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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홍구 시인의 사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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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마음도 일으켜 세웁니다

[허홍구 시인의 사람이야기 50]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희망의 2022년 새해를 우리 함께 맞이합니다. 코로나 돌림병으로 저마다 힘들어 무너졌던 우리들 마음도 함께 일으켜 세우는 새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방귀희 선생은 외환위기(IMF) 때 그러니까 1997년에 처음 만났습니다. 그는 태어나서 한 번도 일어서거나 걸어 본 적이 없는 1급 지체 장애인이지만 서울 무학여고를 수석으로 입학했으며 동국대 불교철학과를 수석 졸업한 화제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창간 발행하던 장애인의 문학잡지 <솟대문학>을 차마 폐간할 수 없으니 허 시인의 주변에 후원해 주실 분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요. 하지만, 그 어려운 시기에 누가 손들고 나서서 도와주겠습니까? 그러나 방 회장의 간절함이 이루어졌고 제가 소개한 ㈜놀부의 창업주 오진권 대표가 십수 년 동안 꾸준히 후원해 주었지요. 간절한 소원은 이루어지듯 넘어져 주저앉은 우리들 마음도 일으켜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방송작가로, 대학 강의와 장애인의 복지 관련 단체에서 열정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방귀희 회장의 이야기입니다. 방 귀 희* 남의 마음을 어찌 읽을 수 있으랴만 태어나서 한 번도 일어서서 걷지 못한 그 절망의 마음

쓴맛이 사는 맛이라 합니다

[허홍구 시인의 사람이야기 49]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이번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채현국 선생의 이력입니다 1935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1961년 한국방송 피디로 입사했으나 권력의 나팔수로 살기 싫다며 입사 3개월 만에 PD를 때려치웠습니다. 그리곤 부친이 운영하던 강원도 삼척 도계로 들어가서 흥국탄광을 운영하며 광산업자로서 성공했으나 유신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스스로 재산을 정리하여 주변에 나눠주고 말았다고 합니다. 민주화운동을 하며 도피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셋방살이하는 해직 기자들에게는 집을 사 주기도 했던 파격의 행동! 1988년 효암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해서는 무급으로 일을 했습니다. 사업을 접으실 때는 일반적인 퇴직금의 3배를 주었으며 나눠준 게 아니라 돌려준 거라고 하였다네요 10월 유신 이후 이대로 가다간 또 권력과 얽혀 앞잡이가 될 상황이 올까 우려했고, 개인적으론 돈 버는 맛에 중독되어가는 자신을 경계하며 사업을 정리하고 자유인으로 살다가 가셨습니다 오래전 인사동에서 돌아가신 시인 강민 선생님과 걸어가시던 선생을 처음 뵙고 인사를 드렸지만 그땐 선생을 잘 몰랐습니다. 2021년 4월 2일, 노환으로 세상을 떴습니다. 향년 86세.

따뜻한 밥 대접만큼 행복한 일은 없었다

[허홍구 시인의 사람이야기 47]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도시의 모든 길거리에는 누구나가 쉽게 찾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 그러나 맛있는 식당, 친절한 식당, 부담 없는 값으로 찾을 수 있는 내 맘에 딱 맞는 식당을 찾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가 쉬 기억할 수 있는 이름 놀부라는 상호를 앞에 붙이고 놀부보쌈과 놀부부대찌개란 메뉴를 개발하여 또 그들만의 맛과 친절로 전국을 휩쓸었던 창업주 오진권 사장의 지나간 이야기다. 누구보다도 배고픔의 설움을 잘 알고 있었던 그가 노약자, 장애인, 노숙자들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을 지어 여러 해 동안 자신의 손으로 그릇에 밥을 퍼 담아주는 기쁨은 경험해 보지 않고는 정말 아무도 모를 것이라며 행복해했던 사람이다. 이제 일흔이 넘어 일손을 놓고 쉬고 싶었지만 심심해서 못 쉬겠다며 신촌 현대백화점 옆에서 다시 맛깔 부대찌개 집을 열었다는 소문을 듣고 혼자 찾아가 봤더니 입구에 “1인 손님 환영”이라는 알림 글이 먼저 보였고 주 고객 젊은 청년 학생들이 배고프지 않게 밥은 무한 리필이라 적어두었다 아직도 틈틈이 후배들의 창업과 성공 길라잡이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으며 나눔으로 행복을 만들어가고 있다. 오 진 권 놀부보쌈 부대찌개 이름으로 전국을 휩쓴

시인의 이력서

[허홍구 시인의 사람이야기 46]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도 늘 반갑게 맞이해 준다. 누구는 마음이 넓다 하여 들판 같은 분이라 말한다. 뇌졸중으로 두 번이나 쓰러졌다가도 거뜬하게 일어나 보란 듯이 무슨 문학 행사장으로 쉼 없이 찾아다니며 참여하고 열심히 활동하는 시인의 이야기다. 내가 있었던 광화문 5층 사무실 승강기가 고장 나도 지팡이를 짚고도 거뜬하게 걸어 오르내렸던 분이다 인물 시(詩) 한 편 적어 내 기억의 창고에 저장하려 했더니 이미 시집 속에 자신의 이력서를 다 적어 놓았다 피난 시절에는 대구 서문시장, 칠성시장, 교동시장에서 장사하면서 공부를 했으니 학교는 야간부만 다녔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까지 꼬박 12년을 야간부 학생으로 공부를 했다니 참으로 대단한 분이다. 오뚜기처럼 살아가는 멋쟁이 시인을 소개한다. 김 원 중 서울대학교를 안 나왔고 유학도 못 갔다 왔어요 먹고 살기도 바쁘고 힘든 세상을 살았으니까요 일요일도 내내 일을 했으니 장로도 못 되었고요 김원중 노 교수가 말하는 자신의 지난 이야기다. 시장에서 장사꾼으로 돈 벌며 공부했던 시인! 시골 초등학교만 빼고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과 대학원까지 꼬박 12년을 야간에 공부했다며 그

사랑하고 행복한 모습 보여주자!

[허홍구 시인의 사람이야기 45]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세상에 귀하고 귀한 것 중에 그 으뜸은 사람이며 사랑이다. 귀한 인연으로 만났던 사람들, 또 내가 본받고 싶었던 사람들, 이름 없는 꽃처럼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향기롭고 빛나는 사람들, 또 화제가 되었던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이 소중히 했던 가치를 내 삶의 길라잡이로 하여 그들을 따르고 닮아 가려고 노력하며 시를 써왔다. 어떤 분은 나에게 ‘할아버지가 산부인과 의사는 어찌 알았노?’ 하고 묻는다 오래전 내가 만들던 잡지에 우리 시대를 이끌어가는 명사들의 말씀이나 읽을 만한 글을 게재함으로 여유로운 삶으로 이끌어 가려는 편집자의 맘으로 필진을 찾고 있을 때 다른 잡지에 실린 글을 읽고 원고 청탁차 산부인과를 찾았다. 부부의 성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치면서 일반인 들은 함부로 할 수도 없고 하기 어려운 말을 거침없이 재미있게 말한다. 꾸밈없이 부끄럽지 않게 전달하는 성지식은 놀랍도록 재미가 있어 내가 만들고 있던 잡지에 필진으로 초대하여 여러 해 동안 글을 쓴 인기 필진이었다. 결혼한 부모가 서로 사랑하고 행복한 모습을 먼저 자녀들에게 보여주자고 한다. 결혼을 기피 하는 이들에게 행복한 가정을 꿈꾸게 하자는 박혜성 원

6·10민주항쟁을 기리며

[허홍구 시인의 사람이야기 44]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6월이 되면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앞에 머리를 숙인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을 어찌 우리 그날을 잊으랴! 부모 형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냥하고 우리 겨레가 서로 싸운 슬픈 전쟁이었다. 또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불의와 맞서 싸우다 활짝 피워보지도 못한 체 아까운 목숨을 민주의 제단에 바치고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젊은이들을 생각한다. 민주열사 박종철과 이한열은 독재와 불의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해마다 6월이 되면 짙푸르고 꽃잎처럼 붉게 물들었던 내 젊은 날을 생각한다. 불의와 독재 권력에 맨몸으로 항거하며 맞섰던 그때를 생각한다. 눈을 부라린 독재 권력으로도 어찌하지 못하고 막을 수 없었던 거대한 민주화의 물줄기가 도도히 흘렀던 그때를 생각한다. “독재정권 물러가라”, “직선제로 개헌하라”, “독재 타도! 민주 쟁취!”를 외치던 시위학생과 시민들의 목소리는 오늘의 민주화를 이끌었을 것이다 오래전 연세대학교 앞에서 36년째 ‘논지당’이란 카페를 운영하였던 분. 불의와 독재 권력에 맞서 싸우던 학생들에게 은신처를 마련해 주고 그들과 함께했던 문선경 씨를 만나 무늬처럼 새

뭉클한 이야기 구수한 농담

[허홍구 시인의 사람이야기 43] 염매시장 아지매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세상 사람들이 노년이 되어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뭔지 혹 아시나요? 무슨 통계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세월은 참 빠르다>라는 말 아닐까요? 자식 키 크는 줄은 알아도 자신이 늙어가는 줄 모르고 살아온 것이 사람입니다 지나가 버린 젊음 뒤에 따라오는 것은 어쩜 편안하기도 하겠지만 힘없어지고 몸은 병들고 외로운 마음에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제 고향 대구에 가면 염매시장이라는 시민들이 즐겨 찾는 재래시장이 있습니다. 염매(廉賣)라는 말은 물건을 싼값에 판다는 뜻이겠지요. 이 시장 골목에는 여러 식당이 있고 얼굴이 살짝곰보인 친한 아지매가 밥도 팔고 술도 파는 식당의 주인이며 특별히 안주를 주문하지 않아도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단골집 아지매입니다. 그런데도 짓궂은 선배는 곧잘 은근슬쩍 농담을 던집니다 누가 농담을 함부로 합니까? 아무나 할 수 없는 농담!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농담! 그럴만한 사이라야 하는 흥겹고, 눈물 나고, 안타깝고, 가슴 뭉클한 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농담이지요. 추억 속에 염매시장 아지매는 빠른 세월을 탓하며 속마음을 구수한 농담으로 일깨워 주던 절절한 노래 같은 이야기를 말 하려 합니다