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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비를 듣는 사람들

원래 비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55]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사람이 살다가 계절이 순환하는 것을 보면 가끔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전 올린 글을 다시 상기시키며 그걸 재 공지할 것을 물어보는 페이스북에 보니 3년 전 딱 요때에 비가 많이 내려 그 비를 맞으러 밖으로 뛰어나가 찍은 사진들이 다시 올라온다. 남쪽엔 비가 많이 왔지만 서울 근처에는 비가 많지 않아 사실상 북한산 일대는 가뭄 증세가 있었는데 어제 밤과 오늘 사이에 쏟아져 내린 100밀리 가량의 비로 땅 속 깊이까지 빗물이 배어 아마도 식물뿐 아니라 동물들도 좋아하고 있는 듯하다. 딱 3년 전의 일이다. ​

 

지금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그냥 내리는 것이 아니라 줄줄 내린다. 하염없이 내린다. 아파트 거실의 문을 닫고 비를 바라본다. 빗방울들이 창문을 때리고 있다. 창문에 부딪치는 빗방울들이 조르르 미끄러지는 것을 보는 것은 재미있다. 바람이 조금 부니 빗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

 

그런데 나는 지금 비를 보고 있는가?

비가 내리는 소리를 듣고 있는가?

비는 보는 것인가? 듣는 것인가?

 

 

조선조 중기의 시인 장유(張維,1587~1638)는 내리는 비를 보면서 잔뜩 흥취가 나는 것을 표현하면서도 시의 제목은 청우(聽雨), 곧 비를 듣는다고 했다.

 

凉意先從枕簟知  침상에 언뜻 번져 오는 서늘한 기운

滿堂荷葉雨來時  집안 가득 연꽃 잎새 빗방울이 후두둑

跳珠瀉汞眞堪訝  구슬이 튀고 수은(水銀)이 흐르고 정말로 볼 만한데

亂颭輕翻摠自奇  일렁이며 뒤치는 모습 모두가 기이하네

 

                                       ...장유, 해산헌 팔영(海山軒八詠), ‘하당청우(荷塘聽雨)’

 

정조대왕이 조선조 최고의 시인이라고 칭찬한 박은(朴誾,1479~1504)도 비를 보면서 오히려 빗소리를 듣는다 . 두 번째 줄에서 비를 듣는다는 표현을 아예 쓴 것이다

 

逢秋轉多思  가을을 만나 더욱 생각이 많고

聽雨更懷人  빗소리 듣고 새삼 사람 생각한다

 

                                       ... ‘빗속의 느낌(雨中感懷)’

 

이렇게 비를 보면서 그냥 비만 보는 것이 아니라 비를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쓸쓸함을 호소한다.

 

나이 들어 점점 친구도 멀어지고 권세를 쫓던 그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간 때가 되면 내리는 비는 사람을 쓸쓸하게 할 것이다. 그것이 한 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가만히 앉아 비를 통해 우주를 관조할 정도로 수양이 높으면 별개라 하겠지만 우리들은 그렇지 못하지 않은가? 이럴 때에 진정으로 마음 맞는 친구가 옆에 있으면 좋으련만 현대인들은 집안에 자기 친구들을 맞아들일 공간도 방법도 없으니까 혼자서 외로움과 쓸쓸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비 오는 밤, 누구 친구라도 없을까? 형제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서글픈 감정을 옛 사람들은 '풍우대상(風雨對牀)'이란 말로 표현했다. 당나라의 시인 낙천(樂天) 백거이(白居易)의 시가 바로 그것이다.

 

能來同宿否  와서 함께 묵을 수는 없겠소

風雨對牀眠  비바람 치는 데 침상 마주하고 잡시다

 

                           ...백거이(白居易), ‘빗속에 장사업을 재우러 부르다(雨中招張司業宿)’

 

백거이만이 아니다. 소동파도 그랬단다. 송(宋)나라 때의 동파(東坡) 소식(蘇軾,1037~1101)과 소철(蘇轍 1039~1112) 형제는 우애가 돈독하기로 잘 알려져 있다. 두 형제는 같은 시기에 과거에 급제하여 각자의 임지로 떠나서 헤어져 오랫동안 보지 못하자 동파가 동생에게 보내는 시를 이렇게 쓴다;

 

雪堂風雨夜  비바람 치는 밤에 설당에서

已作對床聲  침대 마주하는 소리 내자꾸나

 

                    ...소동파, ‘초가을에 자유에게 보내다(初秋寄子由:자유는 소철의 자)’

 

그러자 동생 소철도 시를 써 준다.

 

夜深魂夢先飛去  밤 깊어 혼은 꿈속으로 먼저 날아가 버리고

風雨對床聞曉鐘  비바람 속 같이 자다 새벽 종소리 들리네

 

확실히 비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눈이 와도 생각, 비가 와도 생각, 바람 불어도 생각, 사는 것이 온통 이 생각 저 생각이지만 비가 올 때 가장 생각이 진하다. 옛사람들은 집안에 못을 파고 연꽃을 즐겨 심었기에 요즈음 같은 때에 연잎 위로 비가 떨어지는 소리를 즐겨 들었다고 하는데 그런 정취를 맛보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계속 내리는 빗속에 어디 외출도 꿈도 못 꾸고 서재 책상에 앉아 스탠드 등불 아래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어야 하는데, 그때 보고 싶은 사람, 그리운 사람이 많이 생각날 것이다

 

 

그런데 어찌됐든 비를 보는 데는 연꽃잎이 좋겠지만 듣는 데는 파초만한 것이 없다. 바람이 몹시 불 때에 파초위에 떨어지는 그 “쏴~ 쏴~”하는 소리, 바람이 덜 불 때 “뚝 뚝” 하는 소리는 청우(聽雨), 곧 비를 듣는 사람에게는 그만이다.

 

隔窓知夜雨  창밖에 비가 내리는구나

芭蕉先有聲  파초 소리를 들어보니

 

                                 ...백거이(白居易), ‘밤비(夜雨)’

 

이 짧은 열 자의 한자로 비가 내리는 경치를 그대로 그려볼 수 있다. 사실 백거이의 이 ‘밤비(夜雨)’라는 시는 꽤 인기가 있는 작품으로서, 그 앞머리에 있는 이 구절, 곧

 

早蛩啼復歇 (조공체부헐)  철 이르게 귀뚜라미 울다가 그치다가.

殘燈滅又明 (잔등멸우명)  얼마 남지 않은 등불도 꺼지다가 다시 살아나고.

 

과 함께 많이 사랑을 받는 다고 한다. 조선조 초기의 문신 서거정도 이러한 정취를 생각한 듯 시를 한 수 쓰는데

 

捲簾楸影落繩牀  주렴 걷자 오동 그림자가 의자를 덮어라

半頂烏紗睡味涼  오사모 젖혀 쓴 채 조는 맛이 서늘하구나

一陣南風晩來雨  한바탕 남풍이 불고 석양에 비가 내리니

滿院都是碧荷香​  집안에 가득한 게 온통 연꽃 향기뿐일세

 

小沼如盆水淺淸  물동이만 한 조그만 못 물은 옅고도 맑은데

菰蒲新長荻芽生  부들풀이 새로 자라고 갈대 싹도 나오네

呼兒爲引連筒去  아이 불러 대통으로 물 끌어오게 하노니

養得芭蕉聽雨聲  파초 길러서 비 오는 소리나 들어보련다

 

                                                            ...서거정, ‘즉사(卽事)’

 

집안에 파초를 심지는 않았는지, 혹은 심어놓고도 시치미를 떼는지는 모르겠지만 서거정은 뒤늦게 파초를 심어 비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단다.

 

아무튼, 밤비는 사람을 쓸쓸하게 만든다. 온갖 상념에 빠지게 한다. 외로움을 실감하게 한다. 그래서 밤비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리라.

 

山堂夜坐久  산속 집에 오래 앉아 있으려니

窓外雨聲急  창밖에 빗소리 급하구나

四壁悄無人  사방에 사람 하나 없어 쓸쓸하고

靑燈花欲滴  퍼런 불빛에 꽃잎이 방울처럼

 

                                .... 김시습(金時習), ‘비 내리는 밤에 쓰다(夜雨記事)’

 

요 며칠째 비가 온다. 밤에도 많이 온다. 죽죽 내리다가 때로는 강한 바람에 실려 유리창을 때리다가 마구 흔들기도 한다. 왜 내가 오는데 아는 척도 안 하느냐 하는 것 같다. “그래. 미안하다. 나는 원래 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데 익숙해져 있어서 문을 열고 너를 영접하지는 못하겠다. 네 오는 소리를 듣고 마음속으로 너를 환영하고 있으니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화내지는 말게나.” 이런 마음을 비가 알아줄까?

 

 

 

우리 집 거실에는 청우헌(聽雨軒)이라고 쓴 작은 편액이 걸려 있다. 북경에 특파원으로 있을 때 우리 집을 방문한 서예가 김태정(金兌庭) 선생이 방문을 기념해서 당호(堂號)로 써 주신 것을 북경에서 벽화를 연구하던 서용(徐勇) 현 동덕여대 교수가 나중에 각을 한 것이다. 글씨는 한자의 구성 원리인 상형(象形)과 지사(指事, 한자 육서-六書의 하나. 글자의 모양이 어떤 사물의 위치나 수량을 가리키는 것)를 써서 마치 비가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 그대로 느껴지는 멋진 작품이다.

 

軒(헌)자는 왼쪽의 車 자를 아래위로 두 번 써줌으로해서 집이 높다는 뜻이 풍겨진다. 비 오는 새벽, 짚앞에 파초도 없고 오로지 시멘트 숲만 있지만, 플라스틱 물받이 통속으로 쏟아지는 비 소리랑, 유리창을 때리는 소리랑, 에어콘 덮개에 떨어지는 빗물소리를 들으며 그 편액을 다시 한참 본다. 그래 이렇게 비를 듣는 것에 대해 옛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記(기)라는 형식으로 서술하는 것을 흉내 내어, 이름하여 청우헌기(聽雨軒記)로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