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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일까

남자는 늘 술로 자기의 탈을 벗는다
[석화 시인의 수필산책 14]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연변 화백 석희만 선생의 작품으로 ”탈춤”이라는 그림이 있다. 툭 튀어나온 이마, 우묵한 두 눈, 덩실한 주먹코, 죽 찧어진 입, 그 희한하고 기괴한 모양의 탈을 쓰고 두 팔을 휘둘러 장삼자락을 날리며 발을 구르는 모습, 이 작품을 마주 서면 굵고 힘찬 화백의 필치를 따라 그 신나는 탈춤이 그대로 한 폭의 그림 우에서 너울너울 펼쳐지는 듯하다.

 

나에게도 저와 같은 한 장의 탈이 있다면 얼른 집어쓰고 저이처럼 팔다리를 마음대로 휘저으며 한바탕 신나게 놀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충동에 저절로 가슴이 툭툭 뛰게 하는 그림이다.

 

함경도 북청의 사자탈춤, 황해도의 봉산탈춤, 경기도의 산대놀이탈춤, 강원도의 별신굿탈춤… 우리에게는 그렇게도 많은 탈과 그 탈을 쓰고 추는 춤이 있다.

 

 

탈, 이 울퉁불퉁하고 해괴망측하여 마주 바라보면 무섭기도 하고 또한 저절로 입 귀가 열리며 웃음이 벙그러지게* 하는 이 한 장의 나뭇조각은 과연 무엇일까. 탈에 대하여 간단히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기에는 쉽지 않다고 한다. 그 자체의 실체와 기능이 너무나도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탈은 원시시대부터 역사와 함께 하면서 신앙성을 띠고 벽사, 의술, 수렵, 연희 등에 쓰였다. 우리는 일찍 선사시대의 유물에서부터 탈의 편린들을 찾을 수 있으며 삼국시대에는 각 사서들을 통해 그 흔적들을 읽어낼 수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산대잡극과 나희 등으로 조선시대에는 산대극, 처용무, 학무 등으로 전승발전 되어왔다.

 

탈은 또 우리 겨레뿐이 아닌 세계 여러 민족 모두에게도 공통된 하나의 문화현상이라는데 그 의미가 있다. 중국의 한족(漢族)들은 대륙의 풍토를 닮아 물동이만큼 크게 탈을 만들어 뒤집어썼고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그 생긴 나름으로 작게 또 작게 손바닥만큼이나 작게 만들어 콧등이나 겨우 가렸다. 서구에서도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유럽의 제 민족들은 한 장의 종이 위에 짐승이나 요귀의 모양을 그려 머리에 쓰고 가면무도회 같은 것들을 벌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 전 인류는 왜 모두 탈이 필요했을까. 자기 본 얼굴이 아닌 다른 얼굴로, 본래의 모습을 감춘 과장되고 변형되고 대체로 기괴망측한 모양이 필요하였을까. 이 한 장의 가면에 정말로 자기를 보호하고 상대를 제압하는 그렇게도 큰 주술이 깃들이어 있다는 말일까.

 

저 유명한 봉산 탈만 쓰면 저절로 신이 나고 팔다리를 마음대로 휘젓고 굴러댈 수 있을 것만 같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검은 천 한 조각으로 얼굴만 가리면 왜 그 의로운 “졸로” 처럼 칼끝을 겨누고 불의와 죄악을 맞받아 한바탕 돌진할 수가 있을 것만 같을까. 이처럼 한 조각의 나무, 한 장의 종이나 한 폭의 천일지라도 그것으로 얼굴만 가리면 그처럼 의젓하고 떳떳하고 용감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비록 그 뒤에 숨겨진 얼굴의 본 모양이 일그러지고 비틀어져 틀림없는 비열하고 비겁하고 간교한 상판이면서도 허리를 쫙 펴고 고개 번쩍 쳐들고 다닐 수 있는 것이 모두 이 한 장의 탈의 그 무한한 마력에서 온 것이란 말일까. 겉 얼굴과 속 얼굴, 표면적인 자아와 이면적인 자아, 오늘의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도 비록 거추장스러운 실물로서의 탈은 비록 쓰지 않았다고 하지만 탈과 같은 또 하나의 다른 얼굴은 늘 준비하고 있으며 항상 사용하고 있는 줄로 알겠다.

 

 

요즘 새로 생겨난 “취미”가 있다. 여자들은 화장을 하고 나면 자신심*이 절반쯤 더 생기고 행동도 그만큼 더 자연스러워진다는 말을 어느 여인에게서 듣고나서 눈썹을 휘늘어지게 그리고 볼을 하얗게, 입술을 빨갛게 칠하고 턱을 쳐들고 당당히 마주 오는 여자들을 보면서 저 화장기 뒤의 본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떠올려본다.

 

또 뒷골목 맥주집에서 병마개가 따진 빈 맥주병이 서너 개쯤 구르기 시작하면 비록 형의 코앞일지라도 기세 좋게 주먹을 휙휙 내저을 수 있고 자리에 없는 상사도 마음껏 욕할 수 있는 남자들을 보면서 저 친구가 내일 아침 술 깨고 출근하는 모습은 어떨까 하고 떠올려보는 것도 말이다.

 

이러한 것을 보면서 여자는 화장으로 열심히 자기의 탈을 만들고 남자는 늘 술로 자기의 탈을 벗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마치도 봉산탈의 그 무섭기도 하고 어수룩하기도 한 묘한 모습을 점도록* 마주 보노라면 저도 모르게 묘한 생각이 일어나고 절로 입 귀가 실룩거리고 웃음이 벙그러지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에게 정말 그렇게도 탈이 꼭 필요한 것일까.

 

(낱말풀이)

* 벙그러지다 : 맺힘을 풀고 툭 터지며 활짝 열리다.

* 자신심 : 어떤 일을 해낼 수 있거나 꼭 이루리라고 스스로 굳게 믿는 마음

* 점도록 : 저물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