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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특별하니까요

무심거사의 중편소설 <열번 찍어도> 11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아내와의 냉전은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아가씨와 전화한 이후 김 교수는 왠지 즐거워졌다.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되었다. 기다리던 금요일 오후가 되니 김 교수는 아가씨를 만날 생각에 사로잡혀 가벼운 흥분 상태가 되었다. 호텔에서 여자를 만난다는 것은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이후 처음인 것이다. 젊은 아가씨였던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이란 지금부터 20년 전 까마득한 과거 일이다. 그때 청년이었던 김 교수는 가슴이 뛰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제는 아내가 된 아가씨와 함께 다방에 가고 음악 감상실에 가고 고궁에도 갔었다.

 

아아, 인생은 무상하구나. 무심한 세월은 흐르고 또 흘러갔다. 그렇게도 곱던 아가씨의 모습은 간 곳이 없다. 아내의 눈가에는 이제 주름살이 생겼다. 내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아가씨는 중년의 아줌마로 변하였다. 당신만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던 아가씨는 20년이 지나자, 변하였다. 이제는 고3 아들의 수능시험 성적 1점이 직장 생활에 시달리는 남편보다 더욱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는 아줌마가 되었다. 냉전 중인 아내는 오늘 자기가 집에 늦게 들어가더라도 아무 말도 안 할 것이 뻔하다. 언제부터인지 남편은 아내의 관심사 1순위에서 밀려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잠실까지 가려면 저녁 4시 반에는 나가야 하는데, 4시쯤 같은 학과의 A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저녁에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서울에서 자기가 술 한 잔 사겠다는 제안이었다. 김 교수는 고맙지만, 선약 때문에 다음에 만나자고 가볍게 거절하였다. 당연한 일이지, 아가씨와의 일생일대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5분 뒤에 박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말인즉, A 교수가 자기에게 전화해서 서울에서 술 한잔을 하자는데 웬만하면 같이 가자는 것이다. 선약이 있다고 말하자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차마 미스 최라고 밝히지는 못하고 친구와 저녁을 먹는 일이라고 둘러대자, 몇 시에 끝나느냐고 다시 묻는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자기들도 저녁을 간단히 먹고 보스에 가려고 하는데, 조금 늦더라도 보스로 오라는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일이 묘하게 풀리네. “님도 보고 뽕도 딴다”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로구나. 미스 최도 만나고 술도 마실 수 있는데, 술값은 다른 사람이 낸다니 말이다. 김 교수는 8시까지 보스로 가겠다고 약속했다.

 

교통이 막히는 바람에 김 교수는 30분이나 늦게 뉴스타 관광호텔에 도착했다. 지도를 보고서 호텔의 위치를 파악하여 판교-구리 고속도로까지는 빨리 왔다. 그런데 송파나들목으로 빠져나오니 그만 길이 막혀버렸다. 뉴스타 호텔은 석촌 호수의 남쪽 연안에 붙어 있었다. 뉴스타 호텔은 별로 크지 않았고, 무궁화 4개가 표시된 그저 그런 호텔이었다. 주차장에 들어가 프라이드 차 열쇠를 안내원에게 맡겼다. 김 교수는 약간은 쑥스럽고 약간은 불안한 기분으로 호텔로 들어섰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떻게 하나? 미스 최가 기다리다가 혹시 가지나 않았을까? 커피숍은 2층에 있었다.

 

미스 최는 제일 안쪽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어?”라고 물으면서 김 교수는 맞은편에 앉았다. 미스 최는 코트를 입었으며 화장을 진하게 하고 있었다. 대낮에 맨정신에 다시 보니, 미스 최는 얼굴이 작고 동글동글하며 전체적으로 귀여운 느낌을 주는 아가씨였다. 처음 만난 날 나이가 스물넷이라고 해서 하루는 24시간 어쩌고저쩌고했는데, 그보다는 나이가 더 될 것 같았다. 아마 처음 말한 대로 스물일곱 정도는 될 것이다.

 

“오랜만이야, 미스 최. 만나서 반가워.”

“네, 저도 반가워요, 오빠.”

“그런데, 우리 뭐 좀 먹어야지.”

 

김 교수는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호칭을 썼다. 커피숍에서는 여러 종류의 음료 말고도 가벼운 식사를 주문할 수 있었다.

“미스 최 뭐 좋아하나? 예쁜 아가씨를 만났는데, 오늘은 내가 저녁을 사지.”

미스 최는 메뉴판을 들여다보더니 피자를 시키자고 했다.

 

피자를 먹으면서 두 사람은 《아리랑》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었다. 다른 책과 달리 《아리랑》이 재미있는 것은 걸쭉하고 상스러운 전라도 쌍소리가 수시로 튀어나온다는 점이다. 《아리랑》은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되기 이전의 이야기이다. 대하소설 《아리랑》에서는 쌍소리를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가난한 민초들의 순박한 삶이 모질고도 끈질기게 이어진다. 쌍소리는 어느 지방이나 다 있지만, 전라도 쌍소리가 제일 심하지 않을까? 김 교수는 광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는데, 모처럼 고향에 가면 아직도 어렸을 때 듣던 그 ‘다정했던 쌍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전라도 사람들은 그렇게 쌍소리를 잘할까? 사실 김 교수도 그 점이 매우 궁금했었는데, 조정래의 소설을 읽다가 해답을 발견했다. 광복 뒤 이야기인 대하소설 《태백산맥》 어딘가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타향 출신인 국군 장교의 질문에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여기 사람들이 쌍소리를 잘하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쌀이 많이 생산되는 평야에 사는 백성들이 오랫동안 관으로부터 수탈을 당했기 때문이다. 기껏 힘들여 쌀을 생산하면 관에서 이런저런 명목으로 뺏어가고 정작 백성들은 굶주리게 된다. 그러니까 억울하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쌍소리까지 못 하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겠는가?” 현대식으로 해석하면 전라도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 삶을 살아왔으며 쌍소리란 그러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해석이다.

 

김 교수가 피자를 먹고 있는 미스 최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미스 최. 자네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나?”

“특별히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오빠. 가끔 은행에 갔을 때 기다리면서 월간 잡지를 들여다보는 것이 전부지요.”

“《아리랑》은 어디에서 샀어?”

“어느 날 오빠가 생각나서 동네 책방에 가서 샀지요.”

“왜 내 생각이 났을까?”

“오빠는 특별하니까요.”

 

 

“남자는 다 똑같지, 뭐가 특별해? 나도 알고 보면 엉큼한 놈이다.”

“아니에요. 오빠는 다른 손님과는 좀 다른 데가 있어요.”

“뭔데?”

“글쎄요. 저희는 많은 손님을 만나니까 뭔가 감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구체적으로 뭐?”

“그러니까... 오빠는 제 가슴을 만지지 않았잖아요. 그저 손만 잡고 있었지.”

“그거야 모든 남자가 술집에 와서 아가씨 젖가슴을 만지는 것은 아니겠지.”

“또 하나는... 오빠는 내가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명함을 준 것도 다른 손님과 달랐어요.”

“다른 손님은 어떻게 하는데?”

“대부분 명함은 주지 않고 삐삐나 핸드폰 번호를 적어 주지요.”

“그거야, 내가 삐삐도 없고 핸드폰도 없으니까 그랬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