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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백난아 ‘찔레꽃’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37] 독립투사 간절한 고향생각 노래에 담아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언제부터인가 봄이 좋아졌다. 청년시절엔 낙엽마저 다 떨어진 11월의 쓸쓸함이 그렇게 좋더니. 오늘은 원조 비바리가수 백난아의 찔레꽃을 감상하며 고향의 오솔길을 거닐어 본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우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동무야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천리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삼년 전에 모여 앉아 백인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 떠 슬피 울고 호랑나비 춤을 춥니다. 그리운 고향아"  

백난아는 1925년 제주에서 오금숙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 후 함경도 청진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장 하였고 서울양재고등여숙을 졸업하였다. 

1940년에 개최된 1회 레코드 예술상이란 신인가수 선발대회에서 2위로 입상하며 가요계에 입문하였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김교성의 눈에 들어 진방남과 함께 태평 레코드의 전성기를 이끌게 된다. 김교성은 콩쿠르를 통해 신인가수를 많이 발굴해내 콩쿨대왕이란 별명이 붙은 인물이다. 

백난아라는 이름은 선배가수 백년설이 지어 줬으며 흰색을 유난히 좋아하는 그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찔레꽃은 김교성과 백난아가 만주공연을 갔을 때, 어느 독립투사가 간절하게 고향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노래이다.  

김영일이 노랫말을 지었는데 우리 가요사에서 가사에 오류가 있는 대표적 작품으로 회자된다. 찔레꽃은 모두 흰색으로 붉은 꽃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률과 곡의 기조를 고려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 할 것이다.  

   
▲ 백난아 찔레꽃 음반 사진
할머니, 지금 무얼 캐시나요?
토끼털 봄볕이
나풀나풀 내리는 밭두렁에서
구불텅구불텅 땅속 깊이 들어간
메 뿌리는 꼭 번개를 닮았지요?
그걸 캐내 씹으면
마른버짐 핀 얼굴에 핏기가 돈답니다.
양기를 잔뜩 머금은 봄동은
겨울이 앗아간 입맛을 돋우어 주지요. 

할머니, 허리 한 번 펴세요.
햇쑥이랑 달래 캐느라
산소처럼 굽은 등허리가
찔레꽃 하얀 덤불에 묻혀
보이질 않습니다. 

이맘때쯤이면 늘
서울 간 단짝동무 월순이가 그립다고요?
먼동 아래서 단보따리를 건네고 돌아앉아
헤지도록 개짐을 빨고 또 빨며
그렇게 그렇게나 우셨다지요.
산벚 꽃잎 총총히 떠내려 오는 개울가에서 

할머니는 지금
삶은 굴밤으로 주린 배 채우고
송기 긁은 물로 마른목축이던,
보리개떡도 호강이고 칡뿌리도 없어 못 먹던
그 시절을 캐시는 거지요?
이웃들 모두 떠난 빈 마을에서
도회지에 이웃들이 궁금하시죠?
거기도 이곳처럼 봄이 오고
떠난 이웃들도 봄마다
고향을 캔답니다.
화단에서 자라나는
나비 꽃을 바라보며 

할머니, 포르름 달빛에
불은 불두화 꽃송이가
허연 이밥 덩이로 보이던 그리운 그 시절이
내게도 있었답니다.
나의 살던 고향에서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