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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그리고 우리말

‘아래아’ 없는 한글은 얼빠진 한글

하늘 꼴이기도 한 이 ‘하늘 삼킬 •’를 살려야 한다
제6회 세계문자심포지아 클럽하우스 토론회 주제발표

[우리문화신문=한재준 교수]  먼저 이 아래-아 꼴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을, 짧게라도 잠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문자라는 대상을 하나의 조형으로 다루다 보니까,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된 것 같습니다. 한동안은 저도, 이 아래-아 꼴을, 사라진 자모나 없어진 어떤 발음 기호 정도로 대해왔지만, 지금은, 꼭 필요한 자모, 또한 중요한 요소라고 보고 있습니다. 없어져서는 안 될 알짜 상징 꼴입니다. 그래서 이 꼴의 가치와 역할을, 다시, 살려내 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발표 내용은 크게 세 갈래로 엮었습니다.

 

첫 번째, 하나가, 오늘의 발표에 대한 기본 태도와 배경입니다.

한글이라는 체계를, 문자를 넘어 의사소통 체계로 볼 것, 더 나아가 깨달음의 체계로 풀이할 것, 그리고 소리ㆍ꼴ㆍ뜻을, 하나의 이치로 이어내는 마치 음악의 악보처럼 대할 것, 그래서 누구나 예술로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할 것, 그리고 이런 태도를 가지게 한 근거와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번째는, 한글과 관련된 주변의 여러 이름, 특히 한글이라는 이름과 한글 자모 이름의 문제, 그리고, 모호성에 관한 생각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바로, 오늘의 주제인 아래-아, 이 이름의 문제와 이 꼴이 가진 본래의 쓰임과 역할, 이런 몇 가지의 생각과 해석입니다.

 

1. 그럼, 첫 번째 내용을 시작하겠습니다.

보통은 한글을 표음문자, 자질문자라고 말하고 있지만, 저는 이런 표현만으로는 한글의 특성이나 특질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글은 이미 ‘소리글자냐 뜻글자냐’라는, 이런 구분을 뛰어넘은 단계에 있습니다. 소리와 꼴과 뜻을 하나의 이치로 이어낸 체계입니다.

 

1400년대에 이도라는 작가가 세상에 없던 의사소통 체계를 이뤄냈다는 사실, 더구나 이 체계를 활용해서 정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는 점, 이런 내용을 더 깊이, 특별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세종 이도는 자신의 창작물인 훈민정음에서 사랑 정ㆍ마음 정을 강조했습니다. 훈민정음해례본 서문 넷째 줄에서 而終不得伸其情者, 多矣.(이종부득신기정자, 다의.)라고 했는데, 그동안 ‘뜻’이라고만 풀이해 왔던, 그 ‘신기정자’ 중의 그 ‘情(정)’자가 한자의 뜻 ‘의’자가 아니라, 뜻 ‘情(정)’, 마음 ‘정’자라는 사실에서도, 깊은 뜻을 찾아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훈민정음해례본 제자해에서는 소리ㆍ꼴ㆍ뜻만이 아니라, 세상의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理旣不二(이기불이)’ 그리고, ‘天地之道, 一陰陽五行而已’(천지지도는 일음양오행이이) 또한 《세종실록》에서도, “글자가 비록 간단하지만 요긴하고 전환이 무궁하다.(자수간요전환무궁 - 字雖簡要, 轉換無窮)’”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런 표현들에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런 몇몇 내용만으로도, 훈민정음은 이미 일상의 문자 체계를 뛰어넘은 남다른 체계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 깊은 속마음, 마음의 작용 너머로까지 표현이 가능한 소통 체계입니다. 그래서, 이런 훈민정음의 소통 체계를 더 잘 살려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한글은 주로 한국어 표기에 한정해서 쓰고 있지만, 이 마음 ‘정’을 비롯한 여러 값어치를 잘 살려 나가면, 더 새롭고 또 다른 더 많은 한글의 값어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을 넘어서 쓸모의 값어치까지 넓혀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2. 다음, 두 번째 내용입니다.

한글과 관련된 여러 이름의 모호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많은 사람이 한글을 훌륭한 문자체계라고 자랑은 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여러 가지 모호한 점, 모순점도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름의 모호성입니다. 한글이라는 이름이 모호하고, 한글 자모의 이름도 모호하고, 만든 이가 누구인지, 만든 사람의 이름도 모호합니다.

 

훈민정음 체계는 28 자모인데, 지금은 4 자모는 없어졌고, 이름은 한글입니다. 작품의 이름도 내용도 다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이 24개의 자모 체계를 마치 세종임금의 작품처럼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작가의 관점으로 보자면,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기본 존중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글 자모의 이름도 그렇습니다. ‘기윽’을 예로 들면, 세종 이도는 보기 글자로 임금 ‘군’을 들었습니다. ‘임금 군자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기역’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이 ‘기역’이라는 이름은, 《훈몽자회》라는 책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훈몽자회》가 어떤 책일까요? 어린이 한자 학습서입니다. 최세진이라는 학자가 1527년에 지은 책입니다.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기 위해서 부릴 ‘역(役)’자의 발음에서 이 이름을 따왔다는 것이지요. ‘윽’자 소리를 나타낼 한자가 없어서, 대신 ‘역’자를 썼다는 겁니다. 임금 ‘기윽’을, 부릴 ‘기역’으로, 상징성도 깊은 뜻도 모두 바꿔 버렸습니다.

 

‘한글’이라는 이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이름이 한편으로는, 말과 글과 글자의 개념을 뒤섞이게 했다고 봅니다. 누구는 한글이 한국어를 표기하는 글자라고 알고 있고, 또 어떤 이는, 한글을 우리 글이라고 주장합니다. 한글이라는 이름이 말도 되고, 글도 되고, 글자도 된다고 믿고 있는 것이지요.

 

영국말은 영문과 로마자와 영어로 구분할 수 있고, 중국말도 한문과 한자와 중국어로 구분할 수 있고, 일본말도 일문과 가나자와 일본어로 구분이 가능한데, 한국말은 한글로 쓴 글과 한국 글자와 한국어의 구분이 모호하고도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한글이라는 글자가 훌륭해서일까요?

아니면, 한글이라는 이름이 모호해서일까요?

 

3. 네, 그러면, 마지막 내용인, 세 번째, ‘아래-아’에 대한 내용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모든 문제가 이 꼴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래-아는 잘못된 이름입니다. 나쁜 이름이지요. 그런데 버려서는 안 될 자모를 잘못 버렸다고 봅니다. 이 꼴의 본래 가치와 그에 어울리는 이름을 다시 살려내야 합니다.

 

《훈민정음해례본》에서는, 이 꼴을 하늘을 본뜬 꼴이라고 했고, 이 꼴을 통해서 사람의 값어치와 역할까지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귀한 뜻이 있는 자모의 이름을 누가, 왜, ’아래-아’라고 정했을까요? 그리고, 왜 사라진 자모, 없어진 자모, 쓸모없는 자모라고 단정하고 있을까요?

 

훈민정음해례본 제자해를 보겠습니다. 1446년 9월 상한의 기록입니다. 아래-아를 어떻게 설명했을까요? 주요 문장 세 곳만 제가 골라봤습니다. 아래-아라는 이름 대신, •(하늘아)로 바꿔서 읽겠습니다.

 

1. 첫 번째 문장입니다.

‘• (하늘아)는 혀가 움츠러들고 소리는 깊으니, 하늘이 자(子)시에서 열리는 것과 같다. 모양이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다.’

 

2. 다음은 두 번째 문장입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에게서 본뜬 것을 취하니, 삼재의 이치가 갖춰졌다. 그러므로 천지인 삼재가 만물의 우선이 되고 하늘이 천지인 삼재의 시작이 되는 것과 같이 • , ㅡ , ㅣ(하늘 꼴, 땅 꼴, 사람 꼴) 이 석 자가 여덟 소리의 우두머리가 되고, 또한 •(하늘아) 자가 석 자의 으뜸이 됨과 같다.’

 

3. 다음은, 마지막, 세 번째 문장입니다.

‘대개 글자 소리의 핵심은 중성에 있으니, 초성과 종성과 합하여 음절을 이룬다. 또한 천지가 만물을 낳고 이룩해도 그것이 쓸모 있게 돕는 것은 반드시 사람에게 힘입음과 같다.’

 

이 세 문장만으로도, 이 꼴은 아래가 아니라, 위, 하늘을 본떠서 상징한 꼴이고, 중성 가운데 으뜸 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중성을 곧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중성 없이는 글자를 이룰 수 없다. 모든 일이 사람 하기에 달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민본 사상과, 통하는 내용입니다.

 

다음은 《세종실록》의 훈민정음에 대한 기사입니다. 1446년 9월 29일, 그런데 실록에서는 훈민정음의 제자해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마도 생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하늘 •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늘 •를 크게 그렸고, 배열, 배치한 자리로는, 모음자 맨 앞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보기 글자를 삼킬 ‘呑(탄)’ 자로 들었습니다. ‘삼킬 탄 자의 가운뎃소리와 같다.’ 이 글이 유일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 삼킬 탄자, 한자 탄(呑), 이 꼴이 특별합니다. 하늘 천 자 아래에 입구 자로 보입니다. ‘하늘을 삼킨 꼴’, 또는, ‘하늘로 이르는 꼴’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훈민정음해례본》 세종 서문을 《조선왕조실록》의 내용과 비교하면서 보겠습니다. 세종 서문에서는 임금 ㄱ(기윽)을, 첫 장, 왼쪽, 맨 꼭대기에 올렸습니다. 첫 글자이니, 당연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온통 한자투성이 속에서 오직 하나의 다른 꼴입니다. 다음 장으로 넘기기 바로 직전의 자리입니다. 저는 이런 연출과 형식을 또 하나의 상징 표현이고 의미라고 봅니다. 훈민정음 내용 전체, 구석구석에, 이런 형식과 표현이 넘쳐납니다.

 

하늘아는 어떻게 설명했을까요?

•(하늘아)는 자음자의 설명을 모두 마친, 바로, 다음 자리에 두었습니다. 자음자의 마지막으로 배치한 세모꼴(반시옷, 반치음 꼴)이라고도 하지요. 바로 그 옆자리입니다. 이어서 ㅡ, ㅣ, ㅗ, ㅏ, ㅜ, ㅓ, ㅛ,ㅑ, ㅠ, ㅕ, 이렇게 하늘ㆍ땅ㆍ사람이 어울리는 이치를 천ㆍ지ㆍ인이 펼쳐가는 세상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배열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이름 기역과 아래아, 이 두 개의 자모를 세종 이도의 표현을 따라서 다시 풀어본다면, ‘임금 기윽’과 ‘하늘 삼킬 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태도와 관점으로 훈민정음의 내용을 다시 새기고 있습니다. 예시 문자만이 아니라, 글자와 꼴, 배열과 배치를 포함한 전체적인 맥락과 시각적인 구성에도 깊은 뜻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대표 사례로, 아래-아를 강조한 것이고, 임금 ㄱ을 보탠 것입니다.

 

그러면, ‘아래-아’ 주제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세종 이도가 ‘삼킬 탄’ 자 가운뎃소리, ‘하늘 삼킬 •’로 표현한 이 꼴은 하늘도 되지만, 하늘 같은 백성, 하늘과 이어진 백성, 요즘 말로 하자면, ‘하늘이 내린 시민’을 상징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이 하늘 꼴을, 혁명의 상징이라고 해석합니다. 구태하고 나쁜 제도, 부패한 권력을 밀어내자는 혁명의 꼴로 봅니다. 깨달음의 혁명, 훈민정음의 핵심 철학입니다.

 

 

 

그러니, 하늘 꼴이기도 한 이 ‘삼킬 •’를 버리는 일은, 훈민정음을 얼빠진 한글로 낮춰버리는 일이고, 훈민정음의 창제 철학, 기본 원리를 버리는 일입니다. 깨달음의 혁명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말을 적는, 글자 한글만이 아니라, 예술 한글, 철학 한글, 과학 한글... 이렇게 더 많은 여러 값어치를 함께 살려내야 합니다. 그 중심에 이 하늘 꼴이 있습니다.

 

하나하나 살려내고, 잇고 잇고 잇고 이어서, 끝까지 ‘大東千古開朦朧(대동천고개몽롱)’ 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이게 해야 합니다.

 

 

제6회 세계문자심포지아 클럽하우스 토론회

2021년 8월 15일 밤 8시

 

“문자의 생성과 소멸”

모더레이터: 이경숙 (고려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기조인사: 임옥상 (사)세계문자연구소 대표

축하인사: 이어령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연사: 한재준(서울여대 교수) ‹아래아› 없는 한글은 얼빠진 한글이다

구연상(숙명여대교수) 문자는 가장 뛰어난 문화재

초대인사: 임옥상/강병인/구연상/김원명/김종구/백미숙/안상수/안재홍/이건욱/이시재/이창현/한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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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10810/108481989/1

http://www.policyfund.kr/news/articleView.html?idxno=4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