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3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문화 넓게 보기

오 나의 귀신님! 죽었지만 살아있는 귀신

우리네 귀신의 한(恨)으로 보는 인간세계 이야기
한국국학진흥원, 웹진 담(談) 7월호 펴내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조현재)은 “오 나의 귀신님!”이라는 주제로 이야기주제공원(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7월호를 펴냈다. 요즘 공포 콘텐츠는 <킹덤>, <부산행> 등 외국 귀신인 좀비들과 함께한 것들이 대세다. 모두 좀비화되어가고 있지만, 앞으로 한국의 개성을 잃지 않으려면 외부 영향을 받지 않은 우리 귀신의 원형을 살펴보고 그 잠재성을 짚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전투를 좌지우지, 임금도 피난 보낸 처녀귀신

죽어야 한을 풀 수 있는 ‘죽어야 사는 여자’

 

강선일 작가는 <죽어야 사는 여자>를 통해 조선 시대 귀신은 수동적인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로 살았던 여성들이 조선의 사회적 규범으로 인해 희생된 원귀로 많이 등장하며, 소외되고 좌절당한 서사를 갖고 있다고 짚는다.

 

충장공(忠壯公) 신립(申砬, 1546~1592)에게 고백한 여인은 거절당하자 자결하였다. 전투 중인 신립에게 귀신이 되어 나타나 향후 전략을 제시하였고, 그 여인을 호국령으로 생각한 그가 그대로 따르다가 전멸한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뒤 선조는 피난길에 올랐다. 이성 관계에서마저 선택은 남성이 하는 것이었던 조선 시대는 경직된 윤리관과 사회적 이념이 여성들을 내몰았고, 원귀가 되어 표출한 분노로 인해 국가적 위기까지 맞게 했다고 풀이한다.

 

‘아랑전설’속 아랑은 겁탈을 피하려고 반항하다가 살해당하고 만다. 새로 부임한 부사에게 귀신으로 나타나 원한을 토로한 끝에 가해자를 처벌하고, 장례를 치러주니 한을 풀었다. 밀양 부사의 딸이란 사회적 지위가 있었던 아랑은 정절이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고 목숨을 걸어야 했다.

 

강선일 작가는 여성이 죽어 원혼이 되어서야 억울함을 호소하여 한을 풀 수 있었으니, 이것이 조선에서 여성이 ‘죽어야 사는 이유’라고 말한다.

 

뿔 없고 눈도 튀어나온 날개 달린 리얼 도깨비

원한 제공자 사대부가 원한을 해결하는 역설

 

강상순 교수는 <조선시대 귀신 BEST 5>에서 이런저런 곳에 붙어 있다가 인간과 겨루는 귀매(鬼魅)라고 불리는 도깨비, 가부장제의 폭압에서 생겨난 원귀(怨鬼), 역병을 일으키는 여귀(厲鬼), 조선시대에 있을 법하지 않지만, 부자간의 폭력을 은유한 구렁이 귀신, 배가 고픈 귀신들까지 다섯 종류의 귀신을 소개한다.

 

그 가운데 귀매(鬼魅)인 도깨비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머리에 뿔이 난 외눈박이 형상이 아니다. 《어우야담》에서 묘사된 도깨비의 모습은 ‘눈은 튀어나오고 코는 오그라들었으며, 입 가장자리가 귀까지 닿을 정도로 찢어져 있고 귀는 늘어져 있으며, 머리카락은 솟아있고 등에는 두 날개를 달았으며, 몸빛은 청홍색’이라고 표현되어 있어 조선 시대에는 도깨비가 기괴하고 두려운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강상순 교수는 조선 시대 귀신 이야기의 대부분은 귀신이 원한을 해결하는 사대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대부는 조선 후기 강화된 유교적 질서와 가부장제 등의 원인을 제공한 폭력적인 사회세력이라고 짚으며, 이들이 해결사로 묘사된 이야기들을 통해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고 하였다.

 

 

권숯돌 작가의 <관아 귀신 소동>에서는 헌종11년 경북 예천 박득녕(朴得寧)의 일기 속 귀신 이야기를 만화로 보여준다. 관아의 알 수 없는 귀신 소리에 사람들이 공포에 떨었고, 곧 방술사의 소행이라고 밝혀졌다. 그러나 일기에는 가짜 귀신 소동을 벌인 이유를 말하지 않고, “그를 잡아 큰 독 안에 가둔 뒤 연못에 던져버렸다”라는 결과만 서술되어 있다. 권숯돌 작가는 “관의 위신을 세우고, 소문을 진정시키기 위해 서둘러 무고한 사람을 잡은 것은 아닐까? 만약 방술가가 벌인 일이 아니라면 하나의 원귀를 또 만든 셈이다.”라고 그 숨겨진 의도를 풀이했다.

 

도망 다니고 놀라는 허술하고 약한 우리의 귀신

더 치밀하고 잔인한 인간의 세계

 

시나리오 작가 홍윤정은 <세상에 좋은 귀신은 없다>에서 영화 <엑소시스트>를 예로 들며 서양의 귀신은 기독교적 세계관이 반영되어 ‘악마’이자 ‘절대악’으로 묘사되지만, 우리나라 귀신은 ‘홍역이나 역병을 피해가고’, ‘밤에 지팡이로 창문을 두드리면 놀라고’ 하는 등 어딘지 허술하고 약하다고 비교한다.

 

손자의 홍역으로 오늘 명절임에도 신주에게 다례를 올리지 못하였다. 본래 집안에 홍역이나 역병이 있으면 귀신도 피해가기 때문에 제사를 올리지 않았다.

오희문, 《쇄미록》, 1601

 

다음 날 소경 귀실(貴實)이 와서 학질 귀신을 물리치려면 밤에 지팡이로 창문을 두드려서 귀신을 놀라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김광계, 《매원일기》, 1607

 

또한, 혼인하지 않은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는 조상들의 생각은 죽어서도 처녀, 총각을 면할 생각밖에 없는 몽달귀신과 처녀귀신을 탄생시켰다고 하며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을 소개한다. 처녀귀신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발칙한 설정과 자기 죽음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면서 남은 가족에게 사랑을 전한다는 주제가 호응을 얻었다. 어딘가 허술한 귀신에 비교해, 오히려 더 치밀하고 아무런 가책 없이 살인을 저지른 악마는 인간이었다.

 

 

<이야기논쟁(스토리이슈)>에서는 역사 자료를 현재의 삶에서 재미있게 풀어내려는 시도들이 돋보였던 제6회 스토리테마파크 창작 콘텐츠 공모전의 마지막으로 뽑힌 8팀을 소개한다.

 

<편액이야기>에서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이 모셔진 여현종택(旅軒宗宅)의 여재문(如在門) 편액을 소개한다. ‘여재(如在)’는 제사를 지낼 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한 효로 선조가 마치 눈앞에 계신 것처럼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불천위(不遷位, 국가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은 인물을 사당 내에 영원히 모시면서 제사 지냄)로 제사를 모실 만큼 17세기 조선 성리학계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업적을 소개한다.

 

이번 호 웹진 편집장을 맡은 동희선 작가는 “우리 귀신은 항상 ‘왜 그랬냐 하면’이라는 설명으로 마음을 건드린다.”라고 하며 “이번 호의 우리 귀신에 대한 여러 면을 보면서 자극적인 이야기가 난무하는 세상 속 콘텐츠 승부의 가능성을 찾아보자.”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는 이야기주제공원(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는 조선시대 일기류 247권을 기반으로 5,480건의 창작 소재가 구축되어 있으며, 검색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