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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한양에서 도망 나와 의주에 간 선조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83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임금이 용천을 떠나 의주에 도착하여 목사(牧使)의 관청에 좌정하였다. 이때 고을 사람들이 평양이 포위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흉흉하여 두려워하더니 명나라 병사들이 강을 건너 성안으로 들어와 약탈하자 백성들이 모두 산골짜기로 피해 들어가 성안이 텅 비었다. 목사 황진(黃璡)과 판관 권탁(權晫) 등이 벼슬아치들과 관아의 여종 두어 명을 직접 거느리고서 임금의 수라(水剌)를 장만하였으며 호종한 관원들은 성안의 빈집에 분산 거처하였다. 꼴과 땔나무가 계속 조달되지 아니하여 비록 행재소라고는 하지만 적막하기가 빈 성(城)과 같았다.”

 

이는 선조 25년(1592년) 한양이 함락되기 사흘 전인 4월 30일 새벽 백성 몰래 궁궐 뒷문을 통해 한양을 나와 22일 뒤 의주에 도착했을 때의 기록입니다. 문제는 명나라가 조선을 구원해줄 것으로 생각한 선조의 뜻과는 달리 명나라 병사들은 성안으로 들어와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모두 산골짜기로 피해 들어가 성안이 텅 빌 수밖에 없었지요.

 

 

김영진이 교수가 쓴 책 《임진왜란(성균관대학교출판부)》에 보면 조선 중기의 문신ㆍ정치인이자 성리학자인 윤두수는 선조에게 일갈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애초 요동으로 간다는 계책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논의를 들은 뒤부터 백성들은 경악했으나 어디에 호소할 곳이 없었습니다. 백성들의 걱정은 왜란 초기보다 더 심하며, 당황스럽고 불안합니다. (가운데 줄임) 전하께서는 많은 백성을 어디에 넘겨주고 필부(匹夫)가 가는 길로 강행하십니까?” 나라의 지도자는 필부가 가는 길과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고 윤두수는 외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