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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정성으로 먹고사는 역사 덕후의 세상

역사를 배우고, 역사를 가꿔 덕후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
원숭이에게 옷을 만들어 입히려 한 동물 덕후 성종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랜선으로 교류하며 전문성을 뽐내는 역사 덕후들

새로운 길을 개척한 역사 덕후들의 이야기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조현재)은 “(역사덕)후후의 세계”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6월호를 발행하였다. 지난 2019년 10월(68호)의 “조선시대 덕후들”이 조선시대에 있었던 덕후라면, 이번 호에서는 현재의 역사 덕후를 다루었다. 이를테면 대하사극 매니아 카페의 운영자, 역사를 소재로 한 장르에 있어 덕후의 경지에 오른 경우 등 역사콘텐츠를 이끌어 가고 있는 현재의 역사 덕후의 생성 배경과 사회적 선순환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기획되었다.

 

집에 틀어박혀 만화ㆍ게임에 빠져있던 ‘오타쿠’

전문가 뺨치는 실력자 ‘덕후’로 인정받는 세상

 

‘덕후’라는 단어의 유래는 오타쿠(御宅)로 당신 혹은 댁이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이다. 특정 분야에 푹 빠져서 전문가 이상의 식견을 자랑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 단어가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오덕후’라고 불렸고, 더 줄여서 ‘덕후’라고 불리게 된다. 오타쿠는 대체로 집에 틀어박혀 사람들과 만나지 않고, 전통적인 일본 사회의 규범과 관습을 거부한다는 의미까지 더해져 애들이나 좋아할 만한 것에 푹 빠진 어른이라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덕후의 집중력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미디어 매체에서 네트워킹을 통해 전문성과 연대의 빛을 발하고 있다.

 

 

‘정명섭 작가의 <역사덕후론>을 위한 시론’에서는 덕후가 세상을 버리고 취미를 택한 것은 그 취미를 좋아하는 것이 첫 번째, 사회생활에서 얻는 기쁨과 만족도보다는 취미 생활에서 얻는 기쁨이 더 큰 것을 두 번째 이유로 뽑는다. 전문가 뺨치는 실력을 자랑하게 된 덕후들의 내공은 유튜브를 중심으로 눈길을 끌었고, 결국은 방송까지 진출하게 된다. 몇 년 전 MBC에서 방송된 『능력자들』이 대표적이며, 그 외에도 방송 섭외 대상 1순위로 꼽힌다.

 

정명섭 작가의 <역사덕후론>을 위한 시론

‘나의 조선시대 복식 수집 덕질기(記)’

 

정명섭 작가는 역사 덕후가 다양한 방면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 이유에 대하여 오늘날 삶이 윤택해지면서 과거를 되돌아보게 되고, 그에 따라 “역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역사 관련 자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도 역사 덕후 양성에 한몫했다.”라고 말한다. 인터넷에서 빠르게 논문과 자료들을 검색할 수 있고, 그것을 토대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게 되면서 “덕후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진 생산성까지 갖추게 되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사극 덕후에서 조선시대 복식 수집 덕후로

복식의 현대와의 접목과 선순환을 고민하다

 

전통 복식 연구 및 재현 단체인 <오례> 권병훈 대표는 ‘나의 조선시대 복식 수집 덕질기(記)’에서 어린 시절 사극을 즐겨보면서 의상에 대한 재미에 빠져 조선시대 복식 구매 덕후가 되어가는 과정을 전한다. 궁중의상, 관복, 예복, 색감에 빠지면서 전문서(專門書)들을 읽고 한 점씩 모으면서 몇백 벌을 소장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옛 복식들을 현대의 소재와 기술에 접목하여 사회적으로 선순환시키는 방법과 사극이나 전통행사에 적용하는 것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다. 손수 구매하고 모은 옛 복식들에 대한 에피소드와 그 복식들을 통해 펼치고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소개한다.

 

수집에 그치지 않고 관련 도서나 대학원 수업 청강 등을 통해 지식을 넓혀 나가고, 그 지식들을 온라인 카페나 블로그를 통해 공유하기도 한다. 글쓴이는 덕후에서 영화 <남한산성>, 26만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써에이스쇼(Sirace-show)의 <당신이 몰랐던 임진왜란>’ 등의 고증을 자문하는 전문가가 되었다.

 

 

 

정용연 화백의 <역사 덕후>에서는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로, 문화생활은 라디오 듣기가 전부였던 작가 자신이 어린 시절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큰형이 해준 계백장군 이야기를 듣고 역사에 빠지던 과정을 그렸다. 역사 만화 작가로 키워준 청소년 덕후의 모습이 그림에 묘사되어 있다.

 

 

임금이 원숭이에게 옷을 지어 입히려 했다?

도서관보다 더 많은 책을 보유한 책 덕후

 

시나리오 작가 홍윤정은 ‘그의 사랑, 병이 되다’라는 글을 통해 전형적인 덕후였던 조선시대 성종에 관해 이야기한다. 공부를 좋아한 노력형 군주, 외세의 침입이 없던 흔치 않은 태평성대를 구가했으며, 경국대전을 완성하고 숭유억불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한 이상적 도학 군주라 일컬어진 바로 그 성종 기록에서 나타나는 동물 덕후로서의 모습은 놀라움과 흥미로움을 가져다준다.

 

 

손비장이 아뢰기를, “어제 사복시(司僕寺)에서 토우(土宇)를 지어서 원숭이를 기르자고 청하였고, 또 옷을 주어서 입히자고 청하였는데, 신의 생각으로는 원숭이는 곧 상서롭지 못한 짐승이니, 사람의 옷을 가지고 상서롭지 못한 짐승에게 입힐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한 벌의 옷이라면 한 사람의 백성이 추위에 얼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신은 진실로 전하께서 애완물을 좋아하시지 않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태사가 역사책에 쓴다면 후세에서 전하더러 애완물을 좋아하였다고 하지 않을는지 어찌 알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시경》에 이르기를, ‘사슴은 윤기가 흐르고 백조는 희기도 희도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그 만물이 각각 그 살 곳을 얻은 것을 말한 것이다. 내가 애완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외국에서 바친 것을 추위에 얼어 죽게 하는 것은 불가할 것이다. 사복시에서 청한 것은 옷이 아니고 녹비를 주어서 이에 입히고자 청하였을 뿐이다. 경이 잘못 들은 것이다.” (《성종실록》 8년 1월 4일)

 

성종은 소문난 동물 덕후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유구국(오키나와)에서 진상한 원숭이의 겨울나기를 위해 옷을 지어 입히라고 했더니, 신하가 백성도 떨고 있는데 동물 입힐 옷이 어디 있냐고 따져 묻는다. 시문을 인용하고는 있지만, 아직 어린 성종의 변명은 궁색하다. 원숭이 외에도 매, 낙타에 대한 성종의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

 

 

<스토리이슈>에서는 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益,1534~158)의 《외암비장(畏巖秘藏)》을 다룬 고서 덕후 우진웅 연구위원을 소개하고 있다. 《외암비장》은 약 30년 전부터 흥해배씨 임연재종택에서 내려오는 장서목록이다. 책 한 권이 논이나 밭의 재산보다 더 구하기 힘들었던 조선시대에 배삼익이 3,000여 권의 책을 소장했던 ‘책 덕후’의 면모가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편액이야기>에서는 오롯이 단종만을 사모했던 충절의 상징인 도촌(桃村) 이수형(李秀亨, 1435~1528)의 공북헌(拱北軒)’ 편액을 소개한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스토리테마파크(htp://story.ugyo.net)에는 조선시대 일기류 247권을 기반으로 5,480건의 창작소재가 구축되어 있으며, 검색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매월 한 가지의 주제를 선정하여 웹진 담(談)을 발행하고 있다. 전통적인 일기류를 소재로 하지만 주제의 선정은 지금의 일상과 늘 맞닿아 있다.

 

이번 호 웹진의 공병훈 편집장은 “세상이 덕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오랜 편견은 ‘덕질이란 통제할 수 없는 중독’이라는 관점이었기 때문이지만,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발달은 덕후들의 활동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라고 하며 “고립되었던 덕후들이 이런 통로로 서로를 연결하여 커뮤니티를 이루고 검색을 통해 전문 지식에 접근하며 자신들의 활동과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