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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고려 고찰 여주 혜목산(慧目山) 고달사터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고달사는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혜목산에 있던 절로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이 절은 신라 경덕왕23년(764)에 창건되었던 절로 전하는 바에 따르면 고달사의 창건은 한 석공이 불심으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런 고달사는 신라를 거쳐 고려 광종(재위949~975)때 왕실의 전폭적 지원으로 구산선문인 봉림산문을 대표하는 절로 크게 융성하였으나, 조선에 들어선 이래 억불정책으로 차츰 쇠약해지다가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불탔고 이후 폐사되고 말았다.

 

폐사가 된 뒤 고달사의 전각이 있던 곳은 논과 밭으로 변해 버렸고, 주춧돌과 기단석은 주변 집들의 주춧돌 담장 빨래판 등으로 변하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세월이 흘러 조선시대가 끝나고 일제강점기와 광복을 맞이하였으나, 고달사는 묵묵히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1993년 고달사의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국가사적 제382호로 지정되고 1998년부터 문화재발굴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고달사터에 남아있던 여러 석조물들이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되었다. 1993년 사적지로 지정되기 전에는 고달사터 전체가 논밭이었고, 국보 보물급 석조물도 논밭 속에 방치되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석주스님이 자신의 붓글씨를 판 돈으로 폐사터 한편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게하고 제자들에게 명하여 고달사의 법통을 이어가게 하였다.

 

현재 고달사터는 발굴된 석조물들이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는 절의 가장 중심 건물인 법당에 부처님을 모시기 위하여 만든 거대한 석조 좌대가 있으며,  고달사가 크게 융성했을 때인 고려시대 국사로 계셨던 원종국사의 사리탑과 그 탑비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리탑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 사리탑의 주인은 지금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본래 고승들의 사리탑을 조성 할 때면, 당연히 그 바로 옆에 그 행적을 기록한 탑비가 세워져있는 것인데 고달사에는 원종국사의 탑비는 있으나, 그 탑비는 없는 것이다.

 

원종국사는 고려초 광종때 국사로 추앙받았던 고승으로, 고달사에 있으면서 왕실은 물론 온 백성들부터 정신적 스승으로 추앙되었던 고려시대 고승이었다.

 

지금 한국사회는 각 분야별로 많이 배운 박사들도 많고, 수많은 성직자들도 있지만 국민 누구나 따를 만한 원종국사 같은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음에도, 그를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흠집만 찾아 모함하려는 사람들 탓에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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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