리, 가슴으로 듣는 소리

이제 12월, 후회 대신 희망을 그려보자
[솔바람과 송순주 2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구양자(歐陽子)가 밤에 책을 읽고 있다가 서남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섬찟 놀라 귀기울여 들으며 말했다.

 

"이상하구나!"

 

처음에는 바스락바스락 낙엽지고 쓸쓸한 바람부는 소리더니 갑자기 물결이 거세게 일고 파도치는 소리같이 변하였다. 마치 파도가 밤중에 갑자기 일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은데, 그것이 물건에 부딪혀 쨍그렁 쨍그렁 쇠붙이가 모두 울리는 것 같고, 또 마치 적진으로 나가는 군대가 입에 재갈을 물고 질주하는 듯 호령 소리는 들리지 않고, 사람과 말이 달리는 소리만이 들리는 듯했다.

 

내가 동자(童子)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 네 좀 나가 보아라."

동자가 말했다.

"별과 달이 밝게 빛나고 하늘엔 은하수가 걸려 있으며 사방에는 인적이 없으니 그 소리는 나무사이에서 나고 있습니다."

 

나는 말했다.

 

"아, 슬프도다! 이것은 가을의 소리구나. 어찌하여 온 것인가? 저 가을의 모습이란, 그 색(色)은 암담(暗淡)하여 안개는 날아가고 구름은 걷힌다. 가을의 모양은 청명(淸明)하여 하늘은 드높고 태양은 빛난다. 가을의 기운은 살이 저미도록 차가워 피부와 뼛속까지 파고들며, 가을의 뜻은 쓸쓸하여 산천이 적막해진다. 그러기에 그 소리가 처량하고 애절하며 울부짖는 듯 떨치고 일어나는 듯한 것이다. 풍성한 풀들은 푸르러 무성함을 다투고, 아름다운 나무들은 울창하게 우거져 볼 만하더니, 풀들은 가을이 스쳐 가자 누렇게 변하고, 나무는 가을을 만나자 잎이 떨어진다. 그것들이 꺾여지고 시들어 떨어지게 되는 까닭은 바로 한가을 기운이 남긴 매서움 때문이다."(아래 줄임)

 

 

위의 글은 당송팔대가의 한 명으로 유명한 중국 송나라 때의 문인 구양수(歐陽修 1007-1072)가 지은 '추성부(秋聲賦)'라는 문장이다. 만물을 말려 죽이는 쓸쓸한 가을 소리를 빌어 가을의 슬픔을 유감없이 나타낸 명문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절기상으로 본다면 가을은 11월까지이고 12월은 겨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지구촌의 이상난동현상으로 11월에 그리 춥지 않고 12월 들어서도 몹시 춥지 않아 가을인지 겨울인지 구별이 잘 안 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래도 역시 12월은 12월인가 이달 들어서는 제법 추위가 오면서 겨울의 존재를 잊지 말라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가을소리를 뜻하는 추성이란 말은 자주 듣지만 겨울소리를 뜻하는 동성(冬聲)이라는 말은 듣기가 어렵다. 중국에서도 '冬聲'이란 말은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아무래도 가을소리는 나뭇잎이 부스럭거리는 것에다 나무 끝에 부는 차가워진 바람 소리, 겨울준비에 바빠진 다람쥐 달려가는 소리 등 여러 가지 소리가 있지만, 상대적으로 겨울소리는 흰 눈이 내리는 것 외에는 별반 없다고 생각해서일까?​

 

그러나 그것이 우리말로 와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우리 말에는 겨울소리라는 것이 있는 까닭이다. ​

 

바람 따라 이리저리 쓸리던 낙엽을 데리고

쓸쓸하던 가을소리는 저만치 멀어졌습니다​

 

덕유산 날망에 첫눈이 내려 초겨울 햇살에

반짝이고 빛날 즈음이면 차가워진 바람이

산골짝을 따라 내려와 들을 건너왔습니다​

 

뺨을 스치는 바람과 손이 시려진 세숫물로

겨울이 마을까지 내려온 걸 느끼곤 했지만

문풍지 떨리는 소리로 겨울밤이 깊어졌죠(중간 줄임)​

 

송골재 여수바위 모퉁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추운 소리 윙윙 내며 우리 곁을 지나갑니다​

 

아무리 그래도 가슴을 파고드는 추운 소리는

나무처럼 휘어지지 않고 오히려 팽팽해져서

바람에게 맞서는 전선 줄 우는 소리입니다​

 

부엉이 소리와 소쩍새 우는 소리들로 하여

그렇지 않아도 긴 겨울밤은 더 깊어갑니다​

 

늦은 밤 골목을 지나는 발소리 멀어져가고

소도 겨울밤이 심심한지 뒤척이곤 합니다​

 

늦도록 잠 못 들어 마음을 모으고 있노라면

소나무에 얹혔던 눈 무더기 떨어지는 소리며​

 

얼음장 아래 흐르는 물소리 아득히 들려오고

먼 동네 개 짖는 소리가 정적을 깨곤 합니다​

 

겨울소리들은 가슴 안으로 드는 소리입니다

깊어지고 잦아들고 쌓여 가는 소리들입니다​

 

문밖엔 밤새도록 함박눈이 내려 쌓여가고

내게는 여러 생각이 밤늦도록 쌓여 갑니다

 

                                    ........."겨울소리를 그리며", 소국(http://blog.naver.com/arumdaunjoi)

 

 

 

인터넷에서 발견한 이 시는 우리 주위에서 겨울소리를 얼마나 많이 들을 수 있는지를 조용히 일깨워주고 있다.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겨울소리는 가슴 안으로 드는 소리"라는 표현에 눈이 간다. 다시 말한다면 겨울소리는 가슴으로 듣는 소리라는 뜻일 것이요, 반대로 가을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머리로 들어오는 과정의 소리일 것이다. 그러므로 가을소리는 철학적인 소리요 겨울소리는 미학적인 소리이다. 가을소리와 관련된 대부분의 글들이 세월의 무상함을 읊는 것인데 비해 겨울소리는 벌써 그러한 가을의 허무를 극복하고 또 하나의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읊고 있다.

 

쌓이는 눈

힘에 겨워

바람으로

우는 나무.....​

 

눈~길

가던 나그네

되돌아오며

정 묻어두고.....​

 

지친 걸음에

언 손 녹일 때

봄이

있음을 알았네.....

 

                                                   "겨울 소리", 도레미(http://blog.naver.com/rheesj2003)

 

 

천둥번개와 돌풍으로 조금 더 나무에 달려있고 싶어 하던 잎들이 모조리 떨어져 휘날려가면서 2019년 우리의 가을은 그렇게 갔고 12월, 마지막 달로 접어들었다. 12월이라니, 겹쳐있던 달력을 다 떼어내고 마지막으로 맞는 달, 희망으로 맞았던 2019년이 벌써 다 갔나 하는 안타까움이 겹쳐서 떠오르는 달이 된 것이다. 올 한해 무언가 이루려고 했던 것들을 거의 이루지 못한 우리 많은 평범한 시민들은, 아쉬움 속에, 때로는 후회 속에, 이제 2019년을 정리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에게 한 해를 마감하는 일은 기쁨이나 즐거움보다는 괴로움과 아쉬움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되는 것이 없다고, 이룬 것이 없다고 후회할 수도 있다. 그러나 후회할 일만은 아니다. 원래 인생이란 것이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이 이루는, 그러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앞으로 갈 길이 많은 젊은 분들은 조급하실 수 있겠으나 노력한 것이 있다면 그대로 이뤄지는 것이 세상 이치인 만큼, 이뤄지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후회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얼마나 노력했느냐를 되돌아보고 그것이 모자랐을 때 후회하는 것이 맞는 것이리라.​

 

올해 초 저마다 꿈꾸었던 희망이 현실 속에서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모두 다 자신이 잘 되었으면 했지만, 이미 너나 나나 우리 모두 너무 많은 생각과 이익이 걸려 있어서 누구 혼자만의 희망대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저마다 가진 희망을 현실 속에서 수정할 수밖에 없다.

 

전체적으로 보면 올 한해 우리 사회가 그래도 희망을 향하여 나간 그런 한 해가 아니었을까? 경제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던 정치권력과 경제계의 유착이랄까, 국가권력의 남용에 따른 개인의 피해 등은 줄어들고 있고,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권역에서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열어갈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한 개인으로 보면 아쉬움과 미련이 많지만, 우리 사회 전체로 보면 조금씩 진보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그것을 올 한해를 되돌아보는 기준으로 활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12월에 들어섰으니 12월도 다 간 셈이다.

이 한해가 다 갔다고 보고 이제 후회 대신에 우리 새해의 희망을 그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