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조선시대 장애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만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소》, 김서윤, 한국고전번역원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그만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소!”

내가 장애인이라 중요한 업무에서 차별을 받을 때, 누군가 이렇게 외쳐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장애를 가졌다 하여 무조건 업무에서 배제하지 않고, 능력을 먼저 보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이는 조선 건국 초기의 명재상 허조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그는 어깨와 등이 많이 굽고 키도 작아 ‘말라빠진 매’라는 뜻의 ‘수응(瘦鷹)’ 재상으로 불렸다. 하지만 그의 강직한 성품과 훌륭한 능력을 높이 산 태종은 아들 세종에게 그를 ‘주석지신(柱石之臣)’, 곧 주춧돌 같은 신하라 소개했다.

 

예나 지금이나,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삶은 쉽지 않다.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몸, 예전보다는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차가운 사람들의 시선, 드러내지만 않을 뿐 언제 어디서나 느껴지는 은근한 차별 … 모두가 장애인을 차별하면 안 된다고 교육을 받는 요즘에도 상황이 그러한데, 하물며 몇백 년 전 조선시대에는 오죽했겠는가.

 

그러나 뜻밖에 조선은 장애인을 그다지 차별하지 않았다. 능력이 있으면 높은 관직까지 올라갈 수 있었고,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궁중 악공으로 직업을 가지고 능력껏 살아갈 수 있었다. 물론 조선에서도 멸시와 하대는 있었고, 맹인이나 다리가 불편한 사람, 등이 굽은 사람의 인생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곱절로 힘들었을 테지만 말이다.

 

이 책, 《그만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소》는 장애를 이겨내고 훌륭하게 삶을 개척한 조선시대 여섯 인물의 삶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들의 삶을 보노라면 본인이 꿈을 놓지 않고 계속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런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등이 굽어 ‘굽은 매’라는 뜻의 ‘수응’ 재상으로 불렸던 명재상 허조,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했던 악공 김복산, 한쪽 팔을 거의 쓰지 못했음에도 5만원권 지폐 뒷면의 ‘풍죽도’를 빼어나게 그려낸 화가 이정, 다리가 하나뿐이었던 ‘일각(一脚) 정승’ 윤지완, 귀가 들리지 않았던 대제학 이덕수, 쇠를 다루는 능력이 신묘할 정도로 빼어났던 대장장이 신탄재의 삶이 아름다우면서도 잔잔하게 펼쳐진다.

 

(p.13-14)

”하지만 전하, 사람을 관리하는 이조의 일은 매우 힘든 업무입니다. 밤을 새우며 일할 때도 있습니다. 허조는 몸이 건강하지 않아 일을 잘 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줄임) 하지만 태종 임금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가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그동안 해내지 못한 일이 있었소? 그만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소.”

“하지만 고집이 세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인물입니다. 다른 사람을 알아보시는 것이 어떨지요?”

“지금은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는 허조의 고집이 필요하오.”

태종 임금은 이승상의 말을 듣지 않고 허조를 이조 정랑에 임명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임금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신체적 조건을 따지지 않고, 능력과 성품을 보고 쓴 태종의 판단은 정확했다. 과연 허조는 조선 개국 초기의 주석지신으로 조선 왕조를 반석 위에 올렸다. 그가 이조판서로 내렸던 인사 결정들은 세종조 수많은 명신들이 활약하는 기반이 되었고, 워낙 기강이 엄정했던 덕분에 조선은 순조롭게 출발할 수 있었다.

 

팔을 다친 화가 이정은 허조를 무척 아꼈던 임금, 세종의 현손이었다. 현손은 손자의 손자로, 그는 원래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특히 대나무를 잘 그렸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한쪽 팔을 거의 베이면서 그토록 좋아하던 그림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주저앉을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좌절을 딛고 일어서 다시 붓을 잡았다. 어떻게든 다시 팔을 쓰려고 애쓴 덕에 붓을 놀릴 만큼은 회복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불세출의 걸작, 5만원권 뒷면에 있는 ‘풍죽도’가 탄생했다.

 

(p.63)

바람 부는 날의 대나무 그림에는, 거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네 그루의 대나무가 휘몰아치는 광풍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희미하게 뒤쪽에 있는 세 그루의 대나무는 몰아치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살짝 쓰러져 있는데, 선명한 맨 앞쪽의 대나무는 줄기가 바람을 따라 휘어지며 잎사귀만 살짝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뻣뻣하게 서서 그대로 바람을 맞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고난과 시련을 이겨 낸 이정의 삶을 표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대로 바람을 맞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는 삶. 이것이 책에 실린 이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었고, 그에 화답하듯 좋은 사람들이 이들의 노력을 알아봐 주었다.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이들의 능력을 귀히 여겨 중용해준 임금, 선비, 벗들 또한 참으로 귀한 사람들이었다.

 

조선 시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보면 좋겠다. 결론을 말하면, 생각보다 잘 살았다! 장애와 편견에 맞서,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노력하며, 바람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