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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말꽃’과 ‘삶꽃’

[우리말은 서럽다 24]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말꽃’은 ‘문학’을 뜻하는 토박이말이다. 토박이말이지만 예로부터 써 오던 것이 아니라 요즘 새로 나타난 말이다. ‘문학(文學)’은 본디 ‘글의 학문’이라는 뜻으로 공자님이 처음 썼다고 하는 중국말인데, 우리는 지금 그러한 뜻으로 ‘문학’이란 낱말을 쓰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쓰는 ‘문학’은 놀이(희곡), 노래(시), 이야기(소설) 같은 것을 싸잡아 서양 사람들이 ‘리터러처(literature)’라고 하는 그것이다. 이것을 일본 사람들이 ‘문학’이라 뒤쳐 쓰니까 우리가 그대로 가져와서 쓰는 것이다.

 

그러나 놀이, 노래, 이야기는 이른바 ‘말의 예술’이므로, 중국말이었든 일본말이었든 글의 학문을 뜻하는 ‘문학’이라는 말로는 그것들을 마땅하게 담아내지 못한다. 게다가 말의 예술인 놀이, 노래, 이야기는 입말, 글말, 전자말을 두루 싸잡아야 하는데, 글말만을 뜻하는 ‘문학’이라 부르면 입말과 전자말로 즐기는 예술은 싸잡을 수가 없다. 그렇게 중국 한자말 ‘문학’과 우리가 싸잡아 담으려는 뜻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데, 언제까지 우리가 ‘문학’이라는 남의 말을 빌려다 써야 하는가?

 

이런 물음을 가슴에 품고 마땅한 낱말을 오래 찾다가 마침내 얻은 것이 ‘말꽃’이다. ‘말꽃’은 입말, 글말, 전자말을 모두 싸잡은 ‘말의 예술’이라는 뜻을 잘 드러낸다. ‘말꽃’은 새로 태어나 아직은 낯설지만, 이미 ‘이야기꽃’이나 ‘웃음꽃’같이 정다운 말들이 쓰이고 있어서 외롭지 않다. 그리고 ‘말꽃’은 말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꽃 또는 말로써 피워 낸 아름다운 꽃이라는 뜻으로, ‘말의 예술’이라는 본디 뜻을 고스란히 담아내기에 안성맞춤인 낱말이다.

 

 

‘삶꽃’은 이른바 ‘예술’이라는 낱말을 버리고 바꾸어 쓸 만한 토박이말로 새로 만들어 본 것이다. ‘문학’을 버리고 ‘말꽃’으로 바꾸어 쓰니까 ‘예술’이 저절로 목에서 걸렸다. ‘예술(藝術)’은 한자말인데, 두 한자를 아무리 뜯어보아도 우리가 뜻으로 담아서 주고받는 바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만들고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그게 무슨 뜻을 지닌 낱말인지 알지 못하고 그저 버릇처럼 쓰고 있다.

 

‘예술’이라는 낱말에 담아서 주고받는 뜻은 ‘온갖 사람이 갖가지 삶에서 겪고 맛보고 느끼는 바를 갖가지 길로 아름답게 드러내는 노릇’이라 할 것이다. 춤(무용)은 몸으로, 말꽃(문학)은 말로, 소리(음악)는 목소리나 악기로, 그림(미술)은 물감과 붓으로 삶에서 겪고 맛본 느낌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이런 뜻을 간추려 싸잡으면 ‘삶으로 피워 낸 꽃’이라 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삶의 꽃’ 곧 ‘삶꽃’으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말꽃’이든 ‘삶꽃’이든 낱말이란 한두 사람이 마땅하다고 만들어 내면 곧장 살아나 두루 쓰이는 것이 아니다. 낱말의 죽살이는 오직 부려 쓰는 사람들의 마음에 달렸다. 많은 사람이 쓸 만하다는 마음을 갖고 즐겨 쓰면 살아남는 것이고, 많은 사람이 쓸모없다는 마음으로 쓰지 않으면 쓸쓸히 죽고 만다.

 

알고 보면 이렇게 하여 수많은 낱말이 새로 태어나기도 하고 죽어 사라지기도 한다. ‘말꽃’과 ‘삶꽃’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 살아남을 수 있으면, 그만큼 우리말의 터전은 우리만의 빛깔을 뽐내며 탐스러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