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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거리

청중은 있었지만 귀 명창은 없었다

풍류 사랑방, 안숙선의 '토끼타령 주제의 창극‘ 공연

[그린경제/얼레빗=진용옥 명예교수]  지난 521일 저녁 7시반 국립 국악원 풍류 사랑방에서 명창 안숙선의 '토끼타령 주제의 창극' 공연이 있었다. 나는 맨 앞줄 오른쪽 마루바닥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서 편안히 감상했다  
 

   
 

분창악극창극 , 단창악극판소리  

오늘의 공연은 소리꾼들이 역할를 분담하여 판소리 단창악극조의 연기를 연행하는 독특한 분창 악극이다. 조선 말 개회기에 원각사(국립극장)가 생겨 판소리 가인들이 배역을 분담하여 한 공연에서 비롯되었으며 각본과 곡조도 새로 붙인 창작 민속악극이 등장했다.  

판소리는 한 사람의 악인[광대]이 부르기에 1인 역과 자문자답 형식의 단창 악극형식이다. 이에 견주어 창극은 판소리를 다인다역 형식으로 취하는 분창악극 형식이다. 분창악극은 판소리 선율로 짜여지며 흔히 국악관현악 반주가 딸린다 이에 비해 판소리는 고수의 북 반주 뿐이다
 

분창(分唱)과 의상과 공연 구성  

판소리는 1인 창극이므로 의상은 단순하고 소도구는 부채뿐이다. 아마도 이는 풍류를 상징하는 것일 게다. 이번 풍류 사랑방 창극 공연에서는 7명의 소리꾼이 10가지 배역으로 의상 역시 토끼와 자라, 용왕을 제외하고는 소리꾼 본연의 의상을 입고 역할을 맡았다.   

안숙선 민속악단 예술감독이 공연 전체를 이끄는 '도창'을 맡고. '토끼' '홍어' '조개' 역할은 김현주(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와 조정희(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자라''용왕'은 김대일(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과 정민영(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 '수궁 신하들'은 유미리(국립국악원 민속악단)와 이주은(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이 맡았다
 

'공소(空所)와 추임새' 
 

   
▲ 추임새의 생활화 – 비록 국악 뿐 아니라 추임새의 체질화가 필요하다

판소리에는 '일고수이명창'이라는 말이 있다. 고수가 잘 받쳐줘야 소리꾼이나 연주자가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고수는 지휘자 격이다. 관객을 더해 3청중이라 하지만 귀명창이 제격이다. 그만큼 관객의 적극적 참여가 중요하다. 연주자나 소리꾼이 숨을 잠깐 돌리는 순간, 혹은 소리나 연주가 잠시 멈추는 순간이 있다. 이를 공소라 하는데 관객에게 참여해 달라고 요청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바로 '어이', '좋다', '얼씨구', ‘잘헌다’ ‘아먼같은 추임새를 넣어야 하는 순간이다. 관객이 청중에 그치는 서양음악과 달리 관객의 직접적 참여에 따라 매번 새로운 판이 형성되는 것이다.  

비록 국악 뿐 아니라 추임새의 생활화 곧 추임새의 체질화가 필요하다


풍류 사랑방 

연희와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전문공연장 '연희풍류극장'과 원형공연장인 '연희마당'(1300)과 실내 좌식공연장인 '풍류사랑방'(130)을 마련되었다. '연희풍류극장'은 전통 한옥의 사랑채와 마당을 모티브로 해 전통음악을 원형 그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존의 국악공연장과는 차별된다.  

신을 벗고 '풍류사랑방' 문을 밀고 들어가니 천장에는 서까래를 얹고 사방 벽은 전통 한옥의 창살과 황토벽으로 꾸몄다. 무대는 넓은 ''자 형태로 객석으로 돌출된 구조였고, 객석 바닥 층층에 전통 대청마루처럼 우물마루를 깔았다. 반 등받이를 댄 방석에 앉으니 커다란 한옥의 실내에서 공연을 맞이하는 듯한 느낌이다.  

판소리와 무용, 국악 연주가 열리는 '풍류사랑방'은 음향기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전통악기가 내는 소리를 원음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 선비들의 풍류 음악 공간을 현대적 전통공연장으로 탄생시킨 국내 유일의 좌식 실내공간"이다. 안숙선 명창은 "한옥 대청마루에서 여유롭게 즐기는 명품 국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런 소망은 풍류사랑방에서 이루어진다.

 

   
▲ 풍류사랑방 2013년 4월 개관 – 출처 해외문화홍보원

20134월 개관한 풍류사랑방, 커다란 한옥 대청마루에 앉은 것처럼 널찍하고 시원했다. 신발을 벗고 고급스러운 전통 방석에 앉아 소리를 듣고 있으니 선비 풍류(風流)가 이랬겠구나 싶었다. 비좁은 여느 공연장과 달리 여유를 느끼게 하는 넓이였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아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착신음에 방해 받을 일도 없다.  

그러나 뒷벽이나 병풍에는 흡음재가 있는 재료를사용해야 하는데 이번 공연에는 병풍이 없었다. 여러 개를 만들어 배경 화면으로 만들었으면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영문 번역대사를 투사하는 화면 등이다
 

풍류 연희 마당  

전통 놀이판과 같은 둥근 마당 주위로 1,300석 규모의 객석을 둘렀다. 무대 위에는 방패연 모양의 지붕을 얹었고 객석 뒤를 거대한 팔괘 기둥이 호위하고 있다.그러나 청중은 뙤약 볕이나 비를 피할 수 없다. 방패연과 함께 차일을 둘러야 한다 여기에 IPTV로 항상 생중계 되어야 한다.

   
▲ 연희풍류극장마당, 기둥을 세우고 지붕(차일)을 덮어야 한다
 

이야기 짓기(스토리 텔링)  

"내가 집 떠났단 소문이 나면 저 건너 진털 밭 남생이란 놈이 내 집을 종종 찾아다닐는지 몰라! 그놈이 밤중에 오더라도 노랑내가 심히 나니 각별히 조심하소." 

용왕님 약으로 쓸 토끼 간을 구하기 위해 육지로 떠나는 별주부가 너스레를 떨자 아내 역 안숙선(65)이 따끔하게 말했다. "자네는 냄새 안 나는 줄 아나. 아예 돌아오지 말게. 난 현빈이 더 좋아. 청중은 웃음판이 됐다. 

서너 시간 걸리는 판소리 '수궁가'1시간30분 분량으로 줄인 '토끼타령'은 안 감독이 작창(作唱)을 맡고, 극단 미추 출신 지기학이 연출을 맡았다. 이번 '토끼타령' 특징은 연주자, 연희자들이 전자 음향기기에 의존하지 않고 목소리로만 천장과 바닥을 울린다는 점이다. 안 감독은 "가사가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분명하게 발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사전달은 여전이 미흡했다. 우리의 소리가락과 대사의 소리가락에서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토끼타령'은 안숙선 감독이 공연 전체를 이끄는 도창을 맡고 민속악단 단원 유미리·이주은·조정희와 국립민속국악원 김현주·김대일·정민영 등 국악원의 대표적 소리꾼 7명이 출연한다. 한 소리꾼이 토끼와 홍어, 조개 등 여러 배역을 맡는 분창(分唱)을 통해 100년 전 초기 창극의 모습을 되살렸다. 김현주와 조정희는 주인공 토끼 역의 앞뒤 부분을 나눠 맡았다. 김현주는 초반부 익살스럽고 경쾌한 토끼였고, 조정희는 후반부 곤경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순발력과 재치를 발휘하는 후반부 토끼였다. 별주부 역 김대일(33)은 어머니뻘 안 감독의 아들이 됐다가 남편 역까지 하면서 장단을 잘 맞추었다. 
 

   
▲ 안숙선의 '토끼타령 주제의 창극‘ 공연 출연자들

안 감독은 "풍류사랑방에 어울리는 고품격 국악 공연을 계속 올리고 싶다"고 했다. 관람권값은 전석 3만원. 회당 130명 한정,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세 번'밖에 기회가 없다. 전일 전원 매진이었고 빈 좌석이 하나도 없었다   

이날 공연은 음향 기기에 익숙한 현대인 들에게 그 자연의 원음을 만끽하게 한 순간이었다. 긴 이야기[스토리 텔링] 몸짓과 발짓을 섞어가는 춤사위며 고수의 북 반주에다 소리꾼들 여럿이 어우러지는 분창 악극[창극]에서 국악의 미래를 살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귀명창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나는 자꾸자꾸 뒤를 보았다. 청중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다. 남녀노소 모두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가끔 흥이 나면 소리꾼들의 신호에 손뼉을 치다가 이내 잦아든다. 서양음악 감상법에 익숙해진 청중들은 추임새를 넣을 수 없는 것이다. 소리꾼이 외쳤다. 1고수 2명창 3청중이라 하니 여러분이 흥을 돋구세요 나는 큰 소리로 귀명창이라 했다. 귀명창도 왔으니 오늘 공연은 잘 되겠구나하고 소리꾼이 되받았다 
 

   
▲ 도창을 맡은 안숙선 명창2013년 공연 모습(위키인용, 왼쪽)과 2014년 공연 모습( 국립국악원 소개 책자)

토끼 거북이가 다투다가 쌍방과실 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분창 악극의 최대 특징은 추임새 말고도 이런 즉흥성이다. 그러나 추임새는 거기서 끝나고 다시 청중들은 또다시 엄숙한 분위기로 되돌아갔다  

우리 음악 특히 분창악극(창극)과 단창악극(판소리) 이 더 발전하려면 청중이 즐겨야 하고 즐기려면 적극적인 추임새가 나와야만 한다. 물론 서양음악에 밀려 우리 음악에 접근하지 못했던 청중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따라서 공연 전에 소리꾼들은 청중들에게 추임새 훈련을 시킬 필요가 있다. 추임새를 한 청중은 공연에 흠뻑 빠져 진정한 즐거움을 우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