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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우리 소중한 문화유산

《빼앗긴 문화재에도 봄은 오는가》, 서해경 지음, 풀빛미디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첫 구절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봄은 왔다. 비록 35년이나 걸렸지만, 빼앗긴 들은 주인을 찾아 기름진 옥토가 됐다. 특히 우리 문화에 푹 빠진 한류 팬들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할 만큼 문화 강국이 됐다.

 

그러나 봄이 결코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암울한 시기가 있었다. 일본의 위세가 맹위를 떨칠 때, 우리 문화의 정수이자 보배라 할 만한 문화유산도 갖은 수모를 당했다. 이 책, 《빼앗긴 문화재에도 봄은 오는가》에 실린 열 가지 유산이 특히 그랬다.

 

 

이 책은 다양한 경로로 나라 밖으로 빠져나간 문화재를 다루며 우리 역사를 되짚어보고,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 나라의 문화재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한다는 것을 생생히 일깨워준다. 만약 식민지 시절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문화재가 오롯이 우리 곁에 있었을 텐데, 절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책에 실린 가야 문화재, 경복궁, 경천사 십층석탑, 고려청자, 몽유도원도, 북관대첩비, 의궤, 유점사 53불, 인쇄술, 수월관음도가 모두 보배 같은 유산이지만, 특히 경천사 십층석탑에 일어났던 일은 가히 충격적이다. 당시 개성의 ‘경천사’라는 절에 있던 경천사 십층석탑은 병을 고치는 신기한 효험이 있는 탑으로 알려져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P.43)

“오! 정말 아름다운 탑이잖아.”

일본의 관리 다나카 미스야키는 《한국건축조사보고》라는 책을 보다, 두 눈을 번쩍 떴어요. 대리석을 깎아 만들었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우아하고 섬세한 경천사 십층석탑을 보고 반한 거예요.

“반드시 이 탑을 가지고야 말 테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 탑을 차지할 수 있을까?”

미스탸키는 경천사 십층석탑을 차지하려고 계략을 꾸몄어요.

 

미스야키는 탑을 차지하기 위해 갖은 술수를 부리다, 급기야 조선에 있는 일본인 헌병들을 이용해 탑을 강제로 훔치는 어이없는 절도 행각을 저지른다. 미스야키의 명령을 받은 일본인 헌병들은 총과 칼로 무장하고 경천사가 있는 개성 근처의 부소산으로 몰려갔다. 서둘러 석탑을 분해하기 시작한 그들은 순식간에 석탑을 조각조각 나누어 버렸다.

 

그때 일본인들이 경천사 십층석탑을 훔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 사람들과 군수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사람들은 남의 나라의 귀한 탑을 함부로 해체하다니 도대체 무슨 짓이냐고 거칠게 항의했지만, 총칼로 무장한 일본 헌병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탑을 더 마구잡이로 해체해 일본으로 가지고 가버렸다.

 

 

이렇게 속절없이 일본에 ‘납치당한’ 경천사 십층석탑은 그 뒤로 어떻게 되었을까? 미스야키의 집 안마당에 세워져 그의 보물이 되었을까? 결국 그 탑은 분해되어 포장된 그대로 일본의 한 박물관에 방치됐다. 너무나도 야만적이고 무식한 방법으로 총칼을 앞세워 약탈해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국내에 있던 외국인 기자 베델과 선교사 헐버트가 앞장서서 일본의 잘못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일본 통감부는 베델이 편집을 맡고 있던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 등 신문에 기사가 실리지 못하게 막으려 했지만, 외국인 신분으로 통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베델은 1907년 3월 12일 치 <대한매일신보>에 이 사실을 알리고, 연이어 <매일신문>에도 이 소식을 실었다.

 

베델 뿐만 아니라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도 일본에서 나오는 <재팬 크로니클>과 미국의 <뉴욕 포스트>에 이 기사를 쓰자, 일본은 더는 경천사 십층석탑을 야만적으로 약탈해갔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미스야키는 거센 비난 여론에도 못 들은 척하며 11년이나 버티다가, 마침내 일본 정부까지 나서서 탑을 조선에 돌려주라고 하자 마지못해 탑을 조선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이미 온갖 풍상을 겪은 경천사 십층석탑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당시 조선은 이 석탑을 수리해 다시 세울 기술이 없었고, 탑은 다시 경복궁 안에 방치되다가 1995년에야 완벽하게 수리를 마쳤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국립중앙박물관 1층에서 보는 경천사 십층석탑의 내력이다. 늠름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는 그 석탑이 실은 거의 ‘죽다 살아난’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면 석탑을 보는 눈이 한층 애틋해진다.

 

경천사 십층석탑이 돌아온 것처럼, 빼앗긴 문화재에도 봄은 왔다. 그러나 절반의 봄이다. 한번 빼앗긴 문화재는 쉽사리 돌아오지 않고, 돌아온다 한들 뺏기기 전의 그 온전한 모습이기는 더욱 어렵다. 개성을 굽어보며 서 있던 탑이 강제로 분해되어 일본으로 넘어가는 모습, 상상만으로도 너무 수치스러운 장면이지 않은가.

 

그런 부끄러운 역사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라는 힘을 길러야 하고 국민은 의식을 길러야 한다. 무력으로 빼앗긴 문화유산도 많지만, 우리가 가치를 알아보지 못해 헐값에 외국으로 넘어간 문화유산도 너무 많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문화유산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참 고마운 책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