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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일본 고전에 날개를 단 '나카가와 세이라'전

인천관동갤러리에서 8월 20일까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번에 전시한 그림은 모두 65점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준비한 것이지요. 전시를 염두에 두고 인천관동갤러리에 사전 답사 겸 지난여름에 왔었습니다. 크지 않고 아담한 전시 공간을 둘러보면서 갤러리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그림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그린 그림이 이번 작품들입니다. 네 벽면에 ‘사계(四季)’와 어울리는 그림을 걸고 제목을 ‘사계(四季)’라 붙인 것도 1년 전의 구상입니다.”

 

어제(16일) 낮 3시에 인천관동갤러리(관장 도다 이쿠코)에서 만난 작가 나카가와 세이라(中河 星良) 씨는 시원한 물빛 유카타 차림으로 전시장 안내를 하면서 이렇게 운을 뗐다. 전시 구성을 보면 1층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이미지를 살린 소형 작품 48점(수작업) 이 전시 되고 있으며 며  2층에는 모두 17점의 중형 작품 (컴퓨터그래픽 작업)이 전시되고 있다. 이 가운데 고전을 주제로 한 작품은 모두 18점이다. 

 

 

 

“일본의 고대 문학작품 속에는 유달리 사계(四季) 의식이 진하게 배어있습니다. <만엽집(万葉集)>의 사계가 그러하고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 <침초자(枕草子)>, <원씨물어(源氏物語)> 등

1,000여년 전의 작품을 읽다 보면 사계(四季)에 대한 그 어떤 ‘느낌’이 오는데 나는 종종 그러한 느낌을 ‘참 좋다’라는 말로 중얼거리곤 합니다. 날마다 바쁜 일상을 살다보면 사계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이번에 전시한 65점 작품 가운데 사계(四季)는 모두 48점이며, 작품 하나하나마다 고전 속에 살던 사람들의 사계를 떠 올리며 그렸습니다. 27살, 저의 사계가 수없이 반복되다 보면 언젠가는 제가 꿈꾸는 우주의 어느 도달점에 도달하겠죠? 그때까지 계속 그려나갈 생각입니다.”

 

올해 스물일곱 살의 청년 작가 나카가와 세이라 씨의 포부가 당당하다 못해 당차다. 점차 고전(古典)을 전공하는 젊은이들이 줄어들어 한국의 경우에 '고전(古典) 공부는 고전(苦戰)'이라는 자기 비하의 소리가 나온 지 오래인데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에서 학부를 거쳐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일관되게 고전(古典) 작품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남달라 보였다. 거기에 고전을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 속에 녹여내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주목했다. 기자 역시 일본 고전문학자로서 나카가와 세이라 작가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리스로마 신화를 좋아했어요.  어린시절 할머니를 통해 일본의 고전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이 제가 대학에서 전공을 고민하지 않고 고전을 선택한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고전 공부를 하면서 저는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림의 처음 데뷔는 만화였습니다. 데뷔작에는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습니다.”

 

나카가와 세이라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것은 “고전은 어렵다, 고전은 고루하다, 고전은 현대와 맞지 않는다, 고전은 재미없다...”라는 일반적인 상식을 불식시켜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작가에게 고전이란 ‘과거 한순간에 멈추어 있는 박제된 그 무엇’이 아니다.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현대인들에게 ‘종종 고전으로 돌아가 쉬라’는 메시지가 읽힌다.

 

작가의 나이 올해 27살, 농익은 화력(畵力)의 작가가 아니라 더러는 그의 작품에서 풋사과 같은 날것 그대로의 인상을 받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탄탄한 고전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가 주는 즐거움’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나카가와 세이라 씨는 만화가입니까? 화가입니까?”라고 묻는 기자의 말에 그녀는 답한다. “저의 작품은 만화가 그 뿌리를 이룹니다. 하지만 품격있는 고전 작품을 단순한 ‘흥미’나 ‘재미’ 위주로 그리는 일은 지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업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는 화풍(畫風)에 따라 만화가 또는 화가라는 이름이 주어지지만, 본질은 하나라는 생각입니다. 이야기가 있는 만화 작업과 함께 이른바 화가(畫家)의 그림도 병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나카가와 세이라 씨는 계절별로 모아 놓은 그림들을 일일이 설명하면서 일본의 고전과 문화, 민속, 풍습 등까지 아우르고 있는 작품들을 기자에게 친절히 소개해주었다. “헤이안시대 사람들은 특히 향기(香氣)에 민감했던 것 같습니다. 그 향기를 맡으며 봄을 맞이했지요”라며 백매화(白梅花)꽃 그림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작품 가운데 벚꽃과 매화 같은 꽃들이 많다. 달빛이 교교한 가운데 벚꽃 속에 우뚝 솟은 성(城)의 희미한 모습에서, 모내기를 마친 들판 너머 멀리 후지산의 모습에서도 일본의 정서가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정초에 처음으로 물을 떠 마시는 와카미즈(若水) 그림은 흡사 한국의 정초 ‘용알뜨기(정월 첫 용날이나 대보름날 첫닭이 울 때 부녀자들이 앞다투어 정화수를 길어 오던 세시풍속으로 집안에 복을 들인다는 뜻)를 연상케 한다. 샘이나 우물이 없어지고 수도꼭지 문화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나카가와 세이라의 그림에서는 그 어떤 ‘아련한 정서’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나카가와 세이라는 1996년생으로 일본 시코쿠 도쿠시마현 바닷가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대학생이 되면서 도쿄에서 생활하기 시작했고, 대학원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일본 고전문학을 심화시켜갔다. 2015년 대학 2학년 때 KADOKAWA출판사의 ‘코믹그랑프리’에 입선하여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연재하는 잡지 ‘하루타’에서 만화가로 등단했고, 그 뒤 5년 동안 ‘하루타’에 작품을 연재해왔다.

 

이번 작품전 ‘사계(四季)’는 인천관동갤러리에서 8월 20일(일)까지 전시예정이며 이 기간에는 나카가와 세이라 작가를 직접 만날 수있다.

 

   

 

【나카가와 세이라 개인전 "四季(사계)"】

8월 11일(금) ~ 8월 20일(일) 10:00~18:00 (기간 중 매일 개관)

인천관동갤러리 (인천시 중구 신포로31번길38) 전화 032-766-86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