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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그리고 우리말

독도와 함께 대마도도 우리땅이었다

“독도”라는 이름의 말밑과 독도가 우리 것이라는 증거들

[그린경제 반재원 소장]  요즘도 여전히 일본은 독도를 자니네 땅이라고 우긴다. 원래 독도독섬이었다. ‘독섬돌섬이란 뜻이다. ‘독새미 들독샘이 있는 들이라는 말이며 독샘돌샘의 옛말이다. 따라서 의 옛말이 인데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홀로 독() 섬 도()로 바뀌어 독도가 된 것이다. ‘은 일본 발음으로 도꾸’ ‘다께가 되었고, ‘서미’ ‘시마로 변하여 독도를 다께시마(竹島)라 하고 있으니 이것은 바로 우리말 독도에 다름 아니다. 

   
▲ 독도, 한국화가 강장원

또 그 이전에는 일본이 독도를 마쓰시마(松島)라고 하였는데 송도(松島)라는 이름은 홀로 외로이 떨어져 있어 홀섬(孤島)에서 비롯한 우리말이다. 그것이 구개음화 현상에 의하여 으로 변하여 로 변하여 솔섬이 되었는데 이것이 일본이 마쓰시마(松島)로 부르게 된 까닭이다. 따라서 말밑을 보더라도 독도가 바로 우리 땅이라는 반증이 되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소래포구폭이 좁은 포구라는 뜻이다. ‘소래에서 왔으며 이 경우는 좁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바지가랭이나 옷소매가 좁은 것을 소매가 솔다라고 표현한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3,000여종의 지도에는 독도는 물론 대마도까지 우리 땅으로 나와 있음을 볼 수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지리학자 하야시 시헤이가 1700년대 말에 제작한 삼국통람여지로 정전도에도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으로 되어 있으며 1700년대 말과 1878년에 각각 만들어진 일본총회대일본 분견신도에도 역시 독도를 우리 땅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더구나 일본총회는 독도 옆에 조선의 것아라는 글씨까지 기록되어 있다. 19세기에 만들어진 여지도에도 독도와 대마도는 물론 녹둔도까지 분명히 우리 영토로 표기되어있다. 

대마도를 쓰시마라고 하고 있는데 한국과 일본의 사이에 있다고 하여 사이섬’ ‘새섬이었는데 그 새섬새서미새서미쓰시마로 변한 것이다. 조대기(朝代記)구주와 대마도는 삼한이 나누어 다스리던 땅이니 본래 왜인이 살던 땅이 아니다(九州 對馬島 三韓分治之國 非倭人之世居也)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쓰시마는 원래 새섬이 변한 우리말이며 우리 땅 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  

18세기 영조 때 목판본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청주의 이대성씨의 고지도(20087월에 공개)에는 독도는 물론 대마도까지 우리영토로 표시되어 있다. 그 외에도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자료는 많이 있다. 삼국시대에 신라가 대마도에서 말을 길렀고 고려 때에는 대마도주에게 관직을 내리는 등 실질적인 지배사실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조선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대마도주를 우리가 임명했다.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의 첫 권에 포함된 팔도총도에는 울릉도와 독도는 물론 대마도가 우리 영토로 표기되어있다. 13세기말에 편찬된 일본의 진대(塵袋)에는 대마도가 옛날 신라국과 같은 곳이었고 사람이나 토산물이 신라와 같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일본 후생성 발표에 따르면 B형 간염을 일으키는 HB-바이러스 표면에서는 adr, adw, ayw, ayr 4종의 단백질이 발견되는데, 일본인은 adr형과 adw형이 7:3정도인 반면 한국인은 거의 100%adr형인데 대마도민도 역시 100%에 가깝게 adr형인 것으로 발표한 적이 있었다.  

지리학적, 생태학적 근거로 보아도 규수와 대마도까지의 거리는 147km인데 반해 부산에서 대마도까지의 거리는 49.5km밖에 되지 않는다. 이승만 전 대통령도 대마도가 우리 영토라고 주장하였다. 지금부터라도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역사의 흐름에서도 보아 의미 있는 대응이 될 것이다.  

   
▲ 독도의 모습

일본이 독도를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1905222자 시내마현의 편입고시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다케시마를 본현의 소관아래 편입한다.’라고 고시하고 이 내용을 대한제국에 통보하였다.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이며, 자신들이 선점했다는 주장도 여기에서 근거 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미 외교권을 박탈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항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앞서 17세기 말 조선조에 안용복이 독도에서 불법 어로를 하던 왜놈 배를 쫓아내고 국토침입 사실을 시인 받았었다. 그러나 일본은 도꾸가와 막부시대부터 자신들이 독도를 경영해 왔다면서 안용복이 자신들을 강제 퇴거 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후 70년대 후반부터 일본총리와 외무장관 등 당국자가 나서서 공식 비공식 발언을 통하여 독도에 영유권을 본격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독도가 우리 땅 이었다는 고문서는 계속 발견되고 있다. 20076월에도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증명하는 문건이 일본에서 2건이나 새로 발견되었다. 하나는 일본의 국립 공문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공문록 내무성의부1’태정류전에 기록되어 있는 독도가 한국 땅 이라는 관련 결정문이며 또 하나는 일본 문부 과학성 산하 국제일본문화 연구소 고지도 문서실에서 발견된, 1691년에 일본의 유명한 불교학자이자 지도제작자인 이시가와 유센이 제작한 해산조륙도海山潮陸圖이다. 여기에는 울릉도와 함께 독도를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를 지칭하던 한당(韓唐)’으로 표기하고 있다.  

또 진주 경상대 명예교수 허종화 선생은 2008715일 서울 세종로에 있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도쿄학습사가 발간한 천연색판 소학국사회도小學國史繪圖라는 책을 공개하였다. 이 책은 일본의 옛 역사부도라고 할 수 있는데 본문 40쪽에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령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아래쪽의 일본해 해전도에도 같은 그림이 있다.  

허 선생은 이 교과서는 일본이 발간한 책으로 일본은 물론이고 그 당시 조선과 만주의 학생들에게도 모두 가르친 책이라고 하였다. 80쪽 분량의 이 책은1928년에 초판을 발행한 이후 수차례의 수정을 거쳐 1939년에 발행된 수정판으로 당시 소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까지 배웠으며 도쿄제국대학 교수가 감수까지 한 책이다. 

200611월에는 18773, 메이지 정부가 일본 내무성과 시네마현에 지시한 독도와 울릉도는 일본영토와 관계가 없으니 명심하라라고 기록된 구체적인 공문서인 태정관 지령문이 공개되었고 200913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1951213일 공포된 일본 대장성령大藏省令 4호와 195166일 공포된 총리 부령府令 24호에서 독도와 울릉도와 제주도를 일본의 부속도서에서 제외 한다라고 명시한 법령을 찾아내어 조선일보를 통하여 만천하에 밝힘으로써 그동안 호언장담하던 일본의 코가 석자나 빠지는 단서가 되었다.  

그 뒤 1960년에 시행된 대장성령 43호와 1968년에 시행된 대장성령 37호에도 이 법령이 유지되었고 현행법령에도 그대로 살아있음이 드러났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독도해양영토 연구센터의 유미림 책임 연구원은 일본에서 한일회담 관련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벌였던 최봉태 변호사의 제보에 의해 이 법령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밝혔다. 

   
▲ 독도, 한국화가 강장원

독도는 해발 90.7m의 동도와 167.9m인 서도를 중심으로 주변에 60여 개의 바위들과 동굴이 있는 5만평 넓이의 섬이다 비록 울릉도 면적의 400분에 1밖에 안되지만 바다 속 대륙붕의 규모는 오히려 울릉도의 2배에 달한다. 울릉도의 바다 밑은 너비가 25km이나 독도는 쌍둥이 화산 폭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바다 밑 땅이 무려 50km에 이르기 때문이다. 독도 바다 밑에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30년 동안 쓸 수 있는 6억 톤의 차세대 연료인 하이드레이트가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어장뿐 아니라 안보와 자원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귀중한 섬이라 하겠다. 이제부터라도 형식적인 주민 거주정책에서 벗어나 독도에 조그만 마을을 만들어 사람들이 모여살 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것은 독도주민 편부경씨와 김성도씨의 간절한 호소이기도 하다. 민족문화이사장 강동민 선생의 제안처럼 관광호텔을 세워서 항상 관광객이 몰려갈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책일 것이다

평소에는 잊어버리고 있다가 문제가 터지면 와글와글하는 규탄대회도 문제이다. 비록 독도뿐 아니라 우리의 땅 끝인 마라도, 이어도, 녹둔도도 예외가 아니다. 국제 분쟁이 터지기 전에 미리미리 대비를 해야 한다. 더구나 미국지명위원회가 독도대신 리앙쿠르암이라고 사용한지가 벌써 30년이 넘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부가 지금까지 독도에 대해 너무나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또 그동안 한미 양국 간에 지명문제와 지리정보 교류 및 공유에도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