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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생생지락과 모두가 행복한 공락(共樂)의 세계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50]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코로나 19’ 사태는 단순히 개인의 생활 습관만이 아닌 사회와 국가경제 활동 전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규정이 이루어져 가고 있다. 이를 뉴노멀(new normal)이라고 부른다. 잠잠해지는 줄 알았던 ‘코로나 19’는 이제 7월 들어서부터는 일반 독감처럼 우리와 함께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그 위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이 사회변화에 대응해 살아가는 방법과 세종시대를 견주어 보자.

 

사람이냐 경제냐

 

‘코로나19’가 퍼질 때 나라마다 그에 대응하는 정책이 달랐다.

 

먼저는 제한 없이 유전자 증폭기술(PCR) 검사를 하느냐 아니면 며칠 동안 아픈 증세가 있어야 검사를 해주느냐다. 앞의 나라는 한국과 독일이었고, 뒤의 나라는 아픈지 3일이 지나야 검사해주는 일본이었다. 7월에 들어서는 어느 나라나 1차 파동이 멈추었을 때보다 늘어나고 있어 마찬가지 형편이 되었지만, 그간 의료체계를 갖춘 나라의 사망자는 적었지만, 검사를 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사망자도 많고 그 밖에 폐렴 등 다른 병으로 죽은 사람이 전해보다 많아 사망자 통계를 속이는 행정까지 나오게 되었다. 질병이 지속되자 몇 국가에서 이동 봉쇄(shut down, 더 강력한 lock down)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달 26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州) 의사당 인근에서 주정부의 마스크 착용 명령에 반대하는 한 시위 참여자가 “내 몸, 내 선택, 마스크 거부”라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이 사실을 보고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미셀 겔펀드는 “‘느슨한 사회’인 미국은 집단의 규범에 따르는 것보다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한다.”라고 말한다. 유럽에서는 록 다운이 해제되자 파티장에 밀려들어 노래하고 춤추었다.

 

일반적으로 사회규범을 따르는 강도가 다른 문화적 차이를 일으킨다고 한다. 이는 국민성 차이라기보다 ‘사회규범의 강약에 다른 문화적 차이’로 설명하고 있다. 사회규범이 강하고 일탈을 거의 용인하지 않는 문화를 '빡빡한(tight) 문화'로, 규범이 약하고 관대한 문화를 '느슨한(loose) 문화'로 규정한다. 앞이 규칙 제정자라면, 뒤는 규칙 파괴자다.

 

 

전쟁, 자연재해, 식량난, 질병 등 생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위협에 직면할 일이 많았던 집단이 '빡빡한 문화'를 구축하는 경향이 있다. 혼란에 맞서 질서를 창출하기 위해 뭐든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는 대개 빡빡하다. 높은 인구밀도가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실험실 쥐들도 비좁은 공간에서 살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싱가포르와 한국이 '빡빡한 나라'인 것은 인구밀도 영향도 크다. 한국의 빡빡함은 “이웃 국가들에 여러 번 침략당한"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은 검사는 못 해도 지진 등 자연재해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일사불란한 문화를 갖춰야만 했다.

 

미국과 같은 '느슨한 문화권'의 최우선 가치는 '자유'와 '다양성'이다. 이는 '빡빡한 나라'인 싱가포르가 2003년 사스(SARS) 때와 이번 코로나 사태 때 사람들의 이동을 엄격하게 제한한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 각 주의 '빡빡함-느슨함' 차이는 처음 신대륙 각지에 정착했던 사람들의 문화적 특성에서 시작됐다고 추정한다. 목동의 후예로 엄격한 규범을 중시하는 아일랜드 및 스코틀랜드 출신 이민자들이 정착한 남부는 권위적이고 빡빡한 문화권으로 성장했다. 미국서 가장 '느슨한 주'인 캘리포니아는 18세기 중반부터 아메리카 원주민, 멕시코인, 유럽인이 한데 섞인 도가니였고 19세기 금을 캐는 골드러시로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다양성을 갖추게 됐다.

 

국가 기업, 나아가 개인 모두 결국엔 빡빡함과 느슨함 속에서 균형을 이루는 '양손잡이'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너무 느슨해지면 빡빡하게 조이고, 너무 빡빡해지면 느슨하게 풂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참고: 미셸 겔펀드, 《선을 지키는 사회, 선을 넘는 사회》, 시공사, 2020)

 

생생지락(生生之樂)과 공락(共樂)

 

세종은 정치에서 백성 모두가 각자의 삶에서 살아가는 생생지락의 기쁨을 찾고 나 혼자가 아닌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공락(共樂)의 세계를 꿈꾸었다. 실록에서 세종이 함길도의 알타리들을 성심으로 후대하도록 도절제사 이세형에게 전지하는 기사가 있다.

 

공향생생지락가共享生生之樂可 : 이제 너희들은 범찰(凡察)이 도망갈 때를 당하여 일찍이 따라가지 않고, 예전과 같이 생업에 편히 종사하면서 한마음으로 힘을 다하였으니, 이로써 너희들의 나라에 향하는 정성이 마지막과 처음이 변치 아니한 것을 알겠다. 너희들에게 후하게 물건을 주는 것은 너희의 공을 가상히 여기기 때문이니, 너희는 마땅히 이 마음을 더욱 굳건히 하여 길이 나라의 울타리가 되어 ‘같이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마땅할 것’(共享生生之樂可也)이다.(《세종실록》24/1/7)

 

타민족과 더불어 즐겁게 사는 일은 오늘날 세계와 함께 어울려야 하는 이 시대에도 귀감이 된다.

 

세종 5년의 ‘각자 생생지락을 이루는 일’(《세종실록》5/7/3)은 백성의 폐해를 구제하는 일, 세종 26년의 ‘생생지락’은 이 모든 것을 함축하는 백성들이 농사에 힘써 곧 생업에 힘써 줄 것에 대한 소망이다. 특히 26년의 기록은 생생지락으로 가는 길을 짚어준다.

 

먹는 것이 하늘 : 나라는 백성으로 근본을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 농사란 옷과 먹는 것의 근원으로서 임금의 정치에서 먼저 힘써야 할 바다. 오직 그것은 생민(生民)의 대명(大命, 임금의 명령)에 관계되는 까닭에, 천하의 더할 수 없는 노고를 떠맡게 하는 것이다. 위에 있는 사람이 성심으로 지도하여 거느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백성이 부지런히 힘써 농사에 종사하여 그 생생지락(生生之樂)을 이룰 수 있겠는가.(《세종실록》26/윤7/25)

 

오늘날 생명이냐 경제냐에서 먹고 사는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생생(生生) 사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민락생생자: 백성들이 생생하게 살기를[생업에 종사하기를] 즐겨한 지 무릇 30여 년. (《세종실록》32/2/17) 세종은 백성과 함께 건강하게 생기 있게 살아오셨다.

 

기쁨과 즐거움

 

생생지락은 개인이 느끼는 기쁨에서 시작한다. 오래 지속하는 기쁨이나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기쁨은 즐거움이 된다. 남과 나눌 수 없는 기쁨은 진정한 기쁨이 아닐 수 있다.

 

세종 시대의 생생의 락은 ㈎ 야인의 자제들을 서울로 보내고 일하며 ㈏ 부모와 자식의 왕래와 상봉 ㈐ 야인은 행복, 국가는 정성을 보고 ㈑ 결국 생생의 락을 오래 누리고 ㈒ 생생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일이다. 마지막 목표는 각자가 락을 통해 모두의 기쁨을 누리는 일이고 세종은 이러한 생생의 삶을 펼치고 사셨다. 오늘의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는 장면이다.

 

코로나 시대에 살아가는 한 가지 방안으로는 너무 갇혀 사는 ‘집콕’의 갑갑함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밖으로 나도는 자유로움이 줄어드는 대신 마음이 자유롭게 움직이게 해주어야 한다. 인문학자들이 말하는 대안이 있다. ‘욕망을 앞세워 삶을 살려 하면 삶이 망가지기 쉬우나 삶 속에 살짝 욕망을 얹으면 삶이 풍부해진다.’라고 한다.

 

사회는 대면(contact)시대에서 간접 대면인 온택(ontact) 시대를 맞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고, 밀폐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기초적인 공생(共生)의 생활을 통해 세종이 지향하던 개인의 생생지락과 모두가 행복한 공락(共樂)의 세계를 이루어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