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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서간도에 들꽃 피다》 4권, 이윤옥 시인에게 경의를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1]

   
▲ 《서간도에 들꽃 피다》 4권 표지 ⓒ 도서출판 얼레빗
[그린경제/얼레빗 = 양승국 변호사]  얼마 전에 이윤옥 시인이 서간도에 들꽃 피다4권을 냈습니다. 이시인은 그동안 스무 명씩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재조명하는 시집을 내어 왔으니까, 이번 4권으로 80분의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우리 앞에 보여주었네요.  

책을 펼치니 제일 먼저 나오는 글귀는 이 한 권의 책을 이 땅의 모든 남성들에게 바칩니다.”입니다. ~~~ 여성 독립운동가에 무관심한 남성들로 하여금 각성하라는 소리로 들리는군요. 사실 독립운동으로 서훈을 받은 여성은 작년 말 현재 234명에 불과한데,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갖고 조사해보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많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전에 하얼빈의 중국 동북지방 열사기념관에 들렀을 때에도 제가 알지 못했던 많은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중국이 한국 독립운동가들을 따로 기념관에 전시해주는 것은 아니고, 항일 전쟁 당시 중국인들과 같이 항일 활동을 하거나 중국군에 들어가 항일 전쟁을 한 만주의 한국인들을 자기네 독립운동가들에 같이 포함시켜 전시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같이 갔던 박환 교수가 설명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도 모르고 지나갈 뻔하였지요. 이 교수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라 안팎에서 여성들의 독립운동은 남자들 못지않게 눈부신 활약을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분들의 이름은 세상이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기억해주지 않습니다. 유관순 열사 말고 또 어떤 여성들이 어디서 어떻게 나라를 구하다 숨져갔는지 여성들의 독립운동을 상세히 알려주는 변변한 책 한권 없는 것이 제95주년 3.1절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그런 안타까운 마음에 항일여성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를 쓰고 있으며 이번에 4권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은 지하에 계신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저에게 나지막하게 들려주는 소리 때문입니다. ‘내 이야기도 꼭 한번 다뤄 달라는 속삭임을 저는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

눈보라치고 살을 에는 찬바람 속에서 여자로서의 꿈과 이상을 접고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숨져간 이 땅의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고귀한 삶을 기리며 이 작업은 멈추지 않고 지속될 것입니다. 

이 교수가 발굴해낸 20분의 여성 독립운동가중 김숙경(1886 ~ 1930) 선생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김 선생은 함북 경원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11살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웃집 소년 황병길에게 시집갑니다. 시집간 지 얼마 안 되어 남편 황병길은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행하자 노령으로 건너가 이범윤이 조직한 산포대(山砲隊)에 들어갑니다.  
 

   
▲ 김숙경, 황병길 부부 이야기가 나오는 《연변여성》 1991년 10월호

어린 새댁이 홀로 늙으신 시부모를 모시고 힘겹게 살던 1907년 어느 날 일제가 들이닥쳐 김숙경 선생을 끌고 가, 남편의 행방을 대라며 김 선생을 고문합니다. 그 때 김선생은 아이를 해산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이지요. 그러나 곱게 남편의 행방을 얘기해 줄 김 선생이 아니지요. 김 선생이 계속 모른다고 잡아떼자 일제는 10일 만에 김 선생을 풀어줍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태어나자마자 어미의 사랑과 젖을 잃어버린 갓난아기는 이미 숨을 멈춘 뒤였습니다.  

아기를 낳자마자 일제에 고문을 당하고 아기까지 잃어버린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김숙경 선생은 결심합니다. 그리고 두만강을 건너 남편이 있는 훈춘으로 갑니다. 단지 홀로된 여자가 삶이 무서워 남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김 선생이 내딛는 발걸음 하나 하나는 이제부터 한 독립투쟁가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대한의 여성으로서의 굳은 의지가 담긴 발걸음입니다. 

1919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그 불길은 순식간에 한반도로 번져나가더니 그 불길은 압록강과 두만강의 물길도 거침없이 건너가, 그해 313일 용정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납니다. 김 선생은 이때 <한민회>에 가담하여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합니다. 만세운동 이후에는 여성들의 독립투쟁도 체계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1919. 9. 20. <한민애국부인회>를 결성하여 회장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섭니다.  

한민애국부인회의 활동으로 한인 어머니와 아내들은 숨겨놓은 패물을 내놓고 머리카락까지 잘라 독립자금을 마련합니다. 그리고 한민애국부인회는 돼지와 닭을 키워 독립군 식단을 개선하고 독립군 옷을 만들고 빨래를 도맡아 하는 등 독립군이 독립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몸이 부스러지도록 뜁니다. 뿐만 아니라 마을마다 야학을 열어 사람들에게 조선의 혼을 불어넣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함께 열심히 대한독립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던 중, 1920. 4. 13. 남편이 과로로 순국합니다. 그리고 그 해 10월 간도참변 때 김 선생도 끌려가 고문을 당했으나 다행히 목숨은 건집니다. 당시 왜경은 이곳저곳에서 한인들을 학살하였는데, 김 선생이 포함된 한인 일행을 학살하려던 왜경 지휘관은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있었는지 여자들은 제외시키라고 하여 목숨을 건진 것입니다. 

   
▲ 일제가 중국에서 항일투쟁을 하는 항일조선인의 활동을 조선 총독부에 보고한 문서. 특히 김숙경 애국지사 남편 황병길 독립투사를 보고하는 내용은 1924년까지 무려 182건에 달한다.

, 간도참변이 뭔지 잘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이에 대해 약간 설명을 해야겠군요. 일제는 1920. 6. 7. 봉오동 전투에서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자 8월에 간도지역 불령선인 초토계획을 세우고는, 중국 마적을 사주하여 10. 2. 훈춘의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게 합니다. 그리고는 이를 구실로 10. 12. 대규모 병력을 간도로 출병하여 독립군 토벌작전을 폅니다. 그런데 토벌은커녕 10. 21.부터 26일까지 5일간 벌어진 청산리 전투에서 또다시 대패하자, 그 초토의 칼날을 한인 사회로 돌립니다.  

이 때 참 많은 한인들이 살해당하고 한인마을이 초토화됩니다. 59개의 학교와 19개의 교회가 불타버리는 등 많은 한인 단체들도 피해를 입습니다. 정확히 얼마나 많은 한인들이 피살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약 3,700여 명이 피살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를 간도참변 또는 경신년 대학살이라고 부릅니다.  

일제는 죄 없는 한인들을 단순히 살해한 것이 아닙니다. 산 사람을 그대로 땅에 묻기도 하고 불로 태우고 심지어는 가마솥에 삶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한국독립군의 피 끓는 성토문을 들어볼까요? 

단순히 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살해한 후 목을 베고, 창자를 빼내고, 음경을 도려낸 후 매장도 하지 않고 길 위에 내놓아 새와 비둘기의 먹이로 제공하는 것은 무슨 심정에서인가? 슬프다. 이같이 인도상으로 잔인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목하 20세기의 문명시대에는 야만적 행동은 어느 곳에도 없다. 

그렇습니다. 간도참변에서 남경대학살에서 그렇게 수많은 인명을 학살하고, 731부대에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인체실험을 하고, 처녀들을 잡아다가 위안부로 짓밟고도 아직도 사죄할 줄 모르는 인간들! 저는 요즘 일본 아베정권이 하는 짓을 보면 분노를 넘어서 같은 인간으로서 어찌 저럴 수 있을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흥분하여 너무 곁길로 빠져나갔군요. 이렇게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김숙경 투사는 1930. 7. 27. 결국 급성위장염으로 한 많은 삶을 거둡니다. 김숙경 투사는 첫아이를 그렇게 비극적으로 잃은 후에도 4남매를 두었습니다. 그중 둘째딸 황정신은 연통라자 항일유격대에서 통신, 선전, 부녀 사업을 하다가 체포되어

   
▲ 서간도에 들꽃 피다》 4권 지은이 이윤옥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끝내 동료들을 보호하였고, 이후 또다시 체포될 위기에 이르자 스스로 벼랑에서 뛰어 내려 장렬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외아들 황정해도 14살에 같은 항일유격대에서 아동단 단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7살에는 동북인민혁명군 전사로 뛰다가 23살에 아까운 나이에 순국합니다. 

김숙경 애국지사! 우리는 이 여성 독립투사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혀 있는 여성독립투사들의 삶을 발굴하여 재조명하고 있는 이윤옥 시인에게도 경의를 표해야 할 것입니다. 서간도에 들꽃 피다1, 2, 3, 4....10권 계속하여 진행될 들꽃의 행진을 앞으로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