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동아일보 1927년 8월 2일 치에는 <모녀 일시 익사(溺死), 너무 더워 목욕하다가 빠저, 딸 건지러다 희생된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모녀는 동리 앞 저수지로 목욕하러 갔다가 물에 ᄲᅡ져 애처롭게도 두 모녀는 영원한 물나라로 가고 말앗다는데 이제 그 흉보를 들은 가족은 물론 린근 동리 사람들ᄭᅡ지 그를 불상히 녁안다더라”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기사의 제목처럼 ‘너무’라는 말은 부정적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너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찌씨(부사)로 “정해진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 또는 보통을 훨씬 넘어서는 정도로”라고 풀이합니다. 오랜만에 여자 친구를 만난 남성이 “너무 예뻐졌네”라고 합니다. 그러면 상대 여성은 부정적인 말 ‘너무’가 들어가니 지나치게 예뻐져서 안 좋다는 말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참 예뻐졌네”라고 말하면 좋을 것입니다. 방송이나 많은 이들이 쓰니까 써도 괜찮지 않으냐고 하지만 내가 앞장서서 쓰면 안 될 일입니다. 길에 가다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욕을 하고 거친 말을 쏟아내는 것을 봅니다. 자기들끼리야 그렇게 하는 게 소통이 잘 될지 몰라도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을 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앵 초 - 방우달 애막골 산책로 가는 길 철쭉꽃 옆에 앵초 피었다. 하나하나 예쁘다. 어울려 더 아름답다. 굽은 허리로 걷는 할머니 중얼중얼 “꽃이 예쁘면 뭣하나, 허리 아파 죽겠는데~” 며칠 전 3월 26일의 탄생화는 '흰앵초'이며 꽃말은 '첫사랑'이다. 흰앵초는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전국 곳곳의 산지에 분포하며 특별한 육종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예뻐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꽃이다. 자생지에서의 개체 보존이 시급한 흰앵초는 냇가 근처와 같은 습지, 습기가 충분한 계곡의 입구 또는 배수성이 충분한 곳을 좋아한다. 봄부터 여름까지 볼 수 있는 들꽃이 '앵초'인데 앵초 비슷한 꽃으로는 설앵초, 좀설앵초, 큰앵초, 털큰앵초, 종다리꽃 따위가 있으며, 한국에서는 십수 종이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앵초속에는 약 550종이 분포하고 있는데, ‘프리뮬러(Primula)’은 외래재배종으로 그 종류가 참 많다. 앵초의 꽃말에 ‘행복의 열쇠’도 있다고 하는데 산을 오르다가 앵초꽃을 만난다. 어떤 이는 앵초를 천국의 문을 여는 숲의 요정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만난 앵초는 나를 천국의 문으로 안내하는 것은 아닐까? 행복에 집착하기보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무궁화를 조선의 명화라 하지만은 사실로는 진달네(杜鵑花)가 조선의 대표명화와 가튼 감이 잇다. 진달네는 색깔이 아름답고 향취가 조흘뿐 안이라 전조선 어느 곳이던지 업는 곳이 업서서 여러 사람이 가장 넓히 알고 가장 애착심을 가지게 되는 까닭에 조선에 잇서서 꼿이라 하면 누구나 먼저 진달네를 생각하게 된다. 조선의 봄에 만일 진달네가 업다면 달업는 어두운 밤이나 태양 없는 극지(極地)보다도 더 쓸쓸하고 적막하야 그야말로 ‘춘래불이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으되 봄 같지 않구나)’을 늣기게 될 것이다." 위는 일제강점기에 나온 잡지 《별건곤》 제20호(1929년 4월 1일)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4월이 되면 한국은 온 나라가 벛꽃축제로 들썩이지만 이는 일본 사람들의 하나미(花見, 벚꽃구경)를 들여온 것일 뿐입니다. “창경궁의 현판을 창경원으로 바꿔 달고 나서 2년이 지난 1911년, 일본 놈들이 자기 나라의 정신을 조선에 심는다며 창경원에 대대적으로 벚나무를 심었어요. 자그마치 1,800그루를 심은 겁니다.” 창경원 수의사였던 김정만 선생의 말을 들으면 벚꽃축제에 열광하는 모습이 기가 막힙니다. 실제 우리 겨레는 봄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서울에 도착하자 잔치를 베풀어 접대하였는데 예조판서가 주관하였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다치바나 야스히로가 후추를 잔칫상 위에 흩어놓으니 기생과 악공들이 서로 빼앗으려고 뒤죽박죽이었다. 야스히로가 숙소로 돌아가 탄식하면서 통역관들에게 ‘너희 나라는 기강이 이미 무너졌으니 망하지 않는 것을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이는 조선 중기의 학자 신경(申炅)이 쓴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다치바나 야스히로는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전에 조선을 염탐하러 왔던 일본 사신이지요. 야스히로는 궁궐에서조차 후추를 놓고 아수라장이 된 것을 보고 전쟁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류성룡의 《징비록》에도 나오는데 그만큼 조선시대에 후추는 조선에서 나지 않는 귀한 먹거리였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성종실록》 140권, 13년(1482년) 4월 17일 기록에 보면 일본 사신에게 후추 씨를 구해 보내라고 했지만 “후추는 남만(南蠻, 자바)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항상 본국에서 또 유구국(琉球國, 오키나와)에 청하고 유구국은 남만에 청하는 것으로 후추 씨는 얻기가 어려울 것 같다.”라고 변명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국악원(원장 김영운)은 정악단(예술감독 이건회)의 정기공연으로 정악의 고전이자 대표 악곡인 ‘영산회상(靈山會相)’ 가운데 관악영산회상을 짧게 연주하는 단회상과 현악영산회상, 평조회상 전 바탕을 오는 3월 28일(목)과 29일(금) 이틀 동안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선보인다. 옛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음양의 균형을 추구했으며,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은 중도의 상태를 드러낸 음악을 바른 음악이라는 뜻으로 ‘정악(正樂)’이라 불렀다. 이번 공연은 과거의 전통을 잃지 않으면서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더 함으로써 더욱 깊어진 정악의 정수를 전하기 위하여 국립국악원 정악단이 그동안 올곧게 전승한 세 종류의 <영산회상> 음악을 무대에 올린다. 삼현육각 편성으로 만나는 바람의 소리 ‘관악영산회상’ 현악기의 대규모 울림을 가깝게 들을 수 있는 무대 ‘현악영산회상’, ‘평조회상’ 정악 기악곡의 대표곡인 ‘영산회상(靈山會相)’은 본래 불교에 바탕을 둔 노래곡이었지만, 점차 불교적인 색채는 옅어지고 기악곡으로 변화되었고, 음악이 분화하고 더해지면서 지금과 같은 대규모 모음곡이 되었다. 영산회상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되는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잡기(雜技)의 피해는 투전(投錢)이 특히 심합니다. 위로는 사대부의 자제들로부터 아래로는 항간의 서민들까지 집과 토지를 팔고 재산을 털어 바치며 끝내는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게 되고 도적 마음이 점차 자라게 됩니다. 삼가 바라건대 경외에 빨리 분명한 분부를 내리시어, 한 명의 백성이라도 감히 금법을 어기고 죄에 빠지는 일이 없게 하시고, 투전을 만들어 팔아서 이익을 취하는 자도 역시 엄히 금지하소서. 위는 《정조실록》 33권, 정조 15년(1791) 9월 19일 기록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목민심서》에는 조선시대 사람들은 투전 말고도 골패, 바둑, 장기, 쌍륙, 윷놀이를 좋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조 때의 학자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이 쓴 《청성잡기(靑城雜記)》에 보면 투전은 명나라 말기에 장희빈의 당숙인 역관 장현이 북경에서 들여왔다고 되어 있어 투전이 우리나라에 보급된 것은 조선조 숙종 때부터인 듯합니다. 투전은 처음에 중인 이하의 계층에서 시작되었지만, 나중에는 양반 계층에까지 확산하였지요. 원래 투전은 투기성이 강한 노름이 아니었는데 점차 오락성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진 달 래 - 조병화 날더러 어찌라하고 난 어찌하라고 진달래는 저렇게 고운 연분홍으로 확, 피어나는가 바람에 파르르 떨며 이른 봄빛에 사르르 알몸을 떨며 무거웠던 그 겨울을 활활 벗어버리고 연분홍 연한 맨살로 만천하에 활짝 헌신하는 이 희영 이제 드디어 봄이다. 봄의 전령사 얼음새꽃이 피더니, 저 남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서는 변산바람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또 섬진강 매화마을에서는 매화 바람이 불고, 머지않아 우리는 흐드러지게 피어 꽃보라를 일으키는 꽃들을 보게 된다. 또 온 산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두견새가 피를 토한 자국에서 꽃이 피었다고 하여 ‘두견화(杜鵑花)’라고도 하는 진달래 천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진달래와 철쭉은 비슷하지만 다른 꽃이다. 크게 다른 점을 살펴보면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고 잎은 나중에 나오지만, 철쭉은 꽃과 잎이 같이 나온다. 진달래는 볕이 잘 드는 양지에서 자라는데 키가 2~3미터 정도나 철쭉은 응달에서 자라며 키가 3~5미터 정도로 크다. 또 진달래는 3월 말에서 4월에 철쭉은 주로 5월에 핀다. 특히 옛사람들은 화전을 부치거나 술을 담가먹는 ‘진달래’는 ‘참꽃’, 먹을 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 넷째 춘분(春分)입니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이날 빙실(氷室) 곧 얼음창고의 얼음을 꺼내 쓰기 전에 북방의 신인 현명씨(玄冥氏)에게 “사한제(司寒祭)”라는 제사를 올렸습니다. 《고려사(高麗史)》 권63 지17 길례(吉禮) 소사(小祀) 사한조(司寒條)에 “고려 의종 때 상정(詳定)한 의식으로 사한단(司寒壇)은 초겨울과 입춘에 얼음을 저장하거나 춘분에 얼음을 꺼낼 때 제사한다.”라는 구절이 보입니다. 춘분 앞뒤로는 많은 바람이 붑니다. 그래서 “2월 바람에 김칫독 깨진다.”라는 속담과 꽃샘추위, 꽃샘바람이라는 말이 여기서 비롯되었습니다. 불교에서는 춘분 앞뒤 이레 동안을 “봄의 피안(彼岸)”이라 하여 극락왕생의 때로 보았습니다. 춘분에는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면서 농부들의 손길도 분주해집니다. 논밭에 씨앗 뿌릴 준비를 서두르고, 천수답(天水畓, 천둥지기)에서는 귀한 물을 받기 위해 물꼬를 손질하는데 이때 비로소 한 해의 농사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이제 춘분, 겨우내 밥을 두 끼만 먹던 것을 세 끼를 먹기 시작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끼니 걱정을 덜고 살지만, 먹거리가 모자라던 예전엔 왕실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입니다. 봄은 먼저 얼음새꽃이 피기 시작하여 매화, 진달래, 산수유, 너도바람꽃, 조팝나무꽃, 목련꽃 등이 다투어 피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예부터 조선 화원들이 즐겨 그린 꽃들에는 복사꽃도 많이 보이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조선후기 화원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의 <배를 타고 복사꽃 마을을 찾아서(한자 이름 도원행주도-桃源行舟圖)>도 있습니다. 이 그림은 중국 진대(晋代)의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도화원기桃花源記》를 바탕으로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는 선경(仙境) 그린 것으로, 무릉(武陵)에 사는 한 어부가 배를 타고 가다가 길을 잃어 복숭아꽃이 만발한 별천지에 이르렀다는 이야기입니다. 고사의 내용에 걸맞게 높은 산세와 기이하고 복잡한 산수의 모습을 화면 전반에 광물성의 녹색으로 그리고 곳곳에 분홍색을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또한 피마준(披麻皴, 산의 겉면을 표현할 때 베를 풀어놓은 것처럼 물결 짓는 필선으로 꺼칠꺼칠한 감촉을 주는 기법)과 태점(苔點, 산ㆍ바위ㆍ땅의 묘사나 나무줄기에 난 이끼를 나타낼 때 쓰는 작은 점) 기법을 써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3월에서 4월 사이 - 안도현 산서고등학교 관사 앞에 매화꽃 핀 다음에는 산서주조장 돌담에 기대어 산수유꽃 피고 산서중학교 뒷산에 조팝나무꽃 핀 다음에는 산서우체국 뒤뜰에서는 목련꽃 피고 산서초등학교 울타리 너머 개나리꽃 핀 다음에는 산서정류소 가는 길가에 자주 제비꽃 피고 이제 봄이다. 아직 저 멀리 남촌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아직 여기까진 오지 않았지만, 봄의 전령사 얼음새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저 남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서는 변산바람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또 섬진강 매화마을에서는 매화 바람이 불고, 머지않아 우리는 흐드러지게 피어 꽃보라를 일으키는 꽃들을 보게 된다. 그렇게 3월과 4월 사이에는 온갖 꽃들이 다투어서 핀다. 곧 온통 꽃의 수채화 세상으로 변할 텐데, 이를 두고 꽃의 아름다움이나 향기에 취하는 것을 토박이말로 '꽃멀미'라고 하고, 꽃보라가 인다고도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런 꽃향기 가득한 세상에 편지를 쓸 때 “꽃보라 맞고 꽃멀미 하셨나요?”라고 속삭인다. 우리 모두가 시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 세상, 안도현 시인은 그의 시 <3월에서 4월 사이>에서 산서고등학교 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